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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신 Jul 01. 2021

파란고리문어

[중편소설]

                   

 남편은 파란고리문어를 보고 싶어 했다. 언젠가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결심했으나 함께 바다에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바빴다.

 나는 걸음마를 떼기 무섭게 헤엄을 배웠다. 벌거숭이로 바닷물에 뛰어들어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물장구를 치다가 숨이 막힐 즈음이면 벌떡 일어서서 가쁜 숨을 토해낸 다음 허파가 부풀어 터지도록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물고기처럼 두 눈을 번쩍 뜨고 다시 물속으로 온몸을 들이밀었다. 

 - 정말 그렇게 헤엄쳤단 말이야?

 남편이 난생처음 듣는 말이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허풍을 곁들인 내 이야기를 남편은 좋아했다. 그에게 무릎을 내어주고 ‘정말?’ 혹은 ‘나 참!’ 같은 추임새에 맞춰 어린 시절 무용담을 들려주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헤엄치는 법을 배웠는지 들려줄 게 아니라 그가 헤엄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나는 그가 영원히 헤엄치지 못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야 과장된 내 말을 재미있게 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과 상상을 뒤섞어 수다를 떠는 동안 나 자신도 무엇이 실제고 무엇이 허구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바다가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방파제와 선창에 감싸인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아이들은 밥을 먹거나 잠잘 때만 빼고 바닷가로 갔다. 거센 풍랑이 바다를 휩쓸고 지나간 후에 방파제에 모인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거도 없이 인어 이야기를 했다. 인어가 어부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에 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이상 맞닥뜨리는 익사한 사람의 시신을 볼 때도 어김없이 인어에게 누명을 씌웠다. 핏기없이 하얀 얼굴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사체를 보면서 아이들은 바다에서 조심해야 할 존재는 인어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공포나 두려움은 이내 잊혔고, 아이들은 며칠만 지나면 다시 바다로 갔다. 나는 이상하게 인어가 무섭지 않았다. 무섭기는커녕 꼭 보고 싶었다. 밤에만 나타난다기에 밤이 이슥하도록 방파제에 앉아 있기도 했다.

 - 간도 크네, 한밤중에 혼자 방파제에 앉아 있었단 말이야? 무섭지 않았어?

 - 무서웠다기보다는 실망했죠. 인어 비슷한 거도 보지 못해서. 바다 밑으로 내려가 인어를 찾아볼까나, 뭐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인어라는 단어를 각국어로 찾아본 적이 있었다. 폴란드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는 시레나, 프랑스어는 시렌느, 독일어는 씨융파…, 대부분 시옷으로 시작했다. 영어만 머메이드였는데 마멀레이드가 연상되어 생뚱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스타벅스 로고를 볼 때도 나는 시레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오리사과 두어 개만 있으면 반나절은 물속에서 놀 수 있었다. 온몸의 힘을 빼고 편안하게 누워서 바라보는 뭉게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해보지 않고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중년에 파란고리문어를 만나러 먼바다로 떠난 건 운명이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파란고리문어가 산다는 먼 나라의 바다로 가기 위해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처마에 크고 작은 고드름이 무수히 달려 있던 2월 어느 날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갔다. 스마트폰에 갈아 끼울 유심칩을 사고 카카오 택시 필리핀 버전인 그랩 어플도 깔았다.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단체 여행객들과 배낭여행을 가는 젊은이들로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비행기가 짙은 구름층을 통과하자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날카로운 햇빛에 눈이 부셔서 가리개를 내렸다. 머리 위의 전등을 끄고 눈을 감자 이내 졸음이 밀려왔다.

 세부 공항에서 그랩으로 부른 택시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선착장으로 갔다. 페리 티켓은 다이빙 숍에서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두 시간쯤 지나서 따그빌라란 선착장에 도착했다. 검푸른 문신에 덮인 팔이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남자가 내 캐리어를 번쩍 들어서 차에 실었다. 조수석에 타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공항 대기 시간을 포함해 장장 10시간이 걸렸다. 새벽잠을 설치고 출발한 탓에 몹시 피곤했다.

알로나 비치 변두리에 자리한 다이빙 숍에는 붉은 기와를 얹은 숙소와 대형 잠수 풀과 갈대를 닮은 식물로 지붕을 엮은 카페가 있었다. 흐드러지게 핀 하양, 분홍, 진분홍 꽃들이 진한 향기를 풍기며 나를 반겼다. 나지막한 나무문 너머로 에메랄드색 바다가 보였다. 

 작달막한 키에 둥근 얼굴의 중년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라고 말하는 그의 영어 발음이 말라비틀어진 쿠키를 깨물 때 나는 소리처럼 딱딱했다.

- 당신을 뭐라고 부를까요? 당신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요.

 남자가 물었다. 

- 시레나라고 불러줘요. 

먼 기억 속의 단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시레나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발음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했다. 

시레나라면…, 머메이드?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오늘은 푹 쉬라고 말하며 식사 시간과 훈련 일정표가 적힌 인쇄물을 주었다. 내가 알로나 비치로 온 이유는 숍에서 보트로 20분 거리에 전 세계 다이버들이 모이는 발리카삭 섬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 친구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부고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떨리는 건 남편의 죽음이 연상되어서다. 그는 사십 대 중반에 죽었다.

 영정 사진 속 친구의 머리는 흑염소의 털처럼 윤기 나는 검은색이었다. 친구는 심하다 싶을 만큼 자주 염색을 했다. 연한 갈색과 짙은 갈색, 빨간 머리 앤의 머리보다 붉은색, 검은색에 푸른색을 덧입힌 색, 기뻐서, 슬퍼서,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나빠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여름이니 금발로. 갖가지 이유를 대며 미장원에서 많은 돈을 썼다.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다면 머리에 돈을 처들인다고 잔소리하지 않았을 텐데. 친구들은 한결같이 백세 시대에 너무 일찍 갔다며 한숨을 쉬었다.

- 췌장암은 치료가 잘 안 된다더니 사실인 모양이야. 

- 고통이 너무 심해서 더 살란 말도 못 해. 

- 진작에 챙겼어야 했는데. 

- 차도가 있다길래 그런 줄 알았지. 지난 한 달 사이에 갑자기 악화됐대.

 죽기 전에 좀 더 잘해 주지 못해 아쉽다는 게 대화의 요지였다.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질까. 남은 자들은 죽음이 한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자는 다짐만 한다.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친구들에겐 기다리는 남편이나 아이들이 있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 사후 한순간도 죽음에 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눈물이 말라갈 즈음부터 죽음을 꿈꾸었다. 혼자 살게 된 이후 몇 번의 시도도 했다. 내게 있어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남편에게 가기 위한 유일한 방도였다. 수면제를 먹고 보일러 연통을 뽑으려고 했으나 실리콘으로 단단히 접착되어 있어 실패했다. 나무에 목을 매달기 위해 뒷산에 올라가서 이 나무 저 나무 가늠하며 살폈으나 낮은 곳의 가지는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할 거 같았고 튼실한 가지는 너무 높이 있었다. 적당한 가지가 하나 있긴 했으나 내가 목을 맸던 나무 곁을 지날 때마다 어른이나 아이 가리지 않고 두려움에 떨 거 같았고, 한동안 등산로가 폐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실천할 수 없었다. 한강 다리에도 가 보았으니 난간이 너무 높았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죽을 날을 미리 정해 놓고 돌아가셨다. 남편과 같은 날 죽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이유가 참으로 단순했다. 기제사 날이 같으면 자손들이 편할 거라나? 그런데 정말 증조할아버지의 기제사 날 돌아가셨다. 그것도 음력으로. 

 할머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을 년도까지 정하면?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에서 리정혁은 스마트폰의 예약 기능을 이용해 윤세리에게 일 년 동안 문자를 보냈다. 물론 나도 할 수 있다. 모일 모시에 내 집을 방문해 달라. 나는 이미 죽어있을 테니 내 죽음을 경찰에 신고하고 장례를 치러 달라. 그리고 잘 보이는 곳에 돈과 편지를 둔다. 편지에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 적혀 있다. 언론에서는 일인 가구 584만 시대의 어쩌고…… 하며 보도할 테고, 수많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몇몇 사람들은 나의 죽음을 애도하며 공감을 표할지도 모른다. 화장한 유골을 뿌리는 산골散骨은 지정된 장소에서 하도록 정해져 있다. 바다에 뿌리는 건 불법이니 안 된다는 의견과 고인의 뜻에 따라 바다에 뿌려 주어야 한다는 찬반 여론이 대립할 수도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 부탁하지? 내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난감해하지 않을까? 고통 없이 죽어야 하고, 아름답게 죽어야 하고,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으로 발견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밤마다 죽음의 형태와 시기에 대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잠이 든다. 

 급성 간암으로 그가 떠난 지 7년이 지났다. 손쓸 새도 없이, 진단받은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병상에서 죽었다. 유언도 없었다. 감은 눈 옆으로 흘러내리던 눈물 한줄기가 전부였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남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 나이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해야 한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까? 의무와 책임과 사랑에 구속되지 않았다면? 

 남편을 목숨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를 따라 죽지 않았다. 처음엔 이별의 슬픔에 빠져 있느라, 다음엔 나를 버리고 간 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그다음엔 원망 때문에 죽지 못했다. 눈물만 났다. 반년이 지나도록 아침에도 울고 낮에도 울었으며 자다가도 울었다. 쇠로 만든 구두를 신고, 쇠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일곱 개의 산을 넘고 일곱 개의 강을 건너 마침내 연인을 만났다는 동화 속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를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일곱 개의 산과 강을 건널 용의가 있었다.

 그가 떠나고 처음 맞는 봄에는 벚꽃, 진달래, 목련, 개나리, 라일락이 한꺼번에 피었다. 그 어느 해 봄보다 황홀한 봄이었지만 꽃잎 하나하나에 어린 그의 얼굴과 눈동자 때문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할 수 없었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를 걸어갈 때도 내 마음엔 황량한 사막의 모래 먼지만 가득했다. 밤이면 더욱더 짙어지는 라일락 향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슬프게 메아리쳤다. 살아 있을 때도 죽어버린 지금도 그를 가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꼭 안아주고 싶었고 내 품에서 잠들게 해 주고 싶었다. 연민과 사랑은 다르다지만 연민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집안 곳곳에 어려 있는 그의 모습과 맞닥뜨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하루바삐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와 나의 고향은 같았지만 나는 바닷가에 살았고 그는 산골짜기에서 살았다. 같은 대학교에 다녔는데 나는 국문과였고 그는 기계공학과였다.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독서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두 해 선배였던 그는 안경을 썼고, 스타카토처럼 끝이 톡톡 떨어지는 말투로 발표했고, 소설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소개했다. 그가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기 때문에 뜬금없는 질문을 하며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본 적 있어요?

 내게 물었습니까, 라는 눈빛으로 그가 나를 보았다. 나는 안경 속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 아니, 없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부는 날 바다를 보러 가도 되나요?

 하고 되물었다.

- 물론 안 되죠. 우비를 입은 순경이나 군인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피신하라고 하죠. 

 나는 과장된 말투로 우리 집안의 전설을 이야기했다. 태풍경보가 내렸고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집에는 증조할머니와 나 둘밖에 없었다. 긴 우비를 입은 순경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빨리 피신하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곧 대피하겠다고 대답만 했을 뿐 눈을 감고 앉아서 알이 굵은 염주를 굴리며 쉬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다섯 살이던 나는 할머니 등에 매미처럼 딱 붙어서 두 팔로 할머니를 껴안고 있었다. 한순간 비바람 소리가 사라졌다. 섬뜩한 고요 속에서 나는 유리창 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물을 보았다. 어항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할머니의 염불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할머니를 따라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눈을 꼭 감았다. 영원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위이잉 거리는 바람 소리와 투닥거리며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을 때 창문을 가렸던 물은 없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가 물었다.

- 한 번 왔다 간 바닷물이 더는 안 오더라구요. 할머니와 나는 순경이 와서 문을 두드릴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어요. 순경을 따라 밖으로 나와보니 우리 집만 남기고 나머지 집들은 모두 없어졌더군요. 그게 쓰나미였는지 엄청나게 큰 파도였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은 축대 아래 있었고 바다와의 거리는 채 10m도 되지 않았다. 축대 위는 뒷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1차선 도로보다 조금 넓은 길가에 목조 가옥이 몇 채 있었다.

- 너무 높은 파도라서 우리 집이 물 밑에 잠시 얌전하게 있었던 거라고요. 어항 바닥의 돌멩이처럼요.

 -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 산화된 청동 같은 녹청색 물이 유리창을 가렸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니까요. 그런 장면은 영원히 잊히지 않죠.

 그는 믿지 않았고, 나는 토라진 척했다. 내 말이 정말인지 아닌지 올여름에 당장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며 그에게 다른 경험 하나를 들려주었다.

 - 여름이면 바닷가에 임시로 여름 경찰서가 생겨요. 모든 해수욕장에 있어요.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며 살피는 거죠. 작년에 해운대에서 이안류에 휘말려 먼바다로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안전요원이 구했다는 뉴스 못 봤나요?

- 해운대 이안류야 유명하니까 알지요.

- 파도가 심한 날이면 빨리 나오라고 방송을 해요. 그래도 사람들은 파도를 타느라 말을 듣지 않아요. 예전에 나도 그랬어요.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보았다.

- 어려서 철이 없을 때 그랬다고요. 저 멀리서 꿈틀대는 바닷물을 보는 순간 얼마나 큰 파도가 될지 마음속으로 계산해요. 틀림없이 높은 파도로 변할 물살이 넘실대며 천천히 다가와요. 가까워질수록 파고가 점점 높아져요.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이번에는 언제쯤 파도가 둥글게 구부러질까를 계산해요. 반드시 그 전에 잠수해야 하거든요. 구부러지는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면 파도에 휩쓸리는 거예요. 시간을 재며 먼바다 쪽으로 혹은 해변 쪽으로 헤엄치다가 어느 순간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어요.

 - 물속으로 들어가면 괜찮다 이 말입니까?

 - 그렇죠. 그냥 연초록색 물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걸 느끼기만 하면 되죠. 우리 집도 그랬던 거라고요. 축대 위의 집들은 모두 바다로 쓸려가 버렸지만, 우리 집은 집 안에 물이 별로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동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했고 증조할머니는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셨지만 내 견해는 그래요. 파도가 너무 높아서 안전했던 거라고요. 

