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동댁

그녀의 일상

by 을이

엄마는 발발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동네를 돌아다녔다. 마을에서 하는 모든 것에 빠지지 않았다. 농번기에는 함께 돕고, 농한기에는 모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마을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는 노년이었다. 자식은 딸 셋에 아들 하나. 중간에 아파서 죽은 언니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큰 언니는 농번기에 남동생이랑 농사일을 도왔고, 나는 엄마의 용돈관리와 병원일을 맡았다. 여동생은 서울에 살고 있어 전화업무를. 명확한 업무분담이 이루어진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였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엄마는 동네에서 1차, 2차, 3차, 4차를 1등을 찍었다. 보건소에 문을 열자마자 맞고 왔다면서 자랑했다. 3차부터는 굳이 안 맞아도 될 것 같다고 아무리 자식들이 말을 해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4차 코로나예방접종주사를 맞고 온 오후에 주저앉아 버렸다. 스르르.


그래도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엄살이려니, 괜찮을 거야 엄마,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몸을 끌고 시골집 문턱을 넘다 넘어졌던 엄마는, 추석 내내 긴 옷으로 팔을 감싸며 보냈다. 팔에 멍이 든 것을 들킬까 봐서. 그러다 우연히 내가 보고 말았다. 누구한테 폭행이라도 당한 것처럼 멍은 진하게 들어 있었다.

그제야 팔을 보여 주었다. 팔꿈치 부분이 부어올라 있었다. 추석동안 사람들이 알까 봐 꽁꽁 싸매고 있었다니.

뒤늦게 보지 않았더라면 어떡할 뻔했냐고 화를 내며 바로 응급실로 갔다. 추석연휴였기 때문에 진료하는 곳이 없었다. 시골집에는 처갓댁으로 간 남동생네, 언니는 사위가 오느라 이튿날에나 올 것이라고 해서 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병원에선 골절이라고 했다. 당장 입원해야 했다. 두 달을.


두 달은 길었다. 보호자는 당시 공부를 하고 있는 내가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다. 학교와 병원만 오갔다. 엄마는 걷는 것을 잃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 퇴원을 하고서도 걷는 연습을 하고 차얀 다면서, 동네 사람들 보기 그렇다면서 우리 집에서 보름을 있겠노라고 했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는 서로 이미 마른 낙엽처럼 건조한 상태였다.

작가의 이전글좌충우돌 만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