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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실 세 시선

by 검둥새

회사에서 세미나를 하다 보면 묘한 긴장감이 든다. 보통은 앞자리에는 선배들이, 뒷자리에는 후배들이 앉아있다.(정해준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앉는다. 라떼는 반대였던 것 같은데...) 이해시켜야 할 후배들과 설득해야 할 선배들. 두 개의 다른 시선을 동시에 의식하다 보면 발표 자체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후배들을 보며 설명할 때면 그들의 표정을 살핀다. 이해하고 있는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나는 그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 속에서 '평가받는 선배'가 된다. 앞자리의 선배들을 볼 때면 또 다른 긴장감이 든다. 내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지, 논리적 허점은 없는지. 나는 그들을 설득해야 할 대상으로 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시선 속에서 '심판받는 후배'가 된다.


사르트르는 이런 상황을 '타자의 시선'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타인을 객체로 만들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 속에서 우리 자신이 객체가 된다. 이런 긴장 관계는 피할 수 없다. 내가 타인을 주체로 인정하는 순간 나는 객체가 되고, 내가 주체가 되려 하면 타인이 객체가 된다.


발표 중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 단순히 평가받는 느낌을 넘어서 내 행동이 제한되는 순간을 느낀다. 어떤 예를 들까 고민하다가도, 선배와 후배의 반응을 상상하며 "이 정도면 괜찮을까?" 하고 망설이게 된다. 내가 선택한 내용이 더 이상 내 자유로운 결정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판단 속에서 형성된 타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르트르가 말했듯, 타자의 시선은 나의 자유를 끊임없이 규정짓고, 그 자유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발표가 끝나고 나면 이런 긴장감은 조금 풀린다. 하지만 곧 질문 시간이 시작된다. 후배들의 질문에는 내가 설명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게 되고, 선배들의 질문에는 내 논리가 타당한지 검증받게 된다. 세미나는 끝났지만, 이런 시선의 교차는 계속된다.


사르트르는 "지옥은 타인이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긴장 관계야말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후배들의 시선은 나를 더 나은 선배가 되게 하고, 선배들의 시선은 나를 더 성장하는 후배가 되게 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주체가 되려 노력하고, 또 객체가 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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