 - 지금 나를 놀리는 거죠?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물었다. 

- 이번 여름에 해운대든 송정이든 가 보자구요. 직접 경험해보면 되잖아요.

 그는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 정말이라니까요. 그런 체험 때문인지 나는 바다를 아주 좋아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모든 바다를요.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는 말에는 그도 동의하는 거 같았다. 아, 그렇구나. 하는 눈빛이었고 고개도 끄덕였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해발 800m나 되는 금정산 골짜기에 살았기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기로서니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구심에 가득 찬 내 눈빛 때문이었는지 그가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우리 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습니다. 십여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학교에 가려면 산모퉁이를 돌아 1시간 이상 걸어야 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온천장으로 나왔어요.

- 중학교 때는 왜 바다를 못 보았는데요?

- 글쎄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집은 없어졌어요. 공용 주차장이 되어 있더라고요. 서운하지만 상관없어요. 바다는 그대로 있으니까요. 물고기처럼 헤엄을 잘 치고 싶어서 지느러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웃기죠? 물속에 잠긴 경험이 많아서 그랬나 봐요. 집이 통째로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잖아요?

 이번에는 의심하는 기색 없이 그가 활짝 웃었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잔처럼 맑은 표정이었다. 그는 잘생긴 편이었지만 웃지 않았고 늘 울적해 보였다. 허황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덕분에 그의 웃는 얼굴을 본 셈이었다. 그는 수영도 할 줄 몰랐고, 바다 밑 모래 속에서 조개를 잡아 본 적도 없었으며, 갈매기 소리에 눈을 뜨거나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든 적도 없었다며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자주 과장된 모험담을 얘기했던 건 그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씩 웃거나 방울새 지저귐처럼 명랑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서였고, 광택을 내며 도르르 굴러가는 수은 방울처럼 그의 눈동자에 머무는 반짝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바다에 가지 못했다. 그 여름에도 그 다음 여름에도. 

    

 그의 귀 옆으로 흘러내리던 눈물을 닦아주며 영원히 작별했던 그 순간 나는 회복될 길 없는 상실에 몸을 떨었다. 허무가 안개처럼 다가와 나를 감쌌고, 외로움은 끝이 없는 심연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파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빛조차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온몸을 찔렀고,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솟아오르는 분수처럼 마를 기미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그를 구할 수만 있었다면 끊임없이 괴로움을 겪는다는 무간지옥에 가는 거도 마다하지 않았을 텐데. 온순하고 과묵했던 시어머니가 내게 퍼부었던 남편 잡아먹을 팔자라는 원망이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말이었다. 친정엄마 이상으로 시어머니를 가까운 사람이라 여겼는데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하자 여느 엄마들처럼 궁합을 보러 갔다고 한다. 사주쟁이가 색시가 과부 될 팔자라며 부적을 쓰라고 했는데 부적값이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다니던 절의 스님이 그렇게 큰돈이 어디 있느냐고 울먹이는 그녀에게 돈 안 드는 처방을 내렸다.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사주쟁이의 말을 전하지 말고 100집에서 얻은 쌀로 떡을 해서 100집에 골고루 나눠주라고 했다. 그녀는 자루를 들고 온 동네를 걸어 다니며 얻은 쌀로 떡을 해서 고루고루 나눠주었다고 한다. 남편 삼우제 때 시누이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덤덤한 목소리로 들려준 이야기였다. 시어머니는 떡을 돌리는 대신 결혼을 반대할 수도 있었다.

 그를 보낸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시어머니가 통장을 내밀었다. 아들에게서 받았던 용돈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남편은 소비할 줄 모르는 시어머니 때문에 괴로워했다. 괴로움의 무게 만큼 무거운 그 돈을 받기로 했다. 시댁에서 나가기 위해서였다. 다 쓰러져가던 기와집을 2층으로 번듯하게 올린 사람은 남편이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까 봐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동생 때문에라도 이사해야 했다. 외로움을 견디는 게 괴로움을 견디는 거보다 나았다. 매일 그의 흔적을 느끼며 살아가는 건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 그와 결혼하는 걸 엄마는 심하게 반대했다. 그의 몸이 채 식기도 전에 엄마는 “네 눈까리 네가 찔렀다.”며 악담에 가까운 말을 퍼부었다.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경력이 단절된 중년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는 사주팔자 공부를 했다. 시어머니 말처럼 내가 정말 남편 잡아먹을 팔자인지 궁금했다. 명리학 교재를 몽땅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책들은 많았지만 개론만 늘어놓거나 수박 겉핥기식인 경우가 많았다. 이석영이라는 사람이 쓴 「사주첩경」이라는 책을 보다가 부성입묘夫星入墓라는 구절에 눈이 번쩍 뜨였다. 부성입묘는 남편 별이 무덤에 들어가 있다는 의미다.

 사주팔자는 네 기둥과 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2020년 4월 1일 오전 11시에 태어난 사람의 명식은 경자 년, 기묘 월, 갑술 일, 기사 시가 된다. 경자 기묘 갑술 기사라는 네 기둥(四柱)은 경, 기, 갑, 기라는 천간 4개와 자, 묘, 술, 사라는 지지 4개, 총 여덟 글자(八字)로 구성된다. 네 기둥과 여덟 글자의 관계를 통해 운명을 분석하는 학문이 명리학이다. 명리학에서 관官은 나를 치는 존재다. 내가 불이라면 불을 꺼버리는 물이 관이 되고, 내가 나무라면 나무를 자르는 금이 관이 된다. 관성은 여자에게는 남편이고 남자에게는 자식이다. 

 책에는 갑일이나 을일에 태어난 여자가 명식 중에서 신축辛丑을 만나면 부성입묘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신축월 갑오일에 태어났다. 나에 해당하는 갑이 오행 상 나무이므로 남편은 금인 신이 된다. 신이 축이라는 묘지에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나는 어떤 남자하고 결혼해도 과부가 되고 마는,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였다. 

 절반은 그에게 원인이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로 태어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끊이지 않는 수원水源일 터였다. 그러니 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물이 들어오는 운을 만나야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살면서 어떻게 부동산 투자를 포기하겠는가. 그는 친구의 권유로 빚을 내 땅을 샀고, 사기를 당했고, 절친한 친구였던 사기꾼을 찾으러 다녔고, 나홀로 소송을 했고, 재판에서 이겼지만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운명이 걸어가는 길은 10년 단위로 바뀐다. 이걸 대운이라 부른다. 병인 대운에 그가 죽었다. 병인丙寅은 천간의 병화가 활활 타오르도록 지지의 인목이 장작을 계속 공급해 주기 때문에 불기운이 아주 강하다. 불은 토기운을 강하게 만든다. 지지 인寅은 계곡물의 의지처가 되는 신申금을 충沖한다. 충은 전투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남편 명식에 토가 많아서(개천에 흙을 부으면 개천이 사라진다) 물이 마르는 중인데, 물의 근원이 되는 신이 충을 만나 전투까지 일어났다. 토에 해당하는 부동산 투자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성입묘인 아내까지 있으니 어찌 살기를 바라겠는가. 구걸한 쌀로 만든 떡을 온 동네에 돌렸던 시어머니는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때 내게 알렸다면 나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내 운명에 실망하며 절망 속으로 가라앉았을까?

 그가 나처럼 바다를 좋아했더라면,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와 함께 생을 영위했더라면, 나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는 헤엄칠 줄 몰랐기 때문에, 시냇물에 대한 추억밖에 없었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돈을 버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바다에 가지 못했다. 하늘나라에서도 같은 법칙이 적용될까? 그곳에는 새로운 인과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러기를 바랐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승과 저승에서 그리고 현세와 내세에서 언제까지나 되풀이되는 법칙이라면 그를 만나고 싶다는 내 소망은 버려야 한다.

 바다는 이상한 방법으로 나를 다시 찾아왔다. TV에서 부산시 서구 암남동 남쪽 10.3㎞ 해상에서 선상 낚시를 하던 낚싯배 선장이 맹독성으로 의심되는 문어를 신고했는데, 부산해경이 문어 사진을 전달받아 국립수산과학원에 의뢰한 결과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이 있는 ‘파란고리문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해남에서 바나나가 자라듯 바다도 아열대성으로 변하는 중인지 상어가 출몰하더니 파란고리문어까지 잡혔다고 앵커가 말했다.

 남편과 파란고리문어가 동시에 떠올랐다. 필리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앙증맞은 열쇠고리를 내밀기 전까지 나는 파란고리문어에 대해 몰랐다. 빛나는 노란색에 파란색 동그라미 무늬가 있는 문어가 무척 귀여웠다. 이렇게 깜찍한 문어는 처음 본다고 하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그가 씨익 웃었다.

- 바다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거도 있네.

- 내가 바다에 대한 모든 걸 어떻게 다 알아요? 어릴 때 물에서 좀 놀았다 뿐인데.

- 내가 바다에 대해 너무 모르는 거 같아서 민망했어. 짬짬이 바다 다큐멘터리를 본 거 몰랐지? 어느 날 파란고리문어를 만났지. 성체가 겨우 10cm에 불과한데 사람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독을 가졌대. 대단하지 않아? 

- 몸이 너무 작아서 맹독을 가졌나 봐요.

- 열쇠고리에 파란고리문어가 매달려 있길래 얼른 샀어. 언젠가 실물을 꼭 보고 싶어.

- 언제라도 가면 되죠, 뭐.

 화장대 서랍에서 열쇠고리를 찾아냈다. 요즘은 디지털 도어락이나 스마트 도어락을 쓰는 까닭에 열쇠고리는 필요가 없다. 남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파란고리문어를 구글링하다가 동영상을 하나 찾았다. 장갑 낀 다이버의 손바닥 위에 앙증맞기 짝이 없는 작은 문어가 놓여 있었다. 노란색 몸에 파란색 동그라미가 선명했다. 얇은 옷이나 잠수용 슈트를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로 자기를 따라 하면 안 된다고 다이버가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다. 먹물조차 독성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니 자기보호에 있어서만큼은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만했다. 

 파란고리문어 성체는 몸길이 10cm 무게는 80g 정도인데 내놓는 테트로도톡신은 급성치사량인 LD₅₀(일정한 조건 하에서 실험동물 50%를 죽이는 양) 기준으로 니코틴의 10배, 청산가리의 100배, DDT의 1,000배나 되었다. 아열대성 해역에 분포하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파푸아뉴기니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부산 앞바다에서 잡힌 건 길이 6cm, 무게 10g이었다.


 강습은 숙소의 풀에서 이루어졌다. 강사가 혈압이나 당뇨, 천식이나 만성기관지염, 혹은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었다.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하자 장비실로 갔다. 당분간 3mm 두께의 웨트 슈트를 입으면 된다며 두세 벌을 골라준 뒤 마음에 드는 거로 입고 나오라고 했다. 슈트는 물에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고 긁히고 베이고 쏘일 수 있는 것들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쫀쫀하고 꽤 탄력이 강해 입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탈의실 밖으로 나오니 그가 핀(오리발)과 탱크가 장착된 BCD(부력조절기)를 착용하라고 했다. 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조끼처럼 생긴 BCD에 팔을 끼운 다음 앞 벨트, 어깨 벨트 순으로 조였다. BCD와 공기탱크와 무게추를 합한 무게는 대략 20kg이다. 다이빙 마스크를 끼고 레귤레이터(호흡기) 게이지 바늘을 확인했다. 입수할 때 왼손은 마스크와 호흡기를 잡고, 오른손은 웨이트벨트 앞부분을 잡으라는 주의사항을 듣고서도 나는 그대로 풍덩 뛰어들었다. 마스크가 벗겨졌다.

- 그냥 뛰어내리면 마스크가 벗겨지거나 호흡기가 입에서 빠질 수 있다고 했잖아요. 내 말이 맞죠? 바다에서 그리되면 큰일 나요.

- 나는 무안함을 감추며 얼른 마스크를 썼다.

-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요.

 이번에는 마스크에 신경 쓰느라 웨이트벨트 앞부분을 잡지 않았다. 웨이트벨트는 물속에 가라앉기 위해 착용하는데 위기 상황에서는 부상해야 하므로 얼른 벗어야 한다.

- 다시.

 그가 소리쳤다. 입수 방식은 두 가지다. 서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딛거나 쪼그려 앉아서 뒤로 넘어지거나. 풀은 보기보다 깊었다. 

- 반드시 수면에서 탱크에 공기가 2/3 이상 들어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명심하세요.

 그는 단호한 말투로 엄하게 나를 가르쳤다. 

- 이제 마스크 윗부분을 누르고 아랫부분을 살짝 들어서 올린 다음 코로 공기를 불어 내세요. 호흡기에 물이 찼을 때는 날숨으로 불어 내거나 호흡기 앞부분에 있는 퍼지 버튼을 눌러야 해요.

 매의 눈으로 내 동작을 확인한 그의 머리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따라 내려가니 풀 바닥에 그가 앉아 있었다. 나도 앉았다. 그가 호흡기를 뺐다. 오른팔을 겨드랑이에 붙여 뒤로 한 바퀴 돌리는 동작으로 호흡기를 찾아 입에 물고 물빼기를 했다. 나는 그의 작은 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하려고 애썼다. BCD의 인플레이터와 디플레이터 호스를 권총 모양으로 잡고 공기를 넣고 빼는 연습을 했고, BCD를 벗었다 입는 연습도 여러 번 했다. 마침내 훈련이 끝났다. 나는 BCD와 웨이트벨트를 풀고 헤엄을 쳤다. 배영, 평영, 자유형에 모자비 헤엄까지. 그가 엄지 척을 했다. 

 야외 카페에서 감자튀김과 스테이크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오동통한 유리병에 든 산미구엘이라는 맥주는 목 넘김이 부드럽고 시원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덥지 않았다. 정원에 있는 썬베드에 누우니 스르르 눈이 감겼다. 

