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아본 큰 수술 중에는 이전에 언급한 허리수술 그리고 작년에 받은 자궁수술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궁용종수술.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궁에 난 여드름같은 해롭지 않은 덩어리를 떼어내는 수술이다. 어떤 부분이든 우리 몸에는 용종이 생길 수 있으며, 초음파 등의 검사로 그 용종의 모양을 체크한다. 동글다면 주로 해롭지 않은 용종. 떼도 되고 굳이 안 떼도 되지만, 크기가 커진다면 떼는 게 맞다고 한다. 그리고 모양이 뾰족하거나 세모, 네모인 경우는 악성으로 의심하여 따로 조직검사를 해야한다. 다행히 자궁초음파검사시에 용종이 발견이 되었고 동그란 모양에 1센치가 안 되는 작은 정도이지만, 평소에 나는 자주 부정출혈을 경험했기때문에 그걸 이야기하니 용종때문일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 그리고 용종을 발견하자마자 떼버리자고 확언하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그래! 떼 버리자!'하고 용기를 냈다.
작긴 해도 부정출혈 등 불편감이 드는 원인이라면 떼고 싶었고, 또 작년 여름시기에는 내가 굉장히 힘든 상황속에 있었어서 뭔가 제대로 액땜하나 해버리고 싶다는 기분이 강했다. 왜, 일부러 어딘가에 부딪혀서 몸을 상하게 하면 교통사고 대신으로 액땜이 된다거나 죽을 뻔했던 게 무마가 된다거나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 몸에 뭔가를 해야 내가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자해라고 하기는 뭐한데, 그냥 거친 뭔가가 필요했다. 그 시기에는 자주 거친 운동(헬스 근육 무리하게 많이 했고 자유운동으로 헬스장에서 혼자 2시간씩 매일 운동했었다) 혹은 몸을 혹사시키는 상황을 좀 필요로 했었다. 그래서 이번 수술도 지금 꼭 해야만 하겠다! 라는 다짐이 쉽게 생겼다.
그렇게 금방 날짜를 잡고 자궁용종수술은 질을 넓혀서 받는 소파수술(긁어내는 방법)은 상처가 생기거나 불호인 방법이라고 인터넷이 많이 나와있었는데, 마침 내가 다니는 병원은 그게 아니라 레이저같은 향상된 기술을 하는 지역에서 꽤 유명한 병원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믿고 받기로.
내가 수술얘길하자 당장 반응한 건 엄마. 역시 이럴 땐 엄마밖에 없나 싶다. 평소에는 서로 이해가 떨어져서 자주 싸우기도하고 짜증도 내는 사이인데, 자기 딸 아프다면 만사 제쳐두고 오는 것도 엄마다. 그런 불도저같은 성격이 싫으면서 고맙다. 엄마는 연신 장군처럼 씩씩하게 걸으면서 (결국 발맞춰 걷지도 못할 정도로 서로 걸음걸이도 다르고 엄마는 먼저 휙 가는 중) 딸을 호위했다.
나는 사실 혼자 병원에 가도 되는데, 엄마가 굳이 출근시간도 늦춰가면서 아침일찍 같이 가주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해서 당일 준비를 마저 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사실 그 전날부터 약을 먹는데, 질을 좀 풀어주는 약이라고 했다. 수술시에 질에 삽입이 되는 수술 기구들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처치였을까? 그런데 그 약이 속쓰림을 불러일으킨다하던데, 정말 생리하듯이 아랫배도 너무 아프고 배도 너무 아파서 밤새 고생했다. 그리고 수술 전에 굴욕의자에 앉아 전처치를 받는데 그것도 말도 못하게 괴롭다.
수술 전에 거즈 및 수술을 위해 (아마도 자궁에 피가 고이지 않도록 막는 어떠한 기구 - 수술은 질에 난 용종을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개가 아니라 질내부로 진행한다) 무언가를 넣는데 거즈가 들어가는 것도 소름이었지만, 표준 사이즈였던 그 수술용 뭔가를 넣는데 안 넣어지고 굉장히 아팠다. 알고 보니 사이즈가 내 질사이즈(라고 말해도 말은 되지)가 매우 작았던 것. 그래서 다시 빼고 (내적 비명 악!!) 작은 사이즈로 장착. 원래 굴욕의자에 앉아도 그리고 자궁경부암 검사로 질내부를 꼬집어도 잘 참는데 이번에는 너무너무 불쾌하고 아프고 나도 모르는 내 내부로 뭔가가 들어가고 난리를 치는데 저절로 비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으으으으으으!!!!!'소리만 새어나왔다. 진짜 울고싶은 기분.
