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자장가

예쁜 아기곰

by 김지은

첫 글


시간이 빠르다는 것도 알고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알고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이미 20대에도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고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거리에서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우습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좀 더 잘 살지, 라고 뻐겼다. 열심히 회사생활하고 자기통찰하고 매일 일기나 책을 보면서 나를 단련하고 어떤 아픔도 고통도 나는 물 흐르듯이 이해하고 그게 세상사라고 여기면서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무뚝뚝하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대때에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30살도 31살도 32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35살, 36살에도 나는 여전히 세상을 새로이 마주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으면서 하루하루 내 뻣뻣한 과거를 오히려 부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 세상을 내가 재단할 수 있었던 것, 타인을 쉽게 단정지었던 것 모든 것이 다 나의 '어림'에서 오는 것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어리고 세상은 무궁무진하고 언제든 나를 때리거나 어딘가에 빠뜨리거나 슬쩍슬쩍 건든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동안 내가 너무 세상이 아껴줬던 것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건든다. 조금만 건드려도 나는 빼액하고 당황해버리는데.. 살살 좀 부탁해.


말하자면 '시간의 무서움'을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걸 결정적으로 내게 어퍼컷을 날린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제목의 동생의 자장가였다.


동생은 나보다 5살이 어리지만 언니같고 야무지다. 착한 동생. 언니를 생각해주고 배려해주고 감사한 존재. 전생이 있다면 내게 그때도 꼭 필요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게 내 자매라 다행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 동생이 시집을 갔다. 그것도 강원도 삼척으로. 경기도에 터를 잡은 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동생을 그리워했다. 동생은 결혼과 동시에 아이도 가졌다. 동생은 아주 말랐다. 어릴때부터 저체중이었다. 몸이 약한 게 아니라 그냥 살이 안 찌는 체질. 나도 그랬었는데 나이가 드니 잘 먹는 체질이 되어, 어릴적 걱정하던 엄마의 우려와 다르게 잘도 찌고 잘도 먹는다. 동생은 여전히 말랐다. 40키로 정도를 유지하는데 원래 그랬어서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 동생이 임신이라니. 배만 불뚝나올 걸 예상했는데 역시나 마른 몸에 배만 나오더라. 그래도 발랄하게 잘 지낸다고 연락도 하고 사진도 자주 주고받고 톡도 하고. 아직 어색한 신혼집일텐데도 열심히 지내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 역시 동생이 가고나서 엇비슷하게 독립을 하게 되어서 역시 내 공간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에 부던히 노력했다. 평생을 가족이랑 지내다가 혼자 지내려니 여러 감정도 들고 생소하기도하고 그래도 동생도 많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연락을 하고 또 내 연락을 귀찮아하지 않고 반가워하며 이어가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동생도 아마 나처럼 그 공간이 조금은 외롭지 않았을까 내 존재가 반갑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카의 탄생은 이모의 탄생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가 아닌 이모가 되었다. 내 조카는 여자아이고 아주 작았다. 오밀조밀. 거리가 있어서 아이를 낳을 때 가지 못했다. 쓸쓸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래도 남편이 같이 있었으니까. 잘 회복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갓 태어난 조카를 영상과 사진으로 받아서 보고 그 자체로도 즐거웠다. 전혀 없던 곳에서 새생명에 태어났다.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것도 내 동생의 피와 살, 피부 모든 게 다 어우러져서 하나의 생명을 틔워냈다는 게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조카는 결국 내 동생이었다. 내 동생의 몸에서 키워진 내 동생. 얼굴은 동생의 남편을 쏙 빼닮았지만 난 느껴졌다. 이 아이는 동생 그 자체라는 걸. 동생이 만든 생명. 이모가 많이 많이 사랑해줄게. 내 동생 고생한만큼 더 많이 많이 사랑해주고 널 인정하고 안아줄게.


