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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May 15. 2020

전사가 집중해야 하는 것

영화 '평화로운 전사'


"자넨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방법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네. 그래서 난 자넬 훈련시킬 걸세, 댄. 진정한 전사로 만들기 위해."


주인공, 댄 밀먼. 댄과 그의 친구들은 체조 선수 유망주들이다. 그들은 금메달을 꿈꾸고 있다. 금메달이 그들 삶의 목표이며,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전부이다. 잠이 안 와 새벽부터 돌아다니던 댄은 '소크'(소크라테스를 줄인 말. 댄이 지은 별명이다.)를 만나고, 그에게 전사로서의 훈련을 받는다. 훈련은 육체적인 훈련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훈련이고, 운동 능력이 아닌 삶 자체를 단련하는 훈련이다.


댄은 소크의 가르침을 통해 뛰어난 기량을 보이기도 하지만,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지면서 컨디션 난조가 찾아온다. 결국 소크의 가르침을 믿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소크를 떠나 이전과 같은 삶을 살면서 컨디션도 이전으로 돌아오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다리가 산산조각 나 운동선수로서는 사망선고를 받는다. 좌절한 댄은 다시 소크를 찾아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소크는 댄에게 '알지 못함'을 받아들이라 한다. 그리고 댄 스스로 들어줄만한 통찰을 얻기 전까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댄은 계속 고민하고 사유하고 마침내 통찰을 얻는다.


댄 :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건 절대 없어요. 평범한 순간은 하나도 없어요.

소크 : 그래, 돌아온 걸 환영하네.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평범한 순간은 하나도 없다. 지금 하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로 인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 어떤 순간도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사고로 인해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생의 끝을 의미할 수 없다. 스스로 인생이 끝났다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 그에 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내 인생이 어찌 될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안다고 여기면, 내 인생을 그렇게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잠시 전사의 길을 이탈했던 댄은 이 답을 찾은 끝에 다시 전사로서 돌아온다.


댄은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 훈련을 거치고 이전의 기량을 되찾게 된다. 다시 한번 선수로서 도전하려 한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망가진 그의 몸이 염려된 감독으로 인해 대회 출전이 어려워진다. 댄은 감독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화를 낸다. 댄은 화를 내면서도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올바른 생각의 방향을 찾아가며 소크에게 사과한다. 그런 댄을 보며 소크는 말한다.

"내일 아침 등산화를 신고 오게. 갈 데가 있네. 자네가 이 곳에 온 첫날밤 이후로 자넬 데려가고 싶었네. 좀 먼 길이지만 내 생각엔… 자네는 마침내 그걸 볼 준비가 된 것 같네."


댄 : 제발요, 소크! 이게 바로 제가 마침내 볼 준비가 된 거라고요?

소크 : 음, 여기로 올라오는 내내 자넨 흥분했고 무척 행복했지.

댄 : 네, 뭔가를 볼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죠!

소크 : 성탄절 아침의 어린애처럼 자네 스스로 그렇게 말했네. 여기로 올라오는 내내 자넬 기분 좋게 만들었어.

댄 : 세 시간 동안 놀라운 걸 보길 기다리며 보냈기 때문이죠!

소크 : 음, 뭐가 변했나?

댄 : 여긴 저 돌멩이밖에 없다고요!

소크 : 우리가 떠나기 전에 확실히 자네에게 말해야 했는데, 그렇지? 하지만 나 역시 우리가 뭘 찾아낼지 확신할 수 없었지. 절대로. 어쨌든 자네가 행복하지 않다니 미안하군.

댄 : ……이 여행은. 이 여행은 우리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줬어요. 목적지가 아니라.


댄은 마침내 깨닫는다. 그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목적지, 목표가 아니라 바로 여행, 과정이었다는 것을. 목표를 이루었을 때 거기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절대로. 그럼에도 나는, 그리고 댄은 목표를 이루면 행복하고,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목표에 집착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댄은 그런 두려움 속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소크를 만났고 깨달음을 얻었다. 반면 소크를 만나지 못했던 댄의 친구들은 여전히 두려워한다.


댄 : 이렇게 말해주는 걸론 충분치 않겠지만, 모든 행동을 이 운동에 대한 것으로 만들어. 알겠어? 금메달이 아니라, 네 아빠가 너를 어떻게 여길지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아니라,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

토미 :... 하지만 이건 금메달 때문이야. 내 일생은 저 심판들 앞에서 20초를 위한 것이었어. 결국 저들이 내게 금메달을 주게 되면. 그렇게 되면 우리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알고 있어? 어떻게 그런 모든 문제들이 당장 아무 상관없을 수가 있지? 난 행복해져야 해. 난 행복해져야 해, 댄


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금메달이 아니다. 금메달은 오히려 그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 뿐이다. 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평생을 사랑했던 체조를 하는 순간이다. 체조를 하는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이 댄이 집중해야 할 전부다.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라는 과거의 교훈은 이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간신히 목표에 도달한 사람들의 결말은 정말 행복했을까. 그렇게 했음에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금메달, 돈, 성공은 어디까지나 부산물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여행의 과정, 내 인생, 내 존재이므로 지금 내가 있는 장소가 어디든, 시간이 언제든, 무엇을 하든 그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다.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목표가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이다.


소크 : 어디 있나, 댄? (Where are you, Dan?)     /    댄 : 여기 (Here)

소크 : 언제지? (What time is it?)        /    댄 : 지금 (Now)

소크 : 무엇을? (What are you?)        /    댄 : 이 순간 (This moment)


'평화로운 전사'는 댄 밀먼이 쓴 책이 원작이며, 1966년 미국의 유명한 체조 선수였던 댄 밀먼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봤을 때는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이해되기 시작한 영화다. 아마 좀 더 연륜이 쌓이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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