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제롬 데이빗 샐린저(니콜라스 홀트)의 글쓰기는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사교계의 스타 우나 오닐에게 눈에 띄고 싶어서였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유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젊은 남자.
아주 개인적이고 소박한 욕망에서 시작된 그의 글쓰기는 평생을 바쳐야 하는 길로 이어진다.
“무언가 하겠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흔쾌히 응원해주지 않는다.”
가족마저도 걱정과 우려로 선뜻 지지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머니만은 달랐다. 그의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주었다.
결국 그는 대학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잠재력은 있었지만, 글쓰기 수업은 그에게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나 교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되고 싶은 것과 실제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글을 쓴다는 건 단순한 자아 표현이 아니다.
목소리가 독특한 건 좋지만, 그 목소리가 이야기를 집어삼키면 독자의 감정적 체험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지방색 짙은 포크너의 작품을 예로 들며 교수는 설명한다.
“단조롭게 읽어도 듣는 이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가.”
이야기의 힘이란 결국 ‘무엇을 말하는가’에 있다.
젊고 자신감 넘쳤던 샐린저는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끝없는 출판사의 거절뿐이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교수는 날카롭게 묻는다.
“아무런 보상 없이 평생 거절당해도 글을 쓸 수 있는가?
아니라면 다른 일을 찾아라. 진정한 작가는 아니다.”
이 질문은 모든 창작자에게 던져지는 통과의례 같은 질문이다.
그리고 샐린저는 계속 썼다.
샐린저에게는 관찰력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술자리의 대화, 사교계의 춤추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글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상들은 그의 글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
결국 스토리 잡지를 통해 작가로 데뷔하게 된 샐린저.
그의 재능은 점차 대중지 포스트, 뉴요커 등으로 확장되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전쟁으로 완전히 뒤바뀐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샐린저는 살아남았지만 살아있는 느낌을 잃었다.
전쟁의 후유증은 글을 쓰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정신병원에 있는 현재의 샐린저와 과거의 샐린저가 교차된다.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지 못한 상태.
홀든 콜필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흔들리는 청춘의 상징이 된 인물.
그러나 그 안에는 전쟁을 겪은 작가의 상처와 분노, 세상을 향한 질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써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든 거야.”
세상 모든 작가가 그렇진 않다.
그러나 어떤 작가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세대를 넘어 불리는 이름이 된다.
샐린저가 바로 그런 작가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수많은 거절을 견디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결국 한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된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쓰는 사람만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