 하얀 방 가운데 남편이 누워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차갑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남편이 창문을 통해 새처럼 날아간다. 가지 말라고 소리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악을 쓰며 원망의 말을 쏟아낸다. 어쩌면 내게 이럴 수가 있어? 갈 때 가더라도 잘 살아야 한다거나,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거나, 행복해야 한다는 말 한마디는 할 수 있잖아. 약속이 틀리잖아. 그날 그 레스토랑에서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장면이 바뀐다. 아름다운 조각으로 둘러싸인 분수대 앞이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을 등지고 양복 상의를 어깨에 걸친 그가 활짝 웃고 있다. 그에게 달려간다. 그는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분수를 향해 걸어간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그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몸이 꿈틀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하늘은 찬란한 황금색으로 바뀌어 있고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다. 바람도 나와 함께 잠들었는지 대기는 고요하기만 하다. 꿈이라는 무대에서 남편과 내게 주어진 배역은 언제나 같다. 남편은 달아나는 사람이고 나는 뒤쫓는 사람이다. 

 초록색 잎사귀 너머로 해가 진다. 서울에서는 맑고 눈부셔서 찬란하기까지 한 석양을 본 기억이 없다. 회색 스모그 아래로 피를 토하듯 천천히 내려앉는 암홍색 태양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움을 가득 담은 하늘이 내 마음보다 붉다. 진한 향기를 내뿜는 꽃들이 야속하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는다.

그 사람을 돌려주세요. 

 되뇌어 보지만 하늘은 대답이 없다. 어둠이 닥칠 때까지 썬베드에 누워 있었다. 이제 카페의 불은 꺼졌다. 숙소 창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에 나무들은 실루엣으로 뭉쳐 있다. 썬베드를 나무 아래로 옮긴다. 나른하게 번지는 희미한 빛의 방해조차 받고 싶지 않다. 창의 불이 하나둘 꺼졌다. 마침내 어둠이 장막처럼 정원을 감쌌다.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모래알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무한에 가까운 별들보다 많은 그리움에 가슴이 터져버릴 거 같다. 바닷속 구경 한번 하지 못하고 가버린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다. 유언 대신 흘렸던 한줄기 눈물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별이 쏟아지는 저 하늘 어디엔가 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기다려요. 내가 갈 테니."

 소리 내어 말한다. 13억 년 전 블랙홀이 충돌할 때 생긴 충격파가 이제야 지구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러니 남편이 내 목소리를 듣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모터보트를 타고 2분 정도 나가서 실전 훈련을 시작했다. 잔물결 하나 없는, 쨍쨍한 햇살을 튕겨낼 거 같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산소통과 무게추 때문에 풍덩 소리가 크게 났다. 풀에서 나던 소리보다 울림이 컸고 몸으로 느끼는 진동도 컸다. 물에 잠긴 머리가 떠오르는 순간 풍덩 빠진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마스크를 고쳐 쓰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며 호흡기를 테스트했다. 이질적이고 메마른 공기 맛에 입안과 혀가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강사에게 이상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의 입수를 기다리며 둥둥 떠 있던 그의 머리가 물 밑으로 사라졌다. 나도 팔을 위로 치켜들고 BCD의 공기를조금씩 빼기 시작했다.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생각과 달리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이 가빠지며 심장이 빨리 뛰었다. ‘호흡기가 충분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되뇌며 나 자신을 달랬다. 숨쉬기가 수월해졌다고 느낀 순간 핀을 끼운 두 발은 어느새 물을 차고 있었다. 하얀 모래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있는 강사가 보였다. 그가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머리를 아래로 하고 천천히 발을 저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을 가리켰다. 둥둥 떠 오르려는 몸이 가라앉도록 부력을 조절하며 모래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그가 BCD를 벗으면 나도 벗고 입으면 나도 입었다. 호흡기 하나로 산소를 나누는 연습을 했다. 몇 번씩 같은 동작을 되풀이한 후 각자 자기 호흡기를 입에 무는 것으로 훈련을 마무리했다. 그가 몸을 돌려 발을 저었다. 나도 천천히 다리를 아래위로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물밑에서는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팔을 휘젓지 않아도 된다. 탱크가 산소를 공급해 주니 들숨을 쉬기 위해 물살을 피할 이유도 없다. 핀 킥만 살살 하면 된다. 헤엄칠 줄 몰라도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연유다.

 산란한 빛이 만든 역동적인 그물 무늬 아래서 흰색 산호와 연주황 산호가 물살의 일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손가락 크기의 작은 물고기들이 빠르게 내 곁을 지나간다. 내가 사진이나 영상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실체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닷속 풍경은 예외였다. 산호도, 물고기도, 바위나 돌멩이까지도 사진보다 실물이 아름다웠다. 보라성게와 말미잘을 건드리기도 하고 물고기 꽁무니를 쫓아다니기도 하다가 천천히 상승해서 수면 위로 나왔다. 고향 앞바다에서도 작은 물안경을 끼고 멍게나 뿔소라를 잡고는 했다. 그러나 물이 이 정도로 맑지 않았고 이렇게 환하지도 않았다. 이 바다는 물속 시야가 보통 15m 정도 되고 좋은 곳은 30m라고 한다.

 잊지 못할 첫 경험이었다. 파란고리문어를 만날 날을 기약하며 보트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바닷물을 씻어내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오니 강사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는 소시지와 감자튀김과 과일 샐러드와 산미구엘 한 병이 담긴 쟁반을 내게 주었다. 산미구엘은 필리핀 대표 맥주다. 방에서 먹든 썬베드에서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맥주와 음식은 리필이 가능하다면서. 나는 쟁반을 받아들고 썬베드에 앉았다. 방 안에 들어가면 에어컨을 켜야 하는데 낡은 에어컨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귀마개를 한다. 고물 에어컨 소리를 듣느니 정원에서 노니는 게 낫다.

 진분홍 바다로 떨어지는 낙조는 어제 못지않게 황홀하고 정원의 꽃들은 취할 만큼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꽃향기가 바람에 흩날리는 동안 나는 소시지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어제는 맡지 못했던 바다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비릿함이 전혀 없는 사이다 같은 바람이었다.

 하얗게 센 남편 머리에 검은 물을 들여주는 날이 올 줄 알았다. 자연 상태가 좋다며 염색하지 않을 사람이지만 내가 우기면 못 이기는 척하며 얌전히 머리를 맡길 테지. 두 손을 꼭 잡고 바닷가를 거닐고, 젊은 시절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고, 고향 앞바다에 가서 내가 어떻게 헤엄을 배웠는지 보여 주고, 방파제를 거닐며 등대나 밤배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갯마을 아이들은 물속에서 산다. 새까맣게 탄 피부는 껍질이 몇 번이나 벗겨졌다. 검은색 도화지에 흰색 크레파스로 그린 무늬처럼 오글오글하게 일어난 껍질을 문지르면 때처럼 밀렸고, 손톱으로 집어서 살살 당기면 습자지처럼 투명하게 떨어져 나왔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남편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계절에는 뒷동산 소나무 아래 앉아서 바다를 보았다. 무념무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태로 앉아 있었다. 바다는 수평선까지 뻗어 있었고 계절에 따라 물색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으나 청이든 남이든 같은 푸름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바다 덕분에 나는 변하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믿게 되었다. 내가 느긋한 건 바다처럼 넓고 깊게 살아가기를 소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감각이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처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종종 들었다. 핀잔인지 칭찬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내가 좋다고 하니 칭찬으로 이해했다. 목표지향적인 남편은 내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그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일등이 목표였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일류기업 취업이 목표였고, 취업한 이후에는 빨리 승진하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그 모든 목표의 근저에는 어머니의 평안한 삶이 있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한 목표 같은 건 없었다. 그는 가끔 자기 자신을 사냥꾼에 비유했다. 

- 남자들에게 있어 사회생활은 수렵시대의 사냥행위와 같아. 사냥감을 손에 넣을 때까지는 고독한 사냥행위만 눈에 들어오지. 

- 왜 고독한 건데요? 

- 혼자서 해결해야만 하는 과업이니까. 수컷들이 주고받는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깃들어 있어.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라면 가면 뒤에 숨겨야 하지. 약점을 드러내면 사냥에 실패하기 때문에 감추는 거야. 그 과정에서 벌이는 행위들은 사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해. 

- 무서워요. 모든 수컷의 행위에 의도가 숨겨져 있다니. 왜 그래야 하는 건데?

- 사냥에 성공하려면 그래야 해.

- 조직에서는 가면을 써야 한단 말이야?

- 그런 셈이지.

- 그러면 행복할 수가 없잖아요?

- 행복? 그게 뭔데?

- 가슴이 벅차고 뿌듯하고 하여간 뭐 그런 감정?

- 가족 앞에 포획물을 내놓을 때 자부심과 존재감을 동시에 느껴. 뿌듯하고 기뻐.

- 당신은 왜 살아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게 뭐예요?

-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야.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그는 가족들에게 돈을 내놓을 때 느낀다고 이해했다. 듣고 보니 내 감정과 그의 감정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내가 들려주는 허풍 섞인 바다 이야기를 들으며 크게 웃었을 때 그는 행복했을까? 

 어린 시절이 그립다. 수평선을 향해 쏟아지는 별들을 무심하게 보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근심이나 걱정은 물론이고 그리움도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이인 남편과 만났더라면. 그에게 헤엄치는 법도 가르쳐 주고, 물 밑 세상도 보여 주고, 소소한 작은 행복들도 있다는 걸 알려 주었을 텐데. 지금 보고 있는 저 은하수를 남편도 보고 있을 거 같았다. 광년 단위의 시간 속에서 몇 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늘나라 어디에선가 그와 나는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깼다. 짧은 잠 속에서 남편 꿈을 꾸었다. 

 캄캄한 밤인데 나 홀로 낯선 언덕 위에 서서 어두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흰색 모터보트가 물살을 날리며 빠른 속도로 호수를 가로질러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가까이 온 건 모터보트가 아니라 흰색 스포츠카였다. 굉음을 내며 미친 듯이 언덕으로 올라오는 차 때문에 황토색 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굴렸다. 유턴해서 언덕을 내려간 차가 조준 사격하듯 정확히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근처에 남편이 있다고 느꼈다. 남편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 어서 피해.” 목소리는 밖으로 터져나가지 못했다. 

 덜덜거리는 에어컨 소리가 들렸다. 귀마개가 빠진 모양이었다. 일어나서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했다. 노트북을 켜고 꿈을 적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이후 나는 모든 꿈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늘 남편을 구하지 못한 걸 후회했다. 부동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과 소송을 돕지 못한 걸 자책했다. 「혼자 소송하기」 같은 책을 읽으며 변호사 없이 소송하는 그를 돕지 못했다. 나는 다만 남편이 잃어버린 돈에 대한 미련을 끊기를 바랐다. 돈은 생길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둘이 힘을 합하면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언제나처럼 태평하게 말하며 남편을 달랬다. 

 내일 다이빙을 하려면 잠을 푹 자 두어야 하는데……. 귀마개로 귀를 막고 낮에 보았던 산호와 작은 물고기들을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보트가 내달리는 속도만큼 뭍과의 거리가 빠르게 멀어졌다.

- 시레나, 지금처럼만 하면 조만간 20m 깊이까지 내려갈 수 있을 거예요.

 바다로 가는 모터보트 위에서 강사가 말했다.

- 30m까지 내려가는 게 목표예요.

- 이퀄라이징을 잘해야 해요. 안 그러면 귀가 아파서 힘들 수 있으니까요.

 물속에 들어가면 우리 몸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가장 먼저 귀가 먹먹해진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나 기차가 터널 속을 빠르게 달릴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콧구멍과 입을 막고 숨을 귀 쪽으로 밀어내면 펑 하는 느낌과 함께 귀가 뚫리는데 이 동작을 ‘이퀄라이징’이라고 한다. 수심과 비례해 높아지는 압력을 견디려면 이퀄라이징을 반복해야 한다. 

 10m 정도 내려왔을 뿐인데 어제 본 바다와는 사뭇 달랐다. 부드러운 연산호가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제 막 움을 틔우는 나무처럼 잎보다 가지가 무성한 연산호들이 물속 정원을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식물 혹은 광물로 오인되었던 산호충은 입 부분에 있는 폴립(촉수)을 이용해 동물성 플랑크톤을 잡아먹는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2,500여 종의 산호들은 폴립의 성질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색을 지닌다. 형태도 다양하고 색도 다채롭다. 내게는 산호가 동물인지 식물인지, 어떤 모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란고리문어의 서식지라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중성 부력을 유지하는 연습을 여러 번 했다. 떠오르거나 가라앉지 않고 수중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으려면 중성 부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동굴 다이빙이나 난파선 다이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하강할 때보다 상승할 때 더 주의해야 한다. 흔히 잠수병으로 불리는 감압병은 상승 시에 걸린다.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우리 몸에 가해지는 압력은 1기압씩 증가한다. 수심이 10m라면 몸은 2기압의 압력을 받게 되고 혈액 속에 녹아드는 질소의 양도 2배가 된다. 급격하게 상승하면 압력이 갑자기 낮아지는데 그때 녹아 있던 질소가 기포로 변해 방출된다. 질소 공기 방울에 혈관이 막히는 게 감압병이다. 호흡곤란과 의식불명에 이르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강사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된 듯 여유롭고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때로는 앞에서 나를 이끌고 때로는 뒤에서 나를 지켜준다. 그가 있어서 든든했다. 그의 호흡기에서 나온 공기 방울들이 동글동글 위로 올라갔다.

집게발에 말미잘을 들고 있는 신기한 게를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말미잘이 집게발의 일부인 줄 알았다. 푸른 빛을 뽐내는 작은 물고기 무리가 함께 놀자는 듯 내 곁으로 다가왔다. 동그란 눈을 부릅뜬 성깔 있어 보이는 물고기와 시선을 교환했고, 개나리꽃처럼 샛노란 물고기 옆을 스르르 지나가는 바다뱀을 보았다. 산이나 들에서 뱀을 만났다면 몹시 놀랐겠지만, 아름다운 경치 때문인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공기 호흡을 하는 바다뱀은 폐가 몸길이만큼 길게 진화한 까닭에 서너 시간을 물속에서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은빛으로 하늘거리는 말미잘 촉수 사이에서 주황색 물고기 두 마리가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주황과 하양의 배열이 어릿광대 분장처럼 보여 클라운 피쉬라 불리기도 하고 말미잘의 영어 이름에서 유래한 아네모네 피쉬라고 불리기도 한다. 말미잘은 흰동가리의 화려한 색에 반해 꼬여 든 물고기를 잡아먹고 흰동가리는 말미잘 속에서 안전하게 산다. 흰동가리는 말미잘 독에 끄떡없는 점성물질을 가지고 있다. 오동통한 몸에 배가 볼록한 강사가 니모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흰동가리를 닮은 거 같았다. 잠수복이 검은색이 아니라 주황색이었다면 더 닮아 보였을 텐데. 나는 그를 니모라고 부르기로 한다.

