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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May 22. 2020

업무 1

업무 환경

회사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SSD가 장착되어 있는 컴퓨터는 순식간에 부팅을 마치고 로그인 화면을 띄웠다. 로그인을 하고,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켰다. 로그인 화면까지는 순식간이었지만 프로그램들이 동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다. 보안 프로그램 때문이다. 보안 프로그램이 너무 무거운 나머지, 컴퓨터를 느리게 만든다. 업무 보안과 업무 편의는 서로 반비례한다. 업무 편의성이 높을 경우, 보안이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보안이 강할수록 업무 편의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업무 컴퓨터 위에는 미니 PC라 불리는 또 다른 컴퓨터가 놓여 있다. 이 미니 PC는 인터넷을 하기 위한 용도이다. 업무 컴퓨터에서는 인터넷이 안된다. 역시 보안 때문이다. 외부의 네트워크와 단절된 폐쇄망에서 작업을 하게 되어있다. 자료를 찾기 위한 인터넷 사용은 미니 PC라는 다른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한 키보드와 마우스로 업무 컴퓨터와 미니 PC를 제어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 엄청 불편한 단계까지는 아니고 조금 불편한 환경이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많이 편해진 환경이다. 사내 보안 강화 정책으로 업무 환경이 엄청 불편해졌다가, 직원들의 건의로, 혹은 기타 여러 가지 일들로 조금씩 개선된 것이다. 나 역시 많은 불만을 토로했다. 당당하게 일선에 나서서 이거 개선해달라, 저거 개선해달라 외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불편하다며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사람이었다.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편한 업무 환경인 현재도 여전히 뒤에서 구시렁거리고 있는 사람이다.


업무 환경은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개선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개선되고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은 개선하고자 열망하면서, 막상 자신을 개선하는 일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족쇄이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제임스 앨런이 '생각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 생각보다 여기저기서 많이 인용된 말이기도 하다.


부자, 호의호식, 좋은 환경을 그토록 열망하면서, 나 자신이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큼이나 열망했을까. 업무 환경이 좋아질수록 업무 편의성이 좋아지는 것처럼, 좋은 환경이 갖춰지면 인생이 편해진다. 이는 명확하다. 하지만 훌륭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된다고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딱히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나 자신을 개선하는 것에 강한 열망을 갖지 못한 이유다.


그러나 회사에게든 나 자신에게든 중요한 것은 사실 업무 환경이 아니다. 업무 환경은 보다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요소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업무 능력이다. 업무 환경이 업무를 편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어도, 결국 그 업무를 풀어내는 것은 업무 능력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좋은 환경은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만,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돈을 벌어 인생을 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내 삶에 녹아있는 지혜다.


이러한 생각을 품으며 나는 다시 한번 스스로를 개선하려는 열망을 불태운다. 그리고 얼마 안가 이 열망은 슬슬 꺼지기 시작한다. 나 자신을 개선하려는 열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업무 능력을 증명하려는 열망에 짓눌려 꺼져버린다. 열심히 업무 능력을 선보인 이후에는 너무 지친 나머지 모든 열정과 의지를 잃어버리고, 그저 놀고 싶고, 눕고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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