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옛 블로그를 들어갔다. 업무 중이나 일상 속에서 깨달은 것들을 기록해 두었던 글들이 눈에 띈다. 십 년도 더 된 글들을 읽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어떤 글은 너무 유치해서 민망하고, 어떤 글은 의외로 날카로워서 놀랍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가 쓴 글을 심판하듯 읽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도 나름의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 지금 보기에 유치해 보이는 글도 그때는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였을 것이다. 반대로 의외로 통찰력 있는 글을 발견하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혹은 어떤 면에서는 퇴보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가다머는 말했다. 우리의 이해는 항상 시간과 경험의 영향 속에 있다고. 같은 텍스트라도 읽는 이의 지평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고. 과거의 내가 쓴 글을 현재의 내가 읽는다는 것, 그 자체가 두 개의 다른 지평이 만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내가 쓰는 글도, 미래의 내가 읽을 때는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지금은 깊이 있는 통찰이라 자부하는 글도 먼 훗날에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고, 반대로 지금은 별것 아닌 것 같은 글이 나중에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도 있다. 우리의 이해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니까.
오래된 블로그 글들을 읽으며 생각한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지평을 가진 우리가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럽고 민망한 글도,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글도, 모두 나의 한 부분이자 성장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