 니모가 인제 그만 올라가자며 검지를 위로 치켜들었다. 위를 보니 온통 푸른색이다. 상승할수록 바다는 파랑에서 옥수수꽃 파랑으로 다시 밝은하늘파랑으로 바뀌었다. 파랑이 거의 사라질 즈음 물살에 흔들리는 보트 바닥이 보였다. 보트 옆으로 떠올라 공기를 후우 하고 내뱉노라니 고래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폐 호흡을 하는 새끼 고래가 물속에서 엄마 젖을 빤다면 익사하고 말 거다. 새끼의 안전을 위해 어미 고래는 몸을 뒤집어서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눕는다. 덕분에 새끼는 머리 위에 달린 콧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젖을 먹을 수 있다. 편리하게 진화하지 못한 고래는 일면 남편을 닮았다. 남편이 고래를 닮았다고 해야 하려나. 환경이나 상황에 편리하게 적응하지 못한 점, 포식자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 피붙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한다는 점이 닮았다.    

  

 나와 남편이 다녔던 대학에서는 3월이 되면 교내 곳곳에 동아리 신입회원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붙었다. 나는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마음이 끌렸다. 보르헤스가 쓴 단편소설 제목인데 바벨은 히브리어로 신의 문이라는 뜻이다. 보르헤스의 책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 점 때문에 나는 그 동아리에 가입했다. 남편은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 회원이 되었다고 했다. 동아리방에 모여 매주 열띤 토론을 했는데 2학기가 끝날 무렵 그가 나오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공부하러 간다기보다 동아리방에 가기 위해 학교에 가는 형국이었다. 그를 보는 게 좋았는데 갑자기 나오지 않아서 서운했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갈 즈음 도서관 입구에서 그와 마주쳤다.

- 잠깐만요. 요즘 왜 동아리방에 안 와요?

- 아, 바빠서요.

- 동아리 활동이 싫어요? 재미가 없어요?

- 그건 아닙니다. 좋아합니다만 가지도 않으면서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탈퇴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죠.

- 그래도 가끔 나오면 안 되나요?

- 글쎄, 그게,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가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군대 가는 게 뭐 어때서. 감옥에라도 가는 거처럼 비밀로 할 일인가? 이공계 학문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쉽다. 그래서 바벨의 도서관 회원이 되었다던 말과 상치되지 않는가?

 세월이 유수처럼 흐른다더니 어느새 4학년 봄 학기가 시작되었다. 진분홍 철쭉이 호위병처럼 도서관을 빙 둘러쌌고 백목련과 자목련이 어울려 피어 있었다. 목련이 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점심을 먹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익었다.

- 잠깐만요. 저기요.

 무턱대고 앞서가는 남자를 불렀다. 흘깃 돌아보는 남자는 틀림없는 그였다.

- 복학했어요?

 계단을 뛰어오르느라 숨이 턱에 차서 한여름 강아지처럼 헐떡이며 물었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반가움이 서린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 아 네, 복학했습니다.

- 복학했으면서 왜 동아리방에 안 왔어요?

- 이래저래 바빴습니다.

- 지금은 안 바빠요? 차 한잔 마실래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후문 앞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 커피는 내가 사겠습니다. 

그는 자기 몫으로는 카모마일을 시켰다.

- 카모마일은 위에 좋다던데. 속이 안 좋은가 봐요?

- 아, 카페인에 취약해서 한 모금만 마셔도 잠이 안 와요. 입시 공부할 때는 카페인 덕을 보았지만 요즘은 안 마십니다. 얼마 전 카페인 분해 유전자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내가 그런 사람인 모양입니다.

- 마시면 어찌 되는데요?

-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이 떨립니다. 박카스만 마셔도 그렇더라고요.

- 그러면 홍차나 녹차도 못 마시겠네요?

- 그렇습니다.

 나는 왜 그가 커피를 안 마신다는 걸 몰랐을까? 동아리 방에서 차를 마신 적이 한두 번뿐이었겠는가. 어딘지 모르게 예민해 보인 건 술도 차도 안 마시기 때문이었나? 조용하고 말수가 적긴 했지만 자기가 발표할 때는 조리 있게 또박또박 말을 잘했고, 피부는 까무잡잡했지만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누구에게도 반말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대놓고 그를 가볍게 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교적이지 않아서, 능변이 아니라서, 술을 안 마셔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모두에게 인기가 없었다. 남자들은 그를 재수 없다고 여겼고 여자들은 매력 없다고 여겼다.

- 군대는 어땠나요?

- 군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 이제 다 지나갔으니까요.

- 왜 갑자기 입대한 건데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 글쎄요. 갑자기 그러고 싶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뭔가 감추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주말에는 뭐 해요?

- 도서관에 올 겁니다. 밀린 공부해야죠.

 나는 도서관에 열심히 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겨서 기뻤다. 

     

 나는 매일 조금씩 더 깊이 바닷속으로 내려가고 있다. 

 30m까지 잠수할 계획인데 귀가 말썽을 부렸다. 안정적으로 하강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귀가 아팠다. 한 손으로 코를 잡고 귀로 공기를 내보내며 이퀄라이징을 했으나 실패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두개골 가운데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위를 보았다. 끝 모를 푸른 물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통증 때문인지 온몸이 짜부라질 거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물마저 점점 차가워졌다. 갑자기 다시는 파란 하늘을 보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 손을 코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 귀를 가리키며 아프다는 신호를 니모에게 보내고 검지를 치켜세워 위를 가리켰다. 다이빙 마스크 속 그의 눈이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달랬다. 잠수병에 걸리지 않도록 천천히 상승했다. 보트에 올라 마스크를 벗고 BCD도 벗었다.

- 귀가 많이 아파요? 돌아갈까요?

 그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귀에서 귀로 이어지는 예리한 통증 탓인지 말이 하기 싫었다. 처음으로 먼바다에 나왔는데 제대로 다이빙 한 번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니모의 조수가 샌드위치와 콜라를 내밀었다. 살짝살짝 흔들리는 보트 위에 앉아서 천천히 먹고 마셨다. 하늘에는 눈사람처럼 새하얀 구름이 미동도 없이 떠 있었다. 창천은 유유하고 백운은 조신하다. 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었다. 

 국문학과 시절 가장 좋아한 과목은 한시였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서 방문을 여니 섬돌 위로 꽃잎이 떠내려가더라는 시가 있었다. 홍수 난 걸 이렇게 낭만적으로 표현하다니 얼마나 멋진가. 이백의 월하독작도 좋아했다. 달과 술잔을 주고받고, 달과 나와 그림자가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취흥은 이런 거지. 싶었다. 술을 못 마시는 남편은 취흥이 무언지 몰랐다. 정신 줄을 놓는다. 정도로 이해했다. 하늘과 바다를 질펀하게 감싸는 순수한 푸름에 잠겨 있으려니 취흥은커녕 하늘 한번 느긋하게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간 남편 때문에 가슴이 저렸다.

 콜라에 녹아 있는 탄산 가스 때문인지 트림이 올라왔다. 그아악 소리와 함께 공기가 빠져나가자 답답했던 가슴이 편해졌다. 코를 막고 숨을 참으며 귀로 공기를 보내 보았다. 귀가 뻥 뚫리며 귓구멍에 물이 가득 차 있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 30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내려갔다. 아까보다 몇 미터 더 내려갔을 때 다시 귀가 아팠다. 여러 번 이퀄라이징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니모에게 올라간다는 신호를 하고 천천히 떠올랐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뱃전에 앉아 있는 나를 니모가 달랬다.

 긴 여정에 피로가 누적된 탓일지도 몰라요. 휴식 시간 없이 다음날 바로 잠수를 시작했잖아요. 내일 하루는 그냥 쉬어요. 계속 귀가 먹먹하거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해요. 내일 아침 상태를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죠.

아, 어쩌지? 눈앞에 바다가 있는데. 헤엄을 잘 치는 것과 잠수와는 상관이 없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물고기처럼 헤엄을 잘 친다고 남편에게 떠벌리지 않았을 텐데. 

 컨디션 조절을 위해 맥주에 대한 갈망은 접었다. 샤워부터 하고 썬베드에 누웠다. 특별히 더 휘황한 노을을 준비하려는 듯 바다에서 보았던 하얀 구름이 카페 위에 와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에 섞인 꽃향기가 음주 욕망을 일깨웠다. 아무래도 맥주를 마셔야 할 거 같았다. 맥주와 감자튀김과 망고 샐러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에어컨을 켜고 침대에 누웠다. 윙윙거리고 덜덜거리면서도 에어컨은 찬 바람을 쏟아냈다. 

 영어로 이론 시험을 쳐야 하는 만큼 예습할 필요가 있었다. 캐리어 안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 파란고리문어를 만지작거리며 결의를 다졌다. 내가 자격증까지 따려고 한 건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나를 핀잔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말을 들을 때면 안타까움이 스민 눈길을 보내곤 했다. 나는 비로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귀에 미세한 통증이 남아 있었다. 병원에 가야 하나? 귀 때문에 잠수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귀에 문제가 생기니 난감했다. 귀의 압력 평형을 유지하는 이퀄라이징이 잘되지 않으면 물속에 있을 때도 괴롭지만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약물치료와 소독으로 증상이 호전된다지만 고막에 염증이 생기고 삼출성 분비물이 흐르며 심하면 소량의 출혈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행자 보험 혜택을 못 받더라도 심해지기 전에 이비인후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얕은 잠을 자며 여러 가지 꿈을 꾼 거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니모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의사가 이삼일 정도 잠수하지 말라고 하며 처방전을 주었다. 여행자 보험에서 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소견서도 써 주었다. 

 바다가 아닌 곳을 관광할 생각은 없었지만 쉬는 동안 몇몇 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니모는 초콜릿 힐과 고래상어 스노클링을 추천했다. 고래상어 스노클링은 패키지 상품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예약도 받지 않으니 이곳에 머무는 동안 가야 한단다. 고래상어 포인트로 가는 보트가 출발하는 해변이 차로 20분 거리밖에 안 된다며 내일 아침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아침 7시에 고래상어 포인트로 출발했다. 고래상어에 대한 첫인상은 아, 땡땡이. 였다. 하얀 배 부분을 제외하고 회색 몸통 전체에 커다란 펜으로 찍은 거 같은 흰색 반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정면에서 보면 아귀처럼 납작했고 측면에서 보면 길고 늘씬했다. 꼬리지느러미는 위쪽이 아래쪽보다 두 배 정도 길어서 날렵해 보였다. 유연한 몸놀림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개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몸길이 10m 내외였는데 백수를 누리며 20m까지 자란다고 한다. 난태생이라 상어가 분명한데 고래라는 명사가 앞에 붙은 건 어마어마한 크기와 먹이 먹는 방법 때문이다. 저절로 입안으로 들어온 물은 아가미 돌기로 거르고 능동적으로 흡입한 물은 새파로 거른다. 새파는 아가미 안쪽에 있는 스펀지처럼 생긴 막이다. 성격이 온순해서 손으로 만지거나 쓰다듬어도 반응하지 않지만 만지면 벌금을 내야 하니 절대 만지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고래상어는 멸종위기종이다. 상어이면서 상위 포식자가 아니고 한없이 온순하다.

 고래와는 또 다른 이유로 남편이 떠올랐다. 예외적이거나 흔치 않은 존재라는 점이 닮았고,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는 점도 닮았다. 남편은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사냥꾼에 자신을 비유하면서도 언제나 상대와 함께 성장하고자 했다. 고래상어를 쫓아다니는 동안 모순되는 삶의 방식 때문에 남편이 공감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난 거 같은데 가이드가 보트 쪽으로 우리 일행을 몰고 갔다. 해변에는 샤워 시설 대신 플라스틱 통에 물이 담겨 있었다.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티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그랩으로 부른 택시를 타고 초콜릿 힐로 갔다. 수십 대의 ATV(사륜오토바이)가 길을 가득 메우며 전망대를 향해 달렸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나뭇잎의 초록은 한없이 짙고 하늘에는 언덕 숫자만큼 많은 뭉게구름이 떠 있다. 짝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흘린 거인의 눈물이 초콜릿 힐이 되었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구름 속에서 거인의 형상을 찾아보았다. 거인 같기도 하고 거인이 흘린 눈물 같기도 한 구름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전망대 계단 수는 214개. 발렌타인데이가 2월 14일이라서 214개를 만들었단다. 세계 어디서나 사람들은 전설과 동화를 만들어낸다. 

 천 개가 넘는다는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구릉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게 키세스 초콜릿이라고 한다. 키세스 초콜릿을 사 와야 하는 건데. 바로 지금 먹어야 하는 건데. 하나 마나 한 후회를 했다. 키세스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때 감격을 아직 잊지 못한다. 서울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가방에서 꺼내 주신 봉지 속에 은박지에 쌓인 작은 고깔들이 들어있었다. 고깔에 붙어 있는 종이를 당기자 은박지가 벗겨지며 달콤한 향기가 났다. 조심조심 입안에 넣었으나 차마 씹지 못하고 천천히 오래오래 녹여서 먹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한 이후에야 키세스 초콜릿 맛을 보았다. 내가 초콜릿 때문에 아버지가 출장 가시기를 바랐다고 했더니 출장을 다녀온 남편의 가방에서 초콜릿이 나왔다. 키세스 초콜릿일 때도 있었고, 화이트 초콜릿일 때도 있었으며,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일 때도 있었다. 그는 달다고 하면서도 내가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진분홍빛 구름이 카페 지붕에 걸려 있었다. 오늘 밤에도 나는 남십자성을 보며 은하수 너머 있을 그를 생각하리라. 머리카락과 몸에 말라붙은 소금기를 씻어내느라 평소보다 오래 샤워를 했다. 열대지방에서는 옷이 거추장스럽다. 피부가 땀에 젖어도 바람이 금방 식혀 주기 때문에 습기를 잔뜩 머금고 들러붙는 옷보다 맨몸이 훨씬 쾌적하다. 맨몸으로 다니니 자신을 돋보이게 치장할 도구는 문신밖에 없다. 상체는 물론이고 종아리까지 문신을 새긴 남자들과 젖무덤 사이에서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듯한 문신을 한 여자도 보았다. 

