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디자인, 족보가 어떻게 되십니까
"예술을 하지 말고 디자인을 하세요"
디자인과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미대생'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뭔가 쓱싹쓱싹 그림도 그리고, 화통도 어깨에 가로질러 매는 캠퍼스의 로망을 상상하며 보낸 시간들을 뒤로하고 막상 디자인을 공부할 땐 우린 '예술을 하지 말고 디자인을 하세요'란 말을 듣게 된다. 아니, 다 같은 예술 아니었던가?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내 또래의 많은 학생들도 공통적으로 느꼈거나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예술과 디자인을 가르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고 디자인과 예술이란 카테고리는 어떻게 정의되는 것일까.
'어떤 이가 대상을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기획하고 구현해 나가는 행위'
앞선 글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정의를 언어화했었다. 나의 디자인 정의에 따르면 예술은 디자인 그 아래의 카테고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 각자의 매체에 의도된 방법을 통해 작품을 기획하고 구현한다. 예를 들어 한 화가가 어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했을 때, 이는 '그림'이란 대상을 자신의 '어둠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그릴 것인가'를 기획하고 '실제 페인팅'을 통해 구현하는 행위이다. 나의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넓은 것 일수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나의 기준에 맞춰본다면 예술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맥락에서 말해온 '디자인'과 '예술'사이는 확실히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어디에서 오는 괴리일까?
우리가 이런 맥락에서 말하는 디자인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디자이너를 화자라고 했을 때 우리에게 사용자는 청자가 된다. 디자이너가 하는 말이 정교하고 객관적이며 논리적일 때 사용자, 즉 청자의 의식적 개입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그 디자인에 공감하며 디자이너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많은 리서치와 객관적 지표를 바탕으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생각을 디자이너가 반영한다는 이야기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산업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산업 디자이너의 1차 목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더욱 많은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고 사고 싶어 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잘 수용하는 성격을 가진다. 반면 예술가, 이티스트는 역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첫 번째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들은 산업디자이너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아트웍 디자이너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메시지는 객관적일 수 없다. 아티스트의 메시지가 객관적 이단 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차이'를 통해 가치를 증명하는 예술가들에게 '객관적이다'라는 말은 반대로 그의 메시지가 모두가 생각할 수 있고 전혀 새롭지 않다는, 치명적 단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주관성은 청자로 하여금 '어, 나는 이렇게 생각 안 하는데'하는 의식의 개입을 불러일으킨다. 산업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우리들이 '예술 말고 디자인을 하세요'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는 산업디자이너가 지켜야 하는 객관성을 잃었을 때다. 이는 진짜 우리가 '예술'했다란 해석보단 '목적'이 산업디자이너로서 알맞은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이다.
예술가가 아닌 산업디자이너로서 우리에게 이 생각은 항상 붙어 다닐 것이다.
'이거 사실 그냥 내 생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