실제로 동생이 어릴때는 뭔가 이질감에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다. 동생을 낳아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동글동글 이상한 생명체가 안겨졌으니. 내가 원한 동생은 유치원에서 본 친구의 예쁜 여동생이었으니까, 딱 그만큼 자란 여동생을 받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모습에 동생을 딱히 예뻐하진 못했다. 자라고나서 동생이랑 친해지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여전히 동생을 보살피는 건 못했던 안타까운 언니였다.


어릴때 동생을 잘 보살피거나 사랑해주지 못한 게 남아있는 건가. 조카를 보면 무조건 사랑만 해주고 싶다. 너에게는 사랑이 뭔지 따스함이 뭔지 누군가가 지켜보는 그 다정한 눈길이란 뭔지 그런 걸 하나하나 조카의 무의식에 불어넣어주고 싶다. 그냥 손깃만 스쳐도 저 사람이 날 사랑하는 구나, 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도록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다. 너는 외롭지 마라, 너는 불편함을 느끼지 마라, 너는 오직 아낌만 받아라.


조카는 내가 동생에게 마저 주지 못한 무언가의 통로였다. 그런 나를 보면서 동생도 어떠한 위로, 위안을 받길. 내가 사랑이 없어 너를 안아주지 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조카를 안듯 너를 생각하고 아낀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갓난아이때부터 종종 자주 멀지만 동생네를 찾아갔다. 그리고 동생네의 부부싸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독여주고 조율해주려고하고 같이 술잔도 기울이고 육아에 대한 고충도 듣고. 만남이 즐거웠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서로 노력의 여하를 따지거나 가정에 충실하냐 아니냐 등을 놓고 종종 싸우는 동생네 부부의 볼맨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이고, 그리고 종종 아이의 소리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울어재끼는 조카의 울음소리가 놀라면서 그렇게 조카가 생긴 날 밤을 보내고 있는데, 동생이 아이를 재운다며 자장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그게 어찌나 내 맘을 덜컹 내려앉게 했는지...


동생이 부른 자장가는, 동생이 아주 어릴적 내가 초등학생때 학교에서 배워서 알려준 동요였다. 어린 동생은 그 노래가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동생은 그 노래를 평생을 기억했고,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자신의 아이에게 가장 먼저 불러주었다. 사실 그 노래는 자장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고 그냥 동요다. 잔잔한 느낌의 노래이긴 하지만 그 노래를 자장가로 부르는 건 내 동생밖에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동생은 아주 당연한 듯이 자신의 가장 아껴두던 사탕을 꺼내어 아이에게 주는 듯이 달콤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소중하게 그렇게 자장가를 불렀다. 조곤조곤, 가사는 다 틀려가면서.


원래 동생은 가사같은 걸 잘 기억을 못하고 이상하게 개조해서 매번 놀려먹던 부분이긴 하지만, 자장가도 그렇게 틀리면서도 열심히 부르는 걸 보니 뭉클하기도하고 동생이랑 나의 어린시절 그리고 그 시절을 뛰어넘어 우리가 어른이 되었고 너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런 마치 순식간에 일어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어 머리가 아득해지고 너무 놀랐다.


시간, 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지나간 세월이라는 건 이런 거였구나.


돌아갈 수 없는데 너무나도 선명하고 누군가와 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엄청난 시간을 소유한 것임에 분명했다. 나는 그 자장가를 기억해준 동생에게서 나에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꼈고 우리의 어린시절이 너무나도 상냥했던 것임을 존재함 그 자체로도 너무나도 기적같은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가족이라서, 동생이라서 항상 같이 살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린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다.


내 동생이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아이를 낳아 자장가를 불러줄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도 큰 기적인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잘 지내왔고 '지금'을 함께 한다.


아직도 동생이 조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면 나는 한참을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된다. 고요한 바다에 작은 나룻배에 누워서 잔물결이 이는 바다위를 고요히 음미하는 기분이 된다.



예쁜 아기곰


동그란 눈에 까만 작은 코

하얀 털옷을 입은 예쁜 아기 곰

언제나 너를 바라보면서

작은 소망 얘기하지


너의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어떤 비밀이라도 말할 수 있어

까만 작은 코에 입을 맞추면

수줍어 얼굴을 붉히는 예쁜 아기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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