 보홀 사람을 핀다도라 부를 만했다. 니모의 조수가 종아리에 새긴 문신은 구부러진 두 개의 뿔과 부릅뜬 큰 눈, 송곳니 사이로 내민 길고 꼬불꼬불한 혀가 수염에 닿아있는 염소였다. 왜 하필 염소일까? 나라면 파란고리문어나 깃대돔 문신을 했을 텐데.

 구름이 많아서인지 노을이 넓고 크게 졌다. 불타는 듯한 노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하늘이었다. 핏빛으로 붉게 물든 노을에 그리움이 가지를 치며 뻗어나갔다. 스테이크와 샐러드와 맥주를 시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먹지 못해 허기진 탓인지 평소보다 더 맛있었다. 김치 없어도 밥을 잘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편과 나는 식성이 같았다. 맵고 짜고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둘 다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지만 다른 점도 있었다. 그는 나보다 적게 먹었고 같은 음식을 또 내놓으면 먹지 않았다. 한마디로 입이 짧았다. 

 두피에 소름이 끼칠 만큼 맥주는 차가웠다. 몸서리를 치면서도 잔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단숨에 들이켰다. 조만간 취기가 오르며 몸이 뜨거워지겠지만 순간의 시원함을 포기하기 싫었다. 한 병을 더 시켰다. 낯이 익어 데면데면해진 주방장이 너 오늘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다. 

- 하늘 때문이야. 너무 붉어서, 너무 뜨거워서 식히지 않을 수 없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내가 말했다. 

- 누가 아니래?

 가무잡잡한 피부색 때문인지 유난히 하얘 보이는 이를 드러내며 그가 웃었다.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홍색 노을도, 희고 붉은 꽃들도, 바닷바람도, 시원한 맥주와 스테이크도 행복함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파란고리문어를 잡겠다는 욕망조차 행복하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라 혼란스러웠다. 니모가 정원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 오늘 어땠어요?

- 좋았어요. 모두. 고래상어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초콜릿 힐도요. 고마워요.

 고래상어를 볼 때 슬펐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니모가 굿이라고 말했다.

- 내일 잠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오우, 정말? 괜찮겠어요? 이제 귀 안 아파요?

- 이제 말끔히 나았어요. 

- 오케이, 준비할게요. 내일 봐요.

 하루빨리 파란고리문어를 만나야 하니 일각도 지체할 수 없었다. 

    

 방카는 필리핀 전통 선박이다. 물을 만지고 싶어서 수면으로 팔을 내민 것처럼 둥글게 휘어진 균형대가 배 양편으로 뻗어 있고, 갑판 한가운데 천막이 펼쳐져 있는 흰색의 아름다운 배다. 육상에 합승 버스인 지프니가 있다면 바다에는 방카가 있다. 칠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답게 방카를 자가용처럼 쓴다. 어부들은 고기잡이할 때 쓰고 관광지에서는 호핑 투어나 다이빙할 때 쓴다.

 니모와 내가 방카에 오르는 걸 확인한 모터보트가 뱃머리를 돌렸다. 배 위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있었다. 곱슬거리는 검은 털이 어깨에서 배꼽까지 역삼각형으로 빼곡하게 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젖꼭지도 보이지 않을 만큼 털이 길었다. 그렇게 많은 털이 그렇게 넓은 범위에 난 사람은 처음 보았다. 다리는 물론이고 팔도 온통 털에 덮여 있었다. 남편이 보았다면 틀림없이 진화가 덜 되었다고 했겠지만, 털이 꽤 멋지게 나서 봐줄 만했다. 키가 큰 금발 남자는 눈썹도 털도 모두 금색이었는데 마치 눈썹이 없는 거 같았다. 두 남자의 애인으로 보이는 갈색 머리 여자 둘은 키가 크고 늘씬했다. 네 남녀와 그들의 인솔자인 강사와 나와 니모까지 총 7명을 위한 장비가 배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섯 명의 남녀가 먼저 바다로 뛰어든 후에 나도 뱃전에서 뒤로 넘어졌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호흡기를 점검하는 동안 귀가 또 아프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하강 속도를 평소의 반으로 줄이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는 바닷속은 언제나 파란색이다. 그러나 실제로 물속에 들어가면 근거리에서는 파란색을 느낄 수 없다. 빛의 반사가 없어서 눈부시지도 않고 그림자도 없다. 밝기의 정도가 균일할 뿐 아니라 선명하고 투명하다. 조도가 일정해서 산호초든 돌멩이든 물고기든 고유의 빛깔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바닷속 풍경은 인간이 만든 어떤 정원보다 화려하고 어떤 화가도 그려낼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시커먼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커다란 다이빙 마스크와 핀을 끼고 공기통을 맨 인간은 미적인 관점에서 전혀 아름답지 않다. 수생 생물들이 다이버들을 보며 참 밉게 생겼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치마폭을 펼치고 얌전히 앉아 있는 여인네처럼 두 날개로 바다를 껴안은 채 떠 있는 흰색 방카를 볼 때나 에메랄드그린과 터키블루와 아쿠아블루로 점점 짙어지는 바다를 볼 때도 남편이 떠올랐다. 그는 단 한 번도 즐기기 위한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제주도로 갈 계획이었지만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그의 어머니가 폐렴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간신히 식만 올렸다. 학창 시절 그가 수학여행도 못 갔다는 사연은 나중에 시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열악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잘하는 거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볼펜 한 자루씩 썼어. 심만 갈아 끼우며 쓰다 보니 나중에는 볼펜이 휘어지더라. 서울대학교에 갈 만큼 성적이 좋았는데 가지 못했어.” 이런 말을 할 때 그는 조금은 서글픈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그의 숨결에 섞인 탄식이 오래오래 방안을 떠도는 동안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에게는 열악한 현실에서 탈출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지만 내게는 어떤 목표도 없었다. 성적이 어중간한 데다 객지 생활을 하기 싫은 마음이 커서 기꺼이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갔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다면 아버지가 서울로 보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배낭을 메고 학교와 집을 오갔다. 의사가 되겠다거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거나 하는, 누구나 가질 법한 소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만큼 단순하게 살았다. 딱 한 번 목표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행동했던 적이 있긴 했다. 동아리 방에서 남편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 때.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와 어떻게 해 보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었다. 결혼했을 때도 좋기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가정을 어떻게 꾸리겠다는 목표는 없었다.

 그는 공대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문학 서적을 읽는다고 했지만 나는 세계문학 전집을 비롯한 많은 책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읽었다. 책 속의 인물에 감정을 이입해 슬퍼하고 기뻐하면서도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 역시 갖지 못했다. 남편이 안타까워하며 제발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서 뭐라도 해 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가책에 시달린 탓인지 지금도 가끔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험 보는 꿈을 꾼다. 다들 열심히 답을 적고 있는데 나는 빈 답안지를 앞에 놓고 쩔쩔맨다. 갑자기 종이 울리고, 감독관이 답안지를 걷어간다. 어떤 때는 고사장을 찾지 못해 건물 안을 이리저리 헤맨다. 없던 언덕이 생겨나서 힘들게 올라가거나 고사장에 출입문이 없어서 들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목표가 있어야 열심히 한다는 남편의 말이 참이라는 게 증명되는 중이었다. 파란고리문어를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더니 스포츠 스쿠버 다이빙 Ⅰ, Ⅱ, Ⅲ을 순식간에 읽었다. 처음으로 하루에 볼펜 한 자루씩 쓰며 공부했다는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목표가 있었다면 나도 열심히 공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중에 아이들이 태어나면 책 하나만큼은 질리도록 사 줄 거라고 했지만 그 소원조차 이루지 못했다. 자기 자식이 없으니 조카들을 끔찍이 예뻐했는데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상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아이하고 놀아줘야 하니까 일도 적게 했을 거고 그렇게 갑자기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녀 사이에 오가는 애정 표현에 서툴렀던 그는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일이면 잊지 않고 케이크를 사 왔다. 장미꽃을 사 오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렸더니 시어머님 생신 때 꽃다발 두 개를 사 왔다. 시어머니와 나는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일은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갈 예정이다. 스쿠버 다이빙이 가장 위험한 스포츠에 속하는 이유는 변덕이 심한 바다가 언제 어떤 위기 상황을 연출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중에서 장애물에 얽히거나 좁은 틈새에 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고 만일 끼게 된다면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써지나 이안류 같은 물의 흐름도 세심하게 파악해야 한다. 써지에 휘말리면 남편에게 모험담을 떠벌렸을 때처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하강해야 한다. 헤엄칠 줄 몰라도 다이빙할 수 있지만 만일 위험이 닥친다면 내가 훨씬 유리할지도 모른다. 무거운 무게추와 탱크를 벗어 버린다면 나는 상당히 먼 거리를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수심 15m를 지날 때쯤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귀가 아프지 않아야 하는데……. 또 귀가 아프면 어쩌지? 나는 니모의 뒤를 따라 조심히 내려간다.

 물고기 뒤를 쫓아다니다 보니 그들의 행태 역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경계하며 숨는 놈, 위험이 다가와도 무심히 제 할 일만 하는 놈, 누가 잡으러 오기라도 하는지 걸핏하면 잽싸게 내빼는 놈, 눈만 내밀고 동정을 살피는 놈,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는데도 먹는 데 정신이 팔린 놈, 사냥을 위해 끈질기게 때를 기다리는 놈. 저마다 고유한 속성에 따라 살고 있었다. 사람보다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남편에게 정말 필요한 것도 자유였다. 언젠가 그가 자유롭게 훨훨 날기를 바랐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길 바랐으며 행복함이 넘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자유는 내게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남편은 늘 자신의 피붙이를 바라보았고, 나는 늘 남편을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남편과 처음 간 해외 여행지는 대만이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동행한 탓에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괴팍한 시아버지 비위 맞추랴, 한식으로 식사 준비하랴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다가 녹초가 되었다. 남편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만 데리고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휴가 때면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나 설악산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자유.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는 나는 물리적으로 자유롭지만 그리움의 포로가 되어 있다. 그가 보고 싶다. 귀가 말썽을 부리지 않아 무사히 다이빙을 마쳤다.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니모가 방문을 두드렸다.

- 내일 좀 깊이 내려갈 건데 같이 갈래요? 경치가 끝내주지만 내키지 않으면 숙소에서 쉬어요.

- 귀가 아플지도 모르는데?

- 걱정되면 그냥 쉬어요.

- 내일 아침에 결정하면 안 되나요? 아직 자신이 없어요.

- 그래요. 내일 봅시다.     


 잠에서 깼을 때 창밖이 희번했다. 너무 일찍 일어났나 보다. 

 마당에 나가서 스트레칭을 했다. 분무기로 분사한 물방울처럼 작은 이슬이 거미줄에 촘촘하게 붙어 있고 공기 중에는 희미하게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 카페로 가던 주방장이 굿 모닝하고 인사했다. 으깬 감자와 삶은 달걀과 토스트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방으로 가기 위해 정원을 가로지를 때 니모를 만났다. 나는 다이빙 하러 가겠다고 말했다. 

- 당신을 포함한 16명의 다이버가 나와 조수 2명의 인솔하에 잠수할 예정이예요.

 그는 언제나 자세한 정보를 준다.

- 그런데 내가 저 팀과 다이빙할 수 있을까요? 저들은 잘한다면서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내가 물었다.

- 걱정 말아요, 내가 계속 당신을 케어할 테니까.

 니모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잘 할 수 있다고 나를 격려했다. 

 나무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을 때 사람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파도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모래톱을 적시는 물이 투명했다. 파도에 부딪히고 바람에 풍화된 조개껍데기와 산호초는 하얀 모래로 다시 태어나 아름다운 물색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바닷물은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에메랄드색에서 짙은 에메랄드색으로, 하늘 파랑에서 짙은 하늘 파랑으로, 마침내 남색으로 층을 이루며 점진적으로 짙어졌다. 다이버들이 모터보트 3척에 나누어 탔다. 30분가량 달린 보트가 커다란 흰색 방카 옆에 섰다. 이제까지 본 방카 중에서 가장 컸다. 중앙의 주탑에서 떨어지는 케이블이 아름다운 사선을 그리는 사장교처럼 방카의 돛대와 날개 사이에 밧줄이 묶여 있고 갑판에는 네모난 천막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한 사람씩 차례로 방카에 올랐다. 긴 나무 의자 옆에 공기탱크를 장착한 BCD, 다이빙 마스크, 핀이 가지런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다이버들이 장비를 착용하고 차례로 입수했다. 

 텀벙, 텀벙, 텀벙, 텀벙, 텀벙.

 텀벙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남은 사람은 나였다. 니모가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뒤로 구르는 자세로 입수했다. 수면으로 떠올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기를 점검했다. 건조한 공기에 입안이 마르는 느낌은 여전했다.

 지금 하강하는 가파른 절벽은 최대 깊이가 30m라고 들었다. 연산호와 많은 해면으로 덮인 절벽에 영지버섯처럼 생긴 테이블 산호가 많이 있었다. 암초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고, 꽃송이처럼 여러 개가 모여 있기도 하고, 층층이 계단처럼 붙어 있기도 했다. 노란색 깃대돔들이 테이블 산호를 운동장 삼아 노닐고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산호 위에 떠억 하니 올라앉은 거북이는 공부하려는 걸까, 아니면 침대라고 생각하고 잠을 청하는 걸까. 니모가 손가락으로 마스크를 두드리며 바오밥 나무와 생김새가 흡사한, 엄청나게 큰 테이블 산호 아래를 가리켰다. 등뼈가 훤히 비치는 작은 물고기 무리가 노닐고 있었다. 글래스피쉬다. 

 처음 잠수했을 때는 말미잘 속을 왔다 갔다 하는 흰동가리만 보아도 신기했는데 이제는 그저 그랬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생긴 모양이다. 예쁘지 않은 해삼이 더 반가운 건 고향 앞바다의 해삼과 생김새가 다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돌기를 바짝 세운 홍삼이었다. 해삼은 위기 상황에서 포식자에게 창자를 내준다. 고노와다는 해삼창자젓의 일본말인데 지금도 시장에서는 고노와다로 통한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손바닥만 한 나무통을 열면 향긋한 향이 나는 주황색 젓갈이 들어있었다. 결혼한 이후에는 먹지 못했는데 값이 비싸기도 했지만, 남편이 이런 거도 먹냐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갔던 날 아버지가 귀한 사위 대접한다고 고노와다를 내놓았는데 남편은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나는 가늘게 채 친 마 위에 고노와다를 올려서 먹는 걸 좋아한다.

