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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섬 Jul 08. 2016

<새벽 두시 전화벨> 5화

살아있으므로 남겨진 것들

몇 년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자주 뵙진 못 했지만 가끔 뵈면 반가운. 가끔은 돌아가는 내 손에 만원 짜리 몇 장을 쥐어주시던. 가족들과 고스톱을 치기 위해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시던.그리고 동네 성당에서 ‘기도빨’로는 제일이라는 ‘레지나’셨던.     


몇 번의 흐느낌과 몇 명의 울음이 지나가고 우리는 빈소로 이동했다. 테이블에 앉아 조금씩 조금씩 망자와의 추억을 나누던 우리는 이내 다가온 장례식장 직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냉장고에 보관된 음료수 중에 식혜는 무료제공이고 그 뒤에 있는 비타민 음료는 병당 따로 계산해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들었다.     


방금 전 까지 망자와의 추억을 나누던 우리는. 그러니까 외삼촌에게만 ‘마이마이’를 사주고 자신에겐 ‘월사금’도 내주지 않았다며 빈소에서 까지 서운해 하던 엄마와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날 ‘고스톱은 잘 치냐’ 고 묻던 시어머니를 ‘디스’(!) 하던 외숙모와      


동갑인 생일 3달 빠른 사촌에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던 외할머니에게 의문의 1패를 안기던 손자는 이내 냉장고에서 비타민음료를 모두 빼내 쪽방 서랍에 쓸어넣었다. 


천사가 되어 소천한 망자를 추억하는 자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비타민음료 4통이 깨우쳐준 현실의 무게를 새겨야만 했다.     


(by TEAM "PLAN S", 글: 서은호 / 그림: 한섬)

<새벽 두시 전화벨> 5화 - 살아있으므로 남겨진 것들


* 브로콜리너마저, 할머니 - https://www.youtube.com/watch?v=qP0u8rWqI1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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