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온도

-.-

by 을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따뜻했던 기온이 순식간에 내려가 세탁하려고 넣어 둔 빨래바구니에서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오늘은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나 들어야 하는 날이다. 책을 읽으며 토론하는 것을 배우는. 그냥 읽고 생각을 말하면 되는 독서에게서도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며 도서관에 들어서니 이미 머리카락은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볼품없었다.


머리 손질을 해야겠구나, 쭈뼛쭈뼛 나온 머리들이 밉상이다.


확- 잘라버려야겠어.


생각하니 시간이 더디다. 그때 동료와 차 한 잔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직 수업시간이 멀어서.


그런데 나를 가만히 보던 동료는 옷이 그거밖에 없냐부터 시작하더니, 늘 너는 낡은 옷을 입고 다니더라며 핀잔을 준다. 웃는 얼굴이라 침을 뱉지 못하고, 나의 패션철학을 말해 주었다. 난 오래된 옷을 좋아한다고, 나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입다가 입다가 안되면 서랍장에 넣어뒀다가 다시 생각한다고 했더니,


" 새 옷 좋잖아. 새 옷 입어. 난 헌 옷보다는 새 옷이 좋아서 시장 가서 자주 사 입거든."


" 난 괜찮은 금액대를 사서 오래 입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들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나니 기분이 더 처졌다. 그래서 다시 다짐을 했다. 머리손질이 필요해.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미용실에 들었다. 백화점 내에 있는 곳이라 찾기 쉬웠다.


"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왔어요. 치렁치렁한 이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를 해 주셨으면 해요. 모발이 가는 편이긴 한데 펌이 가능하다면 하고 싶고요."


고개를 15도 젖힌 헤어디자이너는 샴푸만 하고 나온 나의 머리를 빗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빗기더니,


" 고객님은 펌도 컷도 할 수 없어요. 이런 머리는 염색조차 힘들어요. 특히 집에서 하시면 큰일 나요."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 대면서 얼굴이 상기되었다. 뭐지? 내 머리가 왜? 왜? 왜?


" 길이를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얼굴이 넙데데- 하게 보이고요, 펌은 하면 머리카락이 다 타버려요.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겠네요."


웃으며 "안될까요? 기분 전환이 제겐 필요한데... 요?"


라고 말하다 보니 나는 점점 작아졌다. 계속 안된다고만 하는 그녀를 보며, 이제껏 내가 한 머리손질은 뭐였던가? 같은 말이라도 저렇게밖에 할 수 없나? 하, 그러면 관둬야까보다.......


내겐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정색하며 말했다.


" 아, 그러니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죠? 펌도 컷도? 알겠어요. 이미 머리상태를 보느라 샴푸를 해 버리셨으니 건조해주시면 그냥 갈게요^^"


그제야 정색하는 직원. 헤어오일이 있다느니, 영양제가 있다느니... 따라오며 계속 무언가를 말한다. 아랑곳 않고 나는 끝까지 웃으며 카운터에서 보관실에 있던 옷과 가방을 받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도저히 그대로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아 건물 밖에 있는 작은 미용실로 갔다. 다정하게 공감해 주는 디자이너, 내 막내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친절함에 뭉클함이 밀려왔다. 머리만 손질하고 집으로 왔지만, 기분은 감사함과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주말이었다. 그냥, 감사합니다.라고만 되뇌었다.


생각도 분업화가 되어 좋은 생각, 우울한 생각, 쓸데없는 생각, 기분 나쁜 생각들이 각각 내가 원하는 것만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좋은 생각으로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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