 이퀄라이징이 잘 되었으므로 모든 것을 세심하게 보고 살필 수 있었다. 빨판상어 두 마리가 지느러미를 살살 흔들며 거북이 배에 딱 붙어 있었다. 빨판상어와 바다거북은 공생관계다. 어이없는 건 거북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는 편리공생이라는 점이다. 

 남녀의 결혼도 사랑으로 위장한 일종의 공생관계가 아닐까? 공생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고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해서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남편 등에 붙어서 유익을 구하는 존재였을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진심으로 그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고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진심과는 별개로 결혼함으로써 남편의 자유가 제한되었다는 건 분명한 팩트다. 한 부모의 아들로, 오빠로, 형으로 존재할 때보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으니까. 나를 책임져달라고 말한 적 없지만, 그는 틀림없이 무한에 가까운 책임감을 가졌을 거다. 남편은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돕고 싶었고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안아주는 동안 그가 편안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책임감으로 가슴이 무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유언 한마디 하지 못하고 감긴 눈에서 한줄기 눈물만 흘렸을 때, 나 역시 책임이라는 돌멩이 하나를 그의 가슴에 얹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었다. 나의 사랑이 그의 삶에 일찌감치 종지부를 찍게 하려는 긴 준비였던 건 아니었을까? 임종을 지킨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그의 눈물을 해석했다.

 바라쿠다 무리가 나타났다. 바라쿠다가 우리에게 온 게 아니라 우리가 바라쿠다 영역에 들어간 거다. 엄청나게 커다란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데 어떻게 대열을 유지하는지 궁금했다. 다이빙 마스크를 통해 사물을 보면 실제보다 커 보인다. 바라쿠다는 큰 입이 눈가까지 찢어져 있는 데다 위턱보다 튀어나온 아래턱으로 인해 사나워 보였다. 수천 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바라쿠다가 빙글빙글 돌며 회오리바람처럼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가 질렸다. 바라쿠다는 한 마리가 공격을 시작하는 순간 무리 전체가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데 시속 30㎞가 넘는 속도로 달려드는 바람에 그 충격만으로도 먹잇감이 기절하거나 죽는다고 한다. 덤벼드는 기세가 창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듯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창꼬치라고 부른다. 

 망망대해는 모든 걸 가슴 속 깊이 감추고 있다. 표리부동이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지만 바다는 반대의 의미로 표리부동하다. 표가 거센 파도로 상징되는 냉혹함이라면 리는 평화롭기만 한 아름다움이다. 남편도 바다처럼 표리부동했다. 용건만 딱딱 말하고, 곰살맞게 먼저 다가갈 줄도 모르고, 감정 표현을 하지 못해서 재수 없다는 평을 들었지만 알고 보면 속속들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표리부동한 바다에서 나는 비로소 달콤한 위안을 얻었다.

 산호 틈바구니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있는 물고기의 몸이 반쯤 보였다. 얼룩말처럼 현란한 줄무늬가 있고 지느러미는 갈퀴처럼 생겼다. 붉은 몸에 흰 줄무늬가 있다고 해야 할지, 하얀 몸에 붉은 줄무늬가 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전체적으로는 붉은빛이 우세하다. 점쏠베감팽의 촉수에 쏘이면 구토와 두통뿐 아니라 호흡곤란이 일어나 순식간에 공기통의 산소를 소비하게 된다고 하니 녀석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수선화보다 더 눈부시게 노란 저 녀석은? 노란 자리돔이다. 돔이라는 글자가 끝에 붙어 있으니 고급 횟감인 참돔과 친척일 테지만 체고가 높고 옆으로 납작해 색종이를 접어 만든 물고기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하다. 

 니모가 손가락으로 불그스럼한 해면을 가리켰다. 눈이 툭 튀어나온 것까지 개구리와 흡사한 물고기가 앉아 있다. 씬벵이는 몸의 색을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바꿀 수 있고 피부와 몸의 형태까지 주변 환경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다. 눈앞의 씬벵이는 해면의 표면과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피부를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다. 녀석이 머리 위로 지렁이처럼 생긴 걸 흔들고 있다. 미끼 역할을 하는 촉수다. 촉수를 먹이로 오인한 물고기가 가까이 오면 엄청난 순발력으로 입을 쩍 벌려 물고기를 삼킨다고 한다. 먹이를 삼키는 속도가 몇십만 분의 일 초에 불과해 바로 옆에 있는 물고기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니 얼마나 빠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남자들의 모든 행위에는 저의가 있다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씬벵이처럼 때와 장소에 따라 변신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였겠지만 글래스피쉬처럼 투명한 마음의 소유자인 탓에 저의라는 걸 가져 본 적이 없었을 거다.

 가늘고 긴 몸에 세로로 검은 줄이 있는 쓸종게가 떼를 지어 지나갔다. 방향을 아래로 튼 녀석들이 모래에 주둥이를 처박고 몸을 떨었다. 먹이를 먹는지 모래가 보글보글 일어났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불가사리가 산호 위를 넘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본 불가사리는 연필로 그린 별처럼 팔이 짧고 푸르스럼한 바탕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는 빨간색과 남청색 불가사리가 긴 팔을 펼치고 있었다.

 니모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가 이끄는 대로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초록과 검정이 섞인 둥그런 물체에 구불구불한 무늬가 뇌처럼 얽혀 있는, 신기하게 생긴 물체에 내 손을 가져다 댔다. 고무로 만든 공처럼 탱탱하면서도 벨벳처럼 부드러웠다. 손바닥과 손가락 세포 하나하나가 흥분에 젖어 몸을 떨었다. 니모의 집게손가락이 나뭇가지 모양으로 하늘거리는 연산호와 지금 만지는 물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지금 만지는 게 산호라고 알려주었다. 산호가 살아 있을 때는 공육부라 불리는 부드러운 부분으로 표면이 덮여 있고, 끝부분에는 폴립이 많이 모여 있어 아름다운 군체를 이룬다.

 산호. 여자들이 좋아하는 보석. 내게도 산호 반지가 하나 있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남편이 사 준 반지다. 그해에는 내 생일이 마침 일요일이었다. 남편은 나를 데리고 드라마에도 가끔 나오는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갔다. 랍스터에 와인을 곁들인 코스 요리만으로도 충분히 호사를 누렸다고 생각했는데 식사를 마친 내게 반지를 내밀었다. 분홍색을 입힌 골드 링에 동그란 산호가 얹혀 있었는데 조명이 반사될 때마다 선홍색 광채를 내뿜었다. 남편은 결혼할 때 꼭 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왜 산호 반지를 골랐는지에 대해 길게 말했다. 

 산호가 금슬을 좋게 한다거나,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는 콜레라 예방약으로 썼다거나, 총명의 상징일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보호해준다는 믿음 때문에 부모가 아이에게 산호로 만든 장신구를 해 주는 풍습이 있었다거나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내용이었다. 웃지도 않고 맛있었느냐고 묻지도 않은 채 산호가 얼마나 귀한 보석으로 대접받았는지 그것만 설명하는 모습이 조금 우습기까지 했다. 산호 자체에 관해, 어떤 동물이고 먹이는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고, 수심에 따라 색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설명을 하는 게 평소 그의 태도이련만. 그는 지난 10년 내내 결혼식 때 예물다운 예물을 못 해 주었다고 자책하며 살았던 걸까? 내가 너무 기뻐하면 오히려 그가 슬플 거 같았다.

 산호가 3월의 탄생석이고, 결혼 35주년 기념석이며,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할 경우 금슬을 좋게 한다는 믿음 때문에 결혼 예물로 쓰인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호 반지를 받지 못해 섭섭했던 적은 없었다. 소박한 커플링으로 충분했다. 그가 저세상으로 간 이후에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산호 반지를 차마 낄 수 없었다. 가끔 꺼내서 오래오래 바라보기만 했다. 산호 반지 입장에서는 세상 구경을 못 해 심심할지도 모른다. 

 산호는 폴립의 수에 따라 육방산호와 팔방 산호로 구분한다. 경산호는 6의 배수 만큼씩의 촉수가 있어 육방 산호류로, 연산호는 8개의 촉수를 가져 팔방 산호류로 분류한다. 연산호는 수온의 영향을 덜 받지만, 경산호는 수온이 20도는 되어야 살 수 있다. 보석으로 가공되는 산호는 촉수가 8개인 팔방 산호다. 깊은 바닷속에서 자라므로 심해산호라고도 불린다. 1년에 4mm 정도 자라는데 가공된 형태는 공처럼 둥근 모양이 가장 비싸다. 붉은 핏빛으로 완전한 구체인 내 반지가 몇 살이나 먹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산호의 색상은 황록공생조류(무척추동물의 체내에 공생하는 갈색, 황갈색, 황금색 등의 단세포체의 총칭)의 색상과 산호가 가지고 있는 색소 단백질의 색상 조합으로 결정된다. 자포동물인 산호는 조류에게 먹이를 공급하며 광합성을 돕고,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만든 영양물질을 산호에게 공급해 성장을 도우면서 산호의 색을 형성한다. 폴립 1cm3 당 100만~200만 마리의 조류가 있는데 광합성을 통해 생산하는 산소량이 어마어마하다. 바다가 생산하는 산소가 밀림이 생산하는 산소보다 훨씬 많다. 산호가 하얗게 되는 백화 현상은 죽은 게 아니라 공생조류를 배출했기 때문이다. 공생 조류를 내뱉으면 산호의 색소 단백질이 탈색되어 흰색으로 변한다. 백화 현상 후 일부 산호는 회복되기도 하지만 폐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의 온도가 상승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산호에 대해 이렇게 세세한 내용까지 조사한 이유는 늦었지만 그를 본받고 싶어서다.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나 하다못해 정수기 하나를 살 때도 그는 어떤 부품을 썼는지까지 알아낸 다음 “부품이 더 좋으니 이 회사 제품을 사.”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그가 고른 제품을 샀다. 소소한 물건들까지 재질이 무엇인지, 어떤 부품이 들어갔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는 했다.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열심히 들어 주었다.

산호와 말미잘과 물고기들과 노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검푸른 색이 아득히 짙다. 물이라기보다 아득한 허공 같았다.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공기 방울로 미루어 이곳이 바닷물 속이고, 저 아래에도 다이버가 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공기 방울은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뽀글뽀글 올라왔다. 나와 함께 잠수를 시작한 사람들의 날숨도 섞여 있을 테지. 그들은 탱크를 두 개씩 메고 내려갔다. 니모가 게이지를 두드리며 산소 잔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물 위로 얼굴을 내밀고 호흡기를 뱉으며 퓌이이 소리를 냈다. 막혔던 숨을 한꺼번에 뱉어내면 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다. 숨을 참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을 날려 보내겠다는 의도를 섞어 크게 날숨을 쉬었다. 휘파람 소리 같은 ‘퓌이이’를 고향 앞바다에서 자주 들었다. 멀리서 가늘게 들려오는 퓌이이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테왁을 끌어안는 해녀가 보였다. 테왁 밑에는 그물처럼 생긴 망시리가 달려 있다. 해녀들은 망시리 속에 방금 물속에서 캔 전복이나 뿔소라, 멍게 등을 담아두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고향 바다의 해녀들은 겨울에도 물질을 쉬지 않았다. 자갈밭에는 네모난 깡통에 각목과 불쏘시개가 들어있고 옆에는 작은 솥단지와 사발과 갈아입을 옷이 든 보퉁이가 있다. 물 밖으로 나온 해녀들은 덜덜 떨며 나무에 불을 붙이고, 곁손을 불에 쬐며 추위를 달랜 다음 작은 냄비를 불 위에 얹고 방금 딴 해물을 넣고 죽을 안쳤다. 죽이 끓을 동안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망시리 속의 뿔소라와 해삼 멍게 전복을 대야에 옮겨 담았다. 몸을 덥힌 해녀들은 대야를 머리에 이고 해변에 늘어서 있는 횟집으로 팔러 갔다. 남은 것들은 파라솔 밑에 앉아 관광객들에게 직접 팔았다.

 다이빙 포인터에 사는 생물은 물고기든 조개든 해초까지도 인간에게 포획될 염려가 없다. 법으로 포획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안온하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Not full possession. But being fully! 니모가 자주 하는 말이다. 가진 건 없어도 마음은 부자로 살라는 뜻이겠지. 매일매일 바닷속을 들여다보면 나도 니모처럼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배 위에 오르니 음식상이 차려져 있었다. 니모가 먼저 먹자고 했다. 여러 종류의 꼬치와 카나페, 샐러드와 도넛, 망고와 콜라가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집은 건 이전에는 잘 먹지 않던 도넛이었다. 나는 설탕에 굴리거나 시럽을 끼얹은 도넛을 좋아하지 않았다. 

- 시레나, 너, 단 거 안 좋아하잖아. 판데살만 먹더니 도넛을? 

 니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 아, 이상하게 단 게 끌려요. 콜라가 이렇게 청량하고 산뜻한 맛인지도 처음 알았어요.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어깨를 으쓱하며 도넛을 하나 더 집어 들었다.

 - 너는 여기서 살아야 할 거 같아. 처음 봤을 때보다 혈색이 좋아졌어. 얼굴에 생기가 돌아. 예뻐지고 젊어졌어.

- 정말?

- 정말이고 말고. 나중에 거울 봐요.

 대답하려는 찰나 그윽하고 트림이 나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속이 시원했다. 호흡기로 숨 쉬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가슴이 답답했는데 트림하고 나니 3년 묵은 체증이 가신 듯 속이 시원했다. 도넛은 더 달콤해졌고, 콜라는 더 산뜻해졌다. 천막 아래 있는 긴 의자에 누웠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고 불어오는 실바람이 젖은 몸을 어루만졌다. 기분 좋게 나른하고 평화로운 오후였다.

