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달력의 마지막 장이 넘어가는 시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한 해를 돌아본다. 나는 매년 이맘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있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기대도 있다. 복잡한 마음이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끌어안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우리는 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우리를 만들고,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계속 나아간다. 연말은 그런 시간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때이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고, 미래는 우리가 나아가는 가능성이다. 이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현재이며, 우리의 존재가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연말은 이러한 시간의 교차점을 체감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한 해 동안 겪었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아픔을 되짚으며 과거의 무게를 느끼고, 동시에 새해를 앞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 계획을 세운다. 이 순간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함께 공존하는 현재라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연말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하나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다. 새해에는 더 나은 자신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런 감정들이 한데 뒤섞이는 연말이라는 순간이, 내가 과거와 미래를 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연말은 나 자신이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순간이다.
결국 연말은 현재를 가장 생생히 살아가는 시간이다. 과거가 나를 형성하고, 미래가 나를 이끈다면,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현재라는 이 순간에 나의 존재가 드러난다. 새해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현재에서 내가 과거에 무엇을 남길 것이고,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무엇을 시작할 것인가이다. 연말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