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동댁-

by 을이

병원에 계실 때에 엄마는 병실 하나에 요양보호사가 한 명 배치되는 6인실에 입원했다. 팔에 깁스를 하고 있어 목욕을 할 수 없던 엄마에게 그나마 몸이라도 닦여준다거나 머리를 감겨주면, 자식들이 간호하기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낯선 사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병실은 옮기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머리 감겨주고, 몸을 닦아달라고 했다. 커튼을 치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나면 땀이 한 바가지 흘렀다. 그런데다 머리도 감겨야 하는 상황에선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다. 건강하지 않은 난데 스스로를 돌볼 수가 없었다. 병원식이 입에 맞지 않다며 집밥을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매일 죽이며 된장을 조금씩 끓여 식사를 할 때 같이 곁들이게 했다. 엄마는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


급하게 수업 준비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하는 때면 어김없이 전화가 왔다.

"응, 엄마.... 왜? 지금 가고 있어요."

"아니, 지금 화장실 가고 싶은데, 너 오면 가려고 전화해 봤다. 빨리 못 오나....?"

전전긍긍하며 달려가면 그제야 참았던 용변을 보고 나서, 기다리느라 힘들었다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그렇다고 괄괄하다거나 괴팍스러운 사람은 아니었다. 곱디고운 예쁜 할머니였다. 속상했지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엄마가 너무 작았다 몸이.


아주 힘든 날은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수업마저 빼먹고 싶은 날. 그런 때면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병실에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고,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세면장으로 갔다. 바짝 휠체어를 고정시키고 머리를 숙이게 한 다음 머리를 만지니 너무나 작은 엄마의 머리. 울컥, 두 손으로 움켜쥐면 손안에 들어오는 엄마의 머리는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시원하다며 감기고 나면 해맑게 웃는 이 노인을 어떡하나... 마음이 들쭉날쭉한 나날이었다.


걷는 연습은 퇴원하고 우리 집에 머물게 되면서도 계속되었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든 걸어보겠다며 일어서고 넘어지고를 반복했다. 잡아주면 되려 손을 잡지 않을 정도의 의욕이 가득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형님, 어머니는 어때요? 형님이 편한가 보네요. 계속 지내시게 하는 게..."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농담했다는 그녀의 말이 기분 상하게 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누구냐고, 자꾸만 물었다. 손으로 대신 이따가 말해준다는 뜻의 입모양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 어? 네가 내 무시하는 거가? 누구냐고 물었잖아? 왜 대답 않고 손으로 이래저래 하는데?"

나는 최대한 부드럽고 이성적으로 통화중이었잖냐고, 끝나면 말해주겠노라고 눈짓했잖냐고 말해도 엄마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나도 갑자기 화가 났다. 큰 소리가 오고 갔다. 레인지 위에는 엄마를 위해 특별히 만들고 있었던 '옹심이'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며느리(올케)의 인사를 직접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프다는 말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것 같다.

일주일을 집에서 보내고 나서 결혼식이 있어 엄마는 남동생네로 갔다. 주말 하루동안이었다. 행여나 더 계시게 할까 싶었지만, 어김없이 저녁 6시에 엄마를 내려주고는 쌩하니 가버렸다.

엄마는 그날 저녁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된장찌개에 반찬이 맛있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된 거지 뭐. 엄마 앞에 화투장을 내어 놓으니 툭툭, 과거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내가 경로당에서 300원이나 땄단다.

엄마는 일주일을 더 있다가 시골마을로 갔다. 며칠 후에 가 보니 동네엔 우리 집에 일주일, 남동생네에 일주일 있다가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으로 병문안 오는 사람들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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