 손바닥만 한 배가 노를 저으며 다가왔다. 방카에 오른 여자가 들고 있는 건 산호 조각과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였다. 나는 주황분홍색 산호 목걸이와 귀걸이를 샀다. 주황분홍이라는 색깔 이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묘한 색을 표현할 어떤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쇠젓가락 굵기의 짤막한 산호에 구멍을 뚫어 실에 꿰었는데 색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새끼손톱 반만 한 물고기가 조롱조롱 매달린 목걸이는 조개껍데기였다. 자세히 보니 까만 눈이 점처럼 작게 찍혀 있는 노랑자리돔이었다. 조개껍데기나 산호 조각을 오래오래 손질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발리카삭 섬에 사는 몇 안 되는 원주민이라고 했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귀걸이도 했다. 남편이 곁에 없어서 서운했다.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었을 텐데.

그날 저녁노을은 찬란한 금빛이었다. 구름은 오래오래 금빛으로 머물렀다가 주황으로 변해갔다. 나는 저 하늘 어딘가에 있을 남편을 생각했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름다운 하늘나라에서 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번 다이빙은 슈트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니모가 말했다. 바닥에 있는 화산에서 용암이 분출되기 때문에 수온이 높다고 했다. 수심 4m까지는 민물이고 그 아래는 소금물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얇게 민 반죽을 여러 겹 겹쳐 구워낸 파이를 세워놓은 것처럼 회색 바위가 겹겹이 서 있는 곳을 지나가니 그림 같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금강산 해금강에 가 보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기암괴석 사이에 놓인 바다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물에 비친 바위와 나무 때문에 바다색은 연한 에메랄드와 파랑과 초록으로 부분부분 나뉘었다. 물개처럼 멋지게 헤엄치는 남자들과 주요부위만 살짝 가린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튜브 위에 누워 물장구를 치는 아가씨들이 보였다. 

- 갑자기 시계가 흐려지면 1m 정도 상승하거나 하강해요. 그러면 시야가 확 트일 겁니다. 내가 손을 잡고 이동하겠지만 미리 알려 주는 겁니다.

니모가 말했다.

- 알았어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였을까 내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시계가 흐려진다는 문제보다 수온이 40℃에 육박한다니 더위를 이길 수 있을까가 걱정되었다. 나는 여름이 제일 괴롭다. 내복을 입지 않고 겨울을 보낼 수는 있지만 에어컨 없이 여름을 견디기는 어렵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옷을 훌렁훌렁 벗을 수 없어서 너무 괴로웠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아픈 적도 있었다. 남편은 시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실과 우리 방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시아버지는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소비를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과소비는커녕 일상적인 소비 행태조차도 두고 보지 못했다. 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면 얼른 달려와서 수도꼭지를 잠갔다. 채소나 과일이나 그릇을 씻을 때 흐르는 물에 씻어야 잔류 농약이나 잔류 세제 양이 적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도 말이다. 내가 며느리라서 많이 참는 게 그 정도였다. 시어머니는 평생 접시 하나 마음 놓고 산 적이 없었다며 푸념했다.

 장비를 착용하고 50m 정도 걸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입수했다. 민물 구역에는 산호도 없고 예쁜 물고기도 없었다. 새우와 메기를 닮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핀을 벗어들고 등산을 하듯 절벽을 오르는 다이버들이 보였다. 나도 핀을 손에 들고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몸을 웅크렸다가 뛰면 부력의 힘 때문에 중력이 없는 곳에서 뛰는 것처럼 몸이 부웅 떠오른다. 서너 번 뛰어오르다가 핀을 신고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수온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손을 위로 올리면 물이 차고 아래로 내리면 따뜻했다. 니모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가 이끄는 대로 조금 더 내려가니 타고 남은 모기향 재처럼 고운 모래가 깔려있었다. 핀킥을 조심하라는 말은 산호모래나 조개껍데기 모래보다 화산재 모래의 입자가 더 곱고 가벼워서 핀을 세게 저으면 모래가 연기처럼 일어나 다른 다이버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사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물이 점점 미지근해졌다. 걱정했던 것만큼 덥지는 않았다. 

 민물에서 올랐던 절벽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바위에 작은 홍합과 다슬기가 붙어 있고 복어도 보였다. 니모가 검지로 수면을 가리켰다. 따뜻한 물에서 나가기 싫었지만 상승했다. 올라갈수록 물이 점점 차가워졌다. 출수했을 때 이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파도가 전혀 없어서 바다가 아닌 거 같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바람도 쉬어가는 곳이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니모가 방수팩에 든 휴대폰을 꺼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 모습을 찍더니 바다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혹은 입수하기 위해 사람들이 쉴새 없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장비를 벗어서 나무 데크 위에 놓고 멀리뛰기 자세로 뛰어내렸다. 

- 다시

니모가 소리쳤다.

- 그렇게 얌전하게 뛰지 말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사진이 나오게.

 어쩌란 말이야? 이번에는 한 발을 내밀며 입수하는 자세로 뛰어내렸다. 니모가 또 웃었다.

- 다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뛰나 좀 보고 해요. 진짜 재미없네.

 남녀 할 것 없이 가랑이를 쩍 벌리거나 두 손으로 만세를 부르며 뛰어내리고 있었다. 가랑이를 저렇게 쩍 벌리다니.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끝없이 다시를 되풀이할까 봐 걱정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가랑이는 쩍 벌리고 두 팔을 번쩍 들고 뛰어내렸다.

- 굿, 베리 굿, 와서 이거 좀 봐요.

 니모가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액정 속 내 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45도 각도로 팔은 위로 뻗치고, 가랑이는 엉거주춤하게 벌리고 있었다. 김연아나 손연재처럼 일직선으로 멋지게 다리를 쫙 펼친 모양이 아니었다.

- 아, 이게 뭐야. 어서 지워요.

내가 졸랐지만 그는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 에이, 따뜻한 바닷물이 기분 좋았는데 당신 때문에 다 망쳤잖아요.

 남편이 사진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하는 동안 방카에 도착했다. 말괄량이라고 놀리며 딱따구리가 나무를 쫄 때처럼 숨이 넘어가게 웃을지도 모른다. 니모와 조수들이 탱크를 교체했다. 필리핀에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에 의해 격침된 일본 전함들이 여러 척 있는데 니모는 나에게 난파선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난파선이 있는 바다는 발리카삭만큼 시야가 좋지 않고 조류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 주의해야 해요. 배 안은 공간이 좁고 갇혀 있는 물이라 순환이 느려요. 핀 킥을 천천히 살살 하고요. 중성 부력 조절을 잘하면서, 천천히, - 조금씩, 조심스럽게 움직이세요. 그리고 또 …….

- 무서워요. 안 하면 안 될까요?

- 내 뒤를 따라 천천히 와요. 당신이 잘 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는 언제나 마지막으로 물에 뛰어든다. 20m 남짓 내려온 거 같은데 아래쪽에 배 비슷한 물체가 보였다. 붉은 산호에 둘러싸인 불가사리 형상의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포탄이 철판을 찢으며 지나간 흔적이다. 니모가 손전등을 켰다. 

 말미잘에게 잡아먹히듯 니모의 몸이 구멍 속으로 스르르 빨려들어 갔다. 나도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산호가 붙어 있는 외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손전등 불빛 사이로 더께가 낀 울퉁불퉁한 구조물들이 보였다. 바닥에는 된장 항아리 속 곰팡이 같은 물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수많은 손이 나를 낚아채 배 안에 가둘 것 같았다. 군데군데 부식된 선체는 뻘건 녹 색깔과 진흙 색깔이 섞인 것 같은 우중충한 벽돌색을 띠었다. 잔돌과 조개껍질이 널려 있는 곳을 지나자 네모 모양의 작은 구멍이 나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다. 니모가 핀을 살살 저으며 앞서 들어갔다. 나는 손전등을 들지 않은 손으로 벽을 잡고 구멍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부유물이 많아서 물이 뿌옜다. 고개를 드니 여러 개의 네모난 구멍이 또 보였다. 예전에 선실이 있던 장소 같았다. 구멍들을 왼쪽에 두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이 있던 자리에 산호와 말미잘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비참하고 처절했던 역사의 현장에 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오른쪽에 있는 작고 동그란 구멍들을 지나자 니모가 바닥에 닿을 듯 몸을 낮췄다. 검고 어두운 캔버스 가운데 니모의 몸이 있었다. 무서웠다. 처음 잠수할 때 느꼈던 두려움이 난파선 가득 퍼져나갔다.

 죽음의 흔적으로 누군가는 돈을 번다. 따개비와 산호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고 묵묵히 잠겨 있는 배는 죽음이라는 빵 사이에 삶을 끼운 샌드위치 같았다. 남편보다 내가 더 오래 살아서 행복한가. 모르겠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살았을 뿐 행복하게 산 건 아니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우리는 최종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그가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지 가족에게 어떻게 헌신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게 더 슬플 거라고 믿었다. 죽음은 모두 슬프다. 만리타국에서 바다에 가라앉아 생명을 잃은 젊은 남자들이 애달팠다.

 녹슨 쇠창살이 감옥의 철창처럼 길게 늘어서 있다. 손전등 불빛에 흰색과 황색과 갈색이 뒤섞인 얼룩이 드러났다. 얼룩은 축축한 슬픔을 안은 채 점점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선체를 따라 천천히 나아갔다. 선교와 갑판 위에는 이름 모를 각종 구조물이 부식된 채 나뒹굴고 있었다. 따개비가 붙어 있는 우둘투둘한 기둥들 사이로 노란색과 파란색이 얼핏 보였다. 파란고리문어? 속도를 높여 다가갔다. 파란색 몸에 노란 무늬가 있는 물고기였다. 가냘프고 작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바들바들 떨며 침입자로부터 도망쳤다. 

 니모가 둥근 원통을 넘어갔다. 검은색 슈트 탓에 공기탱크의 동그란 바닥과 하얀 핀 두 개만 보였다. 넓은 공간이 나왔고, 전방에 여러 개의 계단이 보였다. 니모가 뒤를 돌아보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정지 신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니모가 자세를 바꿔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는 걸 지켜보았다. 탐사선 다이빙에 필요한 건 중성 부력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좁은 틈새에서 기다릴 때도 닫힌 공간에 머무를 때도 중성 부력을 유지해야 한다. 

 잠시 뒤에 그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니모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난간을 잡고 조심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머리가 쑥 올라갔다. 말로만 듣던 에어 포켓 같았다. 세월호 때도 그 이후에도 배가 침몰하기만 하면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TV에 나와서 에어 포켓이 있으니 얼마 동안 생존해 있을 거라는 등의 말을 했지만 에어 포켓 덕분에 살아나온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침몰한 배 안에 공기만 차 있는 공간이 정말 있었다. 먹먹한 정적이 으스스하고 스산했다. 내려와서 니모의 하얀 핀에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땅이라면 한발 한발 나아간다고 하겠지만 물속이니 한 지느러미 한 지느러미? 공포로 범벅된 죽음의 현장에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살아 있는 자의 여유가 이런 것일까? 그래서 우리는 삶에 집착하나?

 여러 개의 구멍을 계속 통과했다. 사람이 있었다는 작은 단서조차 찾을 수 없어서 허무하기까지 했다. 물살의 흐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갇힌 물인데도 인간의 흔적은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함선의 탑승자들에게는 생이 끝나는 시각의 차이만 존재했을 거다. 이런저런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히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으며 연인이었을 그들이 왜 배와 함께 바닷속에 가라앉아야 했는지 혼란스러웠다. 유리 조각, 가는 밧줄 나부랭이 등을 몸에 얹은 작은 게가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위장하기 위해 무엇이든 주워서 몸에 붙이는 녀석의 모습에서 죽음과는 다른 생의 의지를 보았다. 작은 게가 온몸으로 삶이란 이런 거라고 외치고 있었다. 

 철제 빔이 가로놓인 구멍 속으로 니모가 사라졌다. 날카로운 부분에 슈트가 걸리지 않게 조심하며 나도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앞사람이 핀킥을 거칠게 하면 부유물이 일어나 뒤따르는 사람의 시야를 가리게 되고 그러면 뒷사람은 미아가 될 수 있다. 배 안이라고는 하지만 공간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서 서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니모가 하얀색 핀을 착용하는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나는 진분홍색에 세로로 검은 줄이 있는 핀을 골랐다. 햇빛 아래에서 예쁜 색을 고른 것이다. 나는 늘 이런 식이다. 

 니모가 고개를 돌리며 손전등으로 나와 앞쪽을 번갈아 비췄다. 길쭉하고 둥근 구멍이 불빛에 드러났다. 구멍의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들쑥날쑥했다. 니모가 구멍을 가리킨 다음 손바닥을 아래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침착하라는 뜻이다. 그의 뒤를 따라 조심조심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핀 킥을 최소화하면서 시뻘겋게 녹슨 구멍을 몇 개나 통과했다. 구멍 뒤로 물과 해초가 보였다. 두 팔을 간신히 펼칠 정도로 좁은 공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그만 배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전방 위쪽이 희부윰했다. 몸을 조금씩 세우며 구멍을 향해 가던 니모가 핀 킥 속도를 높였다. 기도해야 하는데……. 움직임을 멈추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짧은 시간에 불과했고 니모가 있고 산소 탱크도 지고 있었지만 무서웠다. 전 국민이 두 눈을 뻔히 뜨고 아이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른다. 사고 자체보다 규정이나 명령 대신 구조를 선택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조리의 그물에서 우리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거꾸로 서서 헤엄치는 물고기 무리를 만났다. 녀석들,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비참했던 죽음의 흔적을 보기 싫은 건가, 왜 거꾸로 서서 몰려다니는지. 조그만 물고기들 사이를 지나 방카와 연결된 로프를 잡고 출수했다. 니모와 내가 제일 먼저 방카에 올랐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피곤해서 쉬이 잠들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난파선의 느낌이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실감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노트북을 켰다. 일본 전함들은 모두 1944년 9월 24일 새벽에 침몰했다. 14척(혹은 16척)의 배가 침몰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5분이었다. 45분이라니.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난파선을 탐사하고 간 수많은 다이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편이 이곳에 왔다면?

