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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둥새 May 27. 2020

업무 3

업무 능력

"저는 이런 식으로 했었는데요, 참고해서 해봐요."

내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 중 일부를 개선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경력면에서 나보다 6년은 앞서는 분이 메신저를 통해 힌트를 주셨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쳐했을 때 그분이 고민하여 기술적으로 풀어낸 내용이었다. 나는 이를 참고해 개선해야 할 기능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였다. 기능은 안정적으로 잘 동작했다. 그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그분은 자신도 전 직장에서 배워 온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분은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분이다. 나도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갖추고 인정받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능력을 갖추고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체험한 환경에서는 아래 직급에 있을 때 인정받으려면 단연 돋보여야 한다. 윗 직급으로 갈수록 최소한 본인의 직급에 어울리는 수준의 일을 하고 있어야 인정을 받는다.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뒤에서 손가락질당한다. 그만큼 직급이 높을수록 요구되는 업무 능력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기술이 뛰어나야 하지 않을까. 다른 직군은 잘 모르지만 내가 봐온 직군 중 개발자는 개발을, 관리자는 관리를, 영업직은 영업을 잘하는 것이 기술이다. 다음은 큰 그림을 보고 그릴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야 할 것 같다. 이는 전반적인 사정을 잘 아는 높은 직급의 사람이 유리하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배경지식이 풍부하고 상황 파악이 빠른 사람들은 전체적인 상황에 맞게 자신의 업무를 유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법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업무를 어떻게 해야 효율적이고, 유연하면서, 꼼꼼하게 풀어나갈지를 끊임없이 고민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러한 것들을 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공부와 경험이다. 나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둘 중 오로지 경험으로만 때우려는 경향이 크다. 다양한 상황을 겪으며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구글링을 통해 그때그때마다 단편적인 지식을 얻어오며 기술이 쌓인다. 연차가 쌓이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추 짐작이 되니 큰 그림의 윤곽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구글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도 하게 된다.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업무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결국 챗바퀴다. 정말 다양한 경험을 겪어본 경우가 아니면, 온전히 자신의 경험에만 의지하다가는 고인물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 기술의 세세한 부분, 혹은 새로운 부분을 공부해봐야 한다. 내가 속한 큰 그림뿐 아니라 다양한 상황의 큰 그림도 공부를 해봐야 한다. 비슷한 상황을 떠나 다양한 상황을 공부해보며 고민을 해봐야 진짜 고민을 할 줄 아는 것이다. 결국 공부와 경험이 어우러져야만 인정받는 업무 능력을 갖추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실은 라인을 잘 타고, 정치를 잘하고, 접대를 잘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래도 공부와 경험이 어우러진 업무 능력이 나의 이상인만큼 노력해본다. 책도 보고 강의도 듣고 하는데, 문제는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책은 한 달째 같은 페이지고, 강의는 수강 만료 기간이 다가오는데 절반도 못 들었다. 의지가 부족해서인가. 단순히 머릿속으로 알고만 있을 뿐, 진정한 필요를 체감하지 못해서인가. 업무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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