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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연말 넋두리

by 검둥새

연말이 되면 직장인들은 고과평가 결과를 기다린다. 한해의 노력이 평가되고, 그 결과에 따라 연봉 인상률이 결정되니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니면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사람이거나... (부럽다)

하지만 이 평가라는 게 참 쉽지 않다. 조직의 목표, 조직원의 역할, 그 역할에 따른 목표,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복잡하지만 간신히 아울러서 업무 목표를 세운다. 당연히 연초에 세운 업무 목표는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과 맞지 않아 더 혼란스럽다.

고과는 상대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 각 등급마다 줄 수 있는 퍼센트가 정해져 있으니까. 이를 이상적으로 분배할 수 있을까.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공정한 분배를 위한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르는 상태, 이른바 '무지의 베일' 뒤에서 분배 원칙을 정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평가자와 피평가자는 이미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 평가자는 조직의 목표 달성과 팀 전체의 사기, 개인의 성과와 성장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피평가자 각자의 업무 환경과 난이도가 다르고, 업무 기여도를 수치화하기도 어렵다. 피평가자 들은 자신의 실적과 타인의 실적을 비교하면서 자연스레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원하게 된다. 게다가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획했던 것과 실제 일어난 일들은 늘 달랐다.

결국 평가란 완벽할 수 없다. 롤스의 '무지의 베일'처럼 모든 이해관계를 버리고 순수하게 공정한 기준을 세울 수도 없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속에서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평가자도, 피평가자도 모두 이런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판단을 할 뿐이다. 사실 나는 피평가자의 입장이라 당장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저 의연하게(사실은 덜덜 떨며...) 결과를 기다리면서 넋두리 하나 한 것뿐이다. 나는 언제쯤 회사를 취미로 다닐 수 있으려나... 다음생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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