 어느 추운 겨울에 남편은 골목을 배회하는 길냥이에게 스티로폼으로 집을 지어주고 매일 사료를 가져다주었다. 집으로 데리고 오지 못한 건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나는 어물전에서 생선 대가리를 얻어서 시아버지가 외출하시기만 기다렸다가 삶았다. 한밤중에 남편과 함께 길냥이에게 가져다주었다. 다음 해 봄에 길냥이 부부는 새끼 5마리를 낳았다. 아무리 추운 밤이라도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러 뒷산으로 가던 그였으니 수많은 젊은이가 순식간에 죽어간 현장을 보면 틀림없이 화를 냈을 거다. 그리고 공학도답게 화물선인지, 냉동선인지, 군함인지, 구축함인지, 호위함인지를 구별했을 거다. 엔진 마력이나 배의 속도에 대해 혹은 전투능력에 관해 내게 설명해 주었을 거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총알이 몇 미터를 직진한 후 낙하하는지 궁금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가 혼이 났다고 했다. 그때부터 총, 장갑차, 전투기, 항공모함 등 육해공군의 무기에 관심을 가졌고 물리학이나 공학을 혼자 공부했다고 한다. 소설이나 시만 읽었던 나와는 확실히 달랐다. 남편이 나처럼 1년 동안 스쿠버 다이빙 공부를 했다면 배뿐만 아니라 산호나 물고기에 관해서도 웬만한 학자 못지않은 지식을 쌓았을 텐데. 아까 보았던 물고기 중 물구나무서기로 몰려다니던 녀석들은 쉬림프피쉬, 고고하게 혼자 떠다니던 녀석은 그레이트 바라쿠다, 새끼 참친가 싶을 정도로 참치를 닮은 녀석은 트레발리, 여러 가닥의 수염이 있는 녀석은 캣피쉬였다. 

이국땅에서 맞는 잠 못 드는 밤 남편의 품이 못 견디게 그립다. 

     

니모가 동굴 다이빙을 가자고 했다. 

- 동굴? 헉. 벌써? 내가 할 수 있을까요?

- 레스큐 코스까지 하겠다면서요. 반드시 가야 해요.

- 흠, 밤새 고민해 볼게요.

- 또 고민을? 알았어요.

 포기할까 하다가 가기로 했다. 걸음마를 떼기 무섭게 헤엄을 배운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난파선 탐험도 했는데.

 동굴 다이빙을 할 때는 탱크를 등에 지지 않고 겨드랑이에 낀다. 니모의 왼쪽 팔목에는 스풀 릴이 장착되어 있다. 테세우스가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아리아드네가 주었던 명주실과 같은 역할을 스풀 릴이 한다. 해면과 작은 산호가 붙어 있는 동굴 입구에서 니모가 바위에 줄을 묶은 다음 릴을 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줄이 그의 손목에서 계속 나왔다. 손전등 불빛이 만드는 원에 들어온 물체만 볼 수 있다. 바닥이나 천장이 드러나면 무섭지 않았고 손 닿을 거리에 벽이 있어도 위치를 가늠할 수 있으므로 안심이 되었다. 남편의 등만 보며 살았던 거처럼 나는 니모의 하얀 핀만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커먼 어둠 속에 모래밭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불빛을 비춰보았지만 모래뿐이었다. 모래는 비스듬히 위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모래가 일어나지 않도록 얌전하게 킥을 하며 경사를 따라 올라갔다. 생명의 흔적은 없었다. 니모가 내뿜는 공기 방울만 두 줄로 솟아올랐다. 수직으로 상승하며 이쪽저쪽 벽에 불빛을 비추자 울퉁불퉁한 갈색 벽이 드러났다. 위쪽이 점점 환해졌다. 갑자기 얼굴이 물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동굴 안이었다. 천장 가운데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석순이 있는 것으로 보아 종유굴인 모양이었다. 벽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거미줄에 걸린 이슬처럼 반짝였다. 니모가 빨리 돌아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다시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동굴을 오래 보고 싶었다. 영원한 이별이란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다음 동굴은 해저 절벽 가까이 있었다. 바닥에 있는, 불길해 보이는 어두운 부분이 동굴 입구였다. 구멍 속으로 순식간에 니모가 사라졌을 때 나는 상실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어두컴컴한 구멍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서 니모가 지구의 반대편으로 가 버렸거나, 아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무궁한 심연으로 빠져 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전체에 해면, 산호, 바다나리 등이 잔뜩 붙어 있어서 조심조심 나아가야 했다. 자칫 잘못해서 부딪히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동굴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동굴 안은 먹이를 찾는 물고기로 가득했다. 

 동굴에서 나오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건 광대하게 펼쳐져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푸른색이었다. 깊고 푸른 물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경이와 신비로 가득한 푸른 물과 갑자기 맞닥뜨린 건 수직 절벽의 가운데쯤에 동굴의 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구 양쪽 절벽에 수많은 종류의 산호가 있었다. 분홍색 같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한 작은 꽃이 가득 핀 산호, 잔솔가지 같은 키 작은 산호, 한 떨기 설중매 같은 산호, 붉은빛을 한껏 뽐내는 부채산호, 수많은 산호가 물살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절벽은 지상에는 없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작은 거품들이 한 덩어리로 소담스럽게 뭉쳐 있는 형상이 여기저기 보였다. 니모가 말한 거품 산호다. 그는 보기 힘든 산호니까 반드시 잘 찾아보라고 입수하기 전에 알려주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용궁이 이런 건가 싶었고, 마침내 인어가 된 거 같았다.

 연노란색 열동가리돔들이 지나갔다. 열동가리돔은 부성애가 지극한 물고기다. 수컷이 수정된 알을 입안에 품어서 부화시킨다. 입안 가득 알을 담고 있으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수컷이 알을 부화시킬 동안 암컷은 왕성하게 먹이를 먹는다. 열동가리돔 암컷은 인간보다 먼저 여성 상위 시대를 구현했다.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가 있었다면 남편은 부성애를 마음껏 발휘했을 거다. 어쩐지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틀림없이 열동가리돔 이상의 엄청난 부성애로 아이들을 돌보았을 거다.     

 파란고리문어에 대해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이곳까지 와서 다이빙하고 있는지조차 잊을 만큼 황홀한 신천지에 마음을 빼앗긴 탓이다. 파란고리문어는 너무 작아서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찾기 어렵다. 다 자란 성체가 겨우 10cm에 불과할 뿐 아니라 위장에도 능하기 때문이다. 다이빙 숍에 계속 머무르며 누구와도 일행이 되어 함께 잠수하기로 했다. 

 문어를 보려면 야간 다이빙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동안 파란고리문어는 물론이고 다른 문어도 본 적이 없으니 야행성이 분명했다. 그럼 그렇지, 내가 목표지향적이 되어 봤자지. 자조하다가 지금부터 찾아보지 뭐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잠수는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 고추장과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고추장 생각도 김치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과일과 채소, 고기와 수프로 충분했다. 망고 주스와 오렌지 주스에 맥주까지 매일 마시니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남편이 삐쩍 말랐던 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육개장보다 맑은 쇠고기 장국을 좋아하고, 매운탕보다 맑은탕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나와 식성이 비슷하다는 걸 안 이후에는 두 가지 버전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붙는 남편 얼굴을 보는 게 큰 기쁨이었다. 

 파란 물 위에 하얀 길이 생긴다. 뱃전에 앉아서 뒤로 물러나는 하얀 포말을 본다. 배가 달리는 속도에 비례해 바람이 점점 강해진다.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 있다. 동동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몰려가다가 두셋이 뭉쳐서 하나가 되기도 하고, 싸우기라도 했는지 다시 찢어진다. 

 내 무릎을 베고 누운 남편이 털어놓는 속내는 짠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어른들도 아이들도 유별난 놈이라고 했지만 의미는 달랐다며 웃었다. 어른들은 착하다거나 철이 들었다고 칭찬했지만, 아이들은 재수 없는 놈이라며 놀이에 끼워주지 않았다. 소외감을 느낀 적은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이 하는 짓이 유치해 보였단다. 그 시절에 그와 내가 만났다면 틀림없이 내게도 유치하다는 평가를 내렸을 거다. 

- 동아리방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 아이처럼 천진하고 해맑은 모습에 끌렸어.

- 뭐래? 놀리는 거야? 칭찬이야?

- 둘 다야. 

 나는 아무 생각이 없긴 했다. 학교 갔고, 먹었고, 놀았고, 그리고 잤으니까.

- 나는 당신이 지적인 거 같아서 좋았고,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동아리를 탈퇴할 만큼 배려심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는 결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내게도 운동을 하든, 외국어를 배우든 자기 계발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전공을 살려 글을 써 보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나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 주고 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일이 즐거웠다.      

 파란고리문어는 야행성이었다. 낮에는 암초 사이에 숨어있다가 어둠이 내리면 밖으로 나와 먹이 사냥을 시작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 나는 이제야 이런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일은 흔히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관심’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끌려서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니 관심부터 가지라며 웃었다. 나는 파란고리문어의 서식지에 와서도 눈앞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태평하게 물밑을 돌아다니기만 했다.

 황금색 하늘이 갈색이 되고 흑갈색이 되고 마침내 흑요석처럼 검은 하늘이 되었다. 남십자성이 반짝이자 니모가 바다로 나가자고 했다. 생긴 모양은 비슷하지만 니모의 손전등이 동굴 다이빙 때와 달랐다.

- 다이브 라잇이 저번과 다르네요.

- 아, 이건 동영상 찍을 때 쓰는 건데 나중에 물 밑에서 보면 엄청난 차이가 날 겁니다.

- 비싸겠네요.

- 시레나 거보다 8배쯤 비쌀걸요.

 주간 잠수 시에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만, 야간 잠수 시에는 불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 몸 가장자리에 노란 띠를 두른 물고기가 나타났다. 그림자와 짝을 지어 부드럽게 유영하며 회전하는 모습이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독수리 두 마리가 나란히 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니모가 다른 곳을 비추었다. 쏟아지는 불빛에 날이 샌 줄 알았는지 쏠배감펭이 기지개를 켜며 한 바퀴 빙글 돌았다. 내가 좋아하는 깃대돔이 둥그런 원 안에 들어왔다. 노란색 몸을 불빛이 좇는다. 진분홍 갯민숭달팽이의 엉덩이에 달린 촉수가 물살에 흔들렸다. 니모가 가늘고 긴 막대로 주황색 산호 속을 가리켰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주황빛 거미가 붙어 있었다. 거미처럼 긴 다리로 걷지만 물론 진짜 거미는 아니다.

 나는 불빛을 좇아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몸 전체가 흰 장어가 지나갔다. 니모의 다이버 라잇이 계속 녀석을 좇는다. 모래밭을 기어갈 때는 마치 백사를 보는 듯했다. 산속이나 들판에서 백사를 만나면 몹시 무섭겠지만 바닷속에서 보는 흰 장어는 지느러미 때문인지 리본체조 선수가 흔드는 리본 같았다. 니모는 산호초 속에서 잠자는 투명한 가재를 깨우기도 하고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물고기를 건드리기도 했다.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다이빙도 행복할 수 있을까. 작은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다이빙을 하며 비로소 치열했을 남편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포획한 획득물을 식솔들 앞에 내놓을 때 비로소 존재감을 느낀다고 했다. 혼자서 치러야 할 고독한 싸움이라고도 했다. 12살 때 가장이 되기로 했다는 애처로운 아이가 눈에 밟혔다. 앞만 보며 달려야 했을 그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의 인생에는 쉼이 없었다.

 불현듯 어젯밤 꿈이 생각났다. 꿈속에서 그는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의미인지 이곳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 멀리 등대의 불빛이 비치고 나는 물 위에 떠 있다. 방파제까지 헤엄쳐서 건너가야 한다는 걸 저절로 알고 있다. 헤엄을 칠수록 방파제와 더 멀어진다. 등대의 불빛만 깜박일 뿐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무섭다. 방파제 방향으로 죽기 살기로 헤엄친다.

 방파제 위다. 그런데 내가 목표로 한 그 방파제가 아니다. 나는 잘못 온 거 같다. 돌아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고 누군가 알려준다.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배를 태워 주겠다고 한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다. 남자를 따라가려는데 언제 왔는지 남편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 배를 타면 안 된다면서 화를 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이다.

 꿈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내 손전등 불빛 아래 파란고리문어가 나타났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파란색 동그라미가 선명해졌다. 다이빙 수역 전체가 포획 금지 구역이기 때문에 어떤 생물도 잡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밤이고, 불빛에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내 행위는 충분히 감춰질 거다. 짧은 찰나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원래 계획은 잡는 즉시 먹는 거였다. 맹독에 사지가 마비되고 의식을 잃고 마침내 숨이 멎어 해류가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파란고리문어가 작고 연약해 보였고, 무엇보다 너무 아름다워서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TV에서 파란고리문어 뉴스가 나왔을 때 오랫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을 거듭했던 문제가 순식간에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남편 때문에 알게 된 파란고리문어였기에 운명적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맛있게 먹고 순식간에 죽으니 이보다 더 편안한 방법은 없으리라. 마음의 고향인 바다에서 죽음을 맞을 테고 남편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인어로 환생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남편은 죽을 때까지 헤엄치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나 나는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만 배우면 될 거 같았고, 그래서 발리카삭에 왔고, 마침내 파란고리문어와 조우했다.

 파란고리문어를 향해 나아갔다. 위험을 감지했는지 샛노란 몸에 찍힌 둥근 고리가 파랗게 빛을 내뿜었다. 가냘픈 생명체가 다가오지 말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망설이는 사이에 파란 동그라미가 점점 커졌다. 어둠을 물들이듯 퍼져나가는 푸른 빛 속에 남편 얼굴이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허둥지둥 다가갔다. 그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잡혔다.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화난 얼굴과 흡사했다. 어떻게 파란고리문어보다 못하냐고 나무라는 듯 엄하고 형형한 눈빛이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파란고리문어가 말하는 거 같기도 했고 남편이 말하는 거 같기도 했다. 너 자신을 지키라고. 독립된 영혼을 가진 독립된 존재가 되라고. 사랑이란 자신의 독립성을 잃지 않고 모든 사물과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다그치듯 말하는 소리는 고막 안쪽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두개골 속에서 울렸다. 반가움이 서운함과 억울함으로 바뀌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솟구쳐 오르며 눈물이 쏟아졌다.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꿀꺽 삼키는 사이에 호흡기가 빠져나갔다. 입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왔고, 짠맛이 아프게 목을 할퀴며 넘어갔다. 시야가 흐려지며 공황에 빠진 거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흐릿한 빛 속에서 누군가 호흡기를 내 입에 물려주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니모라는 걸 알았다. 호흡을 고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 파란고리문어는 없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캄캄했다. 아득하고 신비로운 검은 물이 태초의 혼돈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다. 

(제14회 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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