내 몸안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나는 이 동굴을 본적도 없고 잘 모르는데 상황설명없이 동굴을 헤집는 기분이 너무 불쾌하고 무서웠다.. 물론 남자선생님이 매우 차근차근 설명해주시고 조심히 해주셨지만 그래도 너무 불편한 감각이었다..
그래도 이만한 것도 잘 참은 거였나보다. 같이 도와주시던 여자간호사분이 너무나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정말 잘 참으셨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전처치만해도 이렇게 아픈데 진짜 수술은 깨고나면 나 기절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고, 질에 뭔가를 넣었는지 묵직하고 뻐근하고 이야 죽겠다 싶은 기분으로 굴욕의자에 내려와 수술 전 잠시 입원실에 누워있는데 너무나도 불편했다. 원피스 같은 수술복을 입고 누워있으니 다른 간호사분이 와서 피부테스트 같은 거 약물테스트 같은 검사도 하고, 이것저것 해주었다. 그러면서 수술 전에 속옷은 벗어서 수술복 주머니에 넣어두면 수술 끝나면 입혀드린다고 해서 얼른 팬티를 벗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수술이 다가와 천천히 걸어서 수술실로 가서 수술실의 굴욕의자에 누웠다. 여긴 어떻게 수술실에도 굴욕의자가 있어... 너무나도 두려워서 지난 위내시경때 자꾸 마취가 깨서 배를 쑤시던 감각에 발버둥쳤던 걸 떠올리며, 한껏 예민해져서 다른 간호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바로 옆의 꽤 경력있어보이는 간호사분에게 애절하게 말을 걸었다.
'저.. 이거 마취 깰수도 있나요? 제가.. 정말 잘 깨거든요ㅠㅠ'
내 애절한 음성에 주변은 차분해지고 상당히 열올리고 있던 간호사분은 급 차분하게 '혹시 환자분 술 잘 드세요? 술에 강하면 마취가 잘 안 되기도 해요' 라길래 '저.. 술 못 마셔요ㅠㅠㅠㅠ'...
알콜 쓰레기는 .. 그 말을 끝으로 마취에 빠졌다.
눈을 뜨니 병실이었고, 놀랍게도 한~개도 안 아팠다. 질은 근육으로 되어있어서 통증을 못 느낀다고 한다. 근데 왜 전처치나 자궁경부검사때는 아픈건데?
아무튼 의아할 정도로 질이나 자궁쪽에선 아무 느낌이 안 났다. 마취가 안 풀렸다기보다도 진짜 질이 감각을 상실한 기분. 생소하게 있다가 주섬주섬 원피스주머니를 살피니 팬티가 없다. 팬티가 감쪽같이 입혀져 있었다.
내 엉덩이를 들어서 의식 없는 나를 뒤치락거리면서 열심히 팬티 한쪽에 다리를 넣고 다른쪽에 다른 다리를 끼워넣으며 고군분투했을 간호사분들을 상상하니 굉장히 재밌기도하고 고맙기도하고 좋았다.
믿을 수 있는 엄마품에 안긴 아이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척 마음이 힘들 때였어서, 별 거 아닌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곤 했는데 '다정함'에 유독 눈길이 갔다. 환자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팬티를 입혀준 그 다정함, 무서워하는 환자를 다독이는 다정함. 다정은 의무가 아닌데 값의 지불 없이 다정을 건네주는 손길을 삶이 힘들때 정말 강하게 느낄 수 있다.
필요한 수술이었다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받은 건 위로와 따스함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검사를 해주고, 수술을 해주고, 바라봐주고, 내 몸을 살피고 그런 게 당연한 건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도 따스한 기억이다. 그 시기에, 일부러라도 자궁수술을 해서 다행이다. 이외로 수술이 굉장히 위로가 되었다.
세상엔 나를 어떻게든 해하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어떤 이유로든 그게 돈으로 이어진 관계이든 의사와 환자의 관계든 날 살리고 살피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 관계 속에 느껴지는 따스함으로도 충분히 사람은 다시 내일을 꿈꾸고 일어나고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