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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May 25. 2020

업무 2

회의

"자, 일단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으니까, 방향이 정해지면 다시 회의를 소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뭐 하나 정해진 것 없이 회의는 이렇게 끝났다. 아마 며칠 뒤 회의가 다시 소집될 것이고, 그때도 뭔가 정해지지 않으면, 일정에 구멍이 생길 것이다. 회의는 오늘처럼 뭐하나 정해진 것 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끝나는 경우와,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정해져서 깔끔게 끝나는 경우가 있다. 주제가 명확하고 딴 길로 새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 회의의 결과는 대체로 깔끔하다.


이건 영화, 연극, 소설도 비슷하다. 주제가 명확하면 매끄럽고 깔끔하게 진행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심지어 내 삶도 비슷하다. 내 삶 중 주제가 명확한 시기는 무척 깔끔하고 열정적인 삶을 산다. 그렇지 못한 시기는 중구난방 하고 늘어진 삶을 산다. 명확한 주제가 인생 전반에 걸쳐져 있다면 그것은 신념이 되고, 인생의 목표가 되고, 삶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내 인생은 영화, 연극, 소설이 아니며 회의가 아니다. 단 한 가지 주제로만 살 수 없다. 삶의 한 단면만을 꼬집으면, 주제를 가진 한 편의 영화로 만들 수 있겠지만, 인생은 단면이 아니다. 수많은 영화, 연극, 소설이 조합되어 수십, 수백 가지의 주제가 난립한다. 난립하는 수많은 주제 중 한두 가지 만을 명확하게 끄집어 거기에 전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지식도 쌓아야 하며, 지인들을 챙기면서, 여가생활도 즐겨야 한다.


비록 어렵긴 하지만 난립하는 수많은 주제 중에 중심을 맞출 한 두 가지 주제를 고르는 것은 필요할 것 같다. 명확한 주제와 이를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회의는 중구난방 하고 늘어지게 되듯이 내 삶도 마찬가지다. 주제를 정하고 이 주제를 중심으로 내가 내 삶을 바로 잡지 않으면, 하는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늘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 명확한 주제를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삶을 살다 보면 깔끔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 기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몰라도 한주만이라도 주제를 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살아보자. 이번 주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사고의 폭을 넓히는 주간으로 삼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어영부영 한 주를 한 것도 없이 보내버렸다. 역시 마음을 먹어도 가장 힘든 것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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