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다른 얼굴을 마주한다. 회사원의 냉철한 얼굴, 가정의 따뜻한 얼굴, 그리고 나만이 아는 진짜 얼굴. 회사에서는 성과를 내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고, 집에서는 가정을 화목하게 해야 하는 남편이자 아빠다. 각각의 역할에는 그만의 본질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본질에 맞춰 살아가려 노력한다.
문득 의문이 든다. 모든 가면을 벗어던졌을 때, 그 안에 남는 나는 누구일까? 회사원도, 남편도, 아빠도, 자식도, 친구도 아닌 순수한 '나'라는 존재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나는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가면 뒤의 진짜 얼굴을 찾으려는 이 고민 속에서 사르트르의 말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책상이나 커피잔은 만들어질 때부터 그 용도와 본질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그다음에 자신을 만들어간다. 이 세상에 던져진 후, 스스로 선택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다.
각각의 역할에는 분명 정해진 본질이 있다. 회사원은 성과를 내야 하고, 아빠는 자녀를 돌봐야 하며, 남편은 가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에는 정해진 본질이 없다. 그저 이 역할들을 선택하고, 수행해 나가면서 나를 만들어갈 뿐이다.
이는 소름 끼치는 자유이다. 정해진 본질이 없다는 것은 어지러운 해방감과 끝없는 불안을 동반한다. 모든 선택이 온전히 나의 것이니 자유가 있고, 그 결과는 전적으로 내가 감당해야 하니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이런 불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진정성 있는 삶의 시작일 것이다. 정해진 본질이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모든 역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지만, 그 선택과 책임을 통해 나는 진정한 나를 만들어간다.
나는 오늘도 회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집에서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 모든 역할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고 있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버거울 수 있지만,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나는 내가 선택한 역할들의 총합이자, 그 이상의 무언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