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내 인생의 그 날

by 김지은

내게는 잊지 못할 '그 날'이 있다.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괴로운 순간'을 꼽으라면 그 날을 첫번째로 하고 싶다.


그 날은 작년인 2024년 딱 7월이 지난 무렵이었다. 뭔가 딱 그 일로 인해서라기보다도 이미 그럴 예정인 것처럼 그 존재와의 관계는 많이 틀어져있었다. 그건 공연히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고, 아주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유년시절 기억과도 겹쳐지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늪같은 불쾌함을 주었다.


내 고양이를 대할 때, 태도가 어린 시절 나를 대하던 태도와 비슷할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차올랐다. 약자를 대할때 그냥 나를 대할때 자주 이유없는 손찌검, 주로 머리를 때려서 어린 나는 '이렇게 맞으면 머리가 저절로 나빠지겠구나'라고 생각했었고, 커서도 발로 차거나 어떤 포인트인지 모를 부분에 꽂혀서 그걸로 나를 이상한 애 취급을 했다. 그게 단순 훈육이면 좋겠는데 그건 어디로보나 '신경질'이었다. 모든 화풀이를 세상에서 단 하나인 나라는 존재에게 뿜어대는 그 존재는 다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단어, '아빠'다.


우리세대 부모가 다 그렇지,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적어도 나는 그게 싫어. 그럼 싫어해도 되잖아.


자는데 시끄럽게 떠든다며 딸에게 베개를 던진다. 나는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며, 어린 기분에도 '에? 자기 가족에게 베개를 던진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미 마음으로 잔뜩 맞은 기분.


자기 기분에 거슬렸다. 그 조건 하나로. 그리고 항시 불타오를 준비가 되어있는 양초의 심지처럼, 항시 나를 주시했고 자기 기대에 맞는 내 거슬리는 어떤 행동, 말투가 나오면 즉각 나를 향해 발화했다.


나는 그런 불안정한 기분의 느낌을 잘 안다. 온 몸으로 그걸 체감한다. 나를 불쾌하게 여기는 상대의 온 몸에서 내뿜는 그 열기같은 냉기를 그 거칠거칠한 감각을 나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아빠는 어릴적 엄마를 사고로 잃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불쌍하다고 한다. 나보고 이해하란다. 그럼 그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은 나는 누가 이해를 해주나. 분명 가정폭력까지는 아니었는데, 항시 순간순간 내 존재를 어그러뜨리고 밟은 것도 그 존재다. 어릴때에는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어도 울음부터 나오니까 어쩔 수 없었는데 나중에는 눈물도 보이기 싫어서 슬슬 싸우기 시작했다.


그가 그랬듯이 나도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두 눈으로 시퍼런 열기를 담고 그 존재에게 대응하고 소리질렀다. 나는 절대 당신이란 존재에게 짓밟히지 않아. 절대로.


참 아슬아슬한 사이였다. 줄곧. 근데 터질때마다 엄마는 아빠의 편. 동생은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엄마가 뒤에서 나에대해 참으라고, 참으라고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근데 그것도 이상해. 뭘 참아? 내가 뭘 얼마나 아떻게 살았는데.


심지어 충격이게도 30대가 넘은 시점에서도 엄마는 줄곧 아빠에게 날 참으라고 했다는데, 사실 그런 엄마의 태도가 아빠를 더 정당하게 만들었고, 나에 대해 다른 이해를 하지 못하게 만든 거고 그렇게 화를 내는 자신을 변화시킬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게 만들었던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오히려 엄마의 그런 행동이, 이런 상황에서 참아내는 기특한 아버지상으로 느껴졌겠지. 그는 '대장'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장' 그게 뭐라고. 다 해먹어. 당신 혼자 대장하고, 당신 혼자 그렇게 즐겁게 지내.


엄마는 또 대체 무슨 현모양처를 꿈꾼거야.


어릴때에도 자주 아빠라는 존재가 퍼붓는 악담, 날 향한 부정, 손찌검으로 가슴이 자주 먹먹하고 답답했고 괴로웠다. 살면서 한 번도 그 존재가 날 사랑한다, 애정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심지어 막 까부는 성격이나 기질도 아니었어. 조용하고 얌전했단 말이야.


나는 자신의 자식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 다루려 이용하는 것도 전혀 모르겠다. 그건 좀 싸이코같지 않아?


지난 3년간 회사의 이슈로 아빠는 베트남에 가게 되었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너무나도 살기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랑 여동생, 이렇게 셋이 마침 집도 이사를 해서 너무 편안했다. 천국 같았다.


싸울 일도 없고, 나를 내리깎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가 3년만에 아빠가 다시 돌아오고, 3년간 가족 없이 지내다보니 가족이 그리웠나보지? 갑자기 포옹을 하더라. 나는 아, 아빠가 이 정도로 노력을 하니 나도 다 잊고 잘 해드려야지 오해했다.


그 이후로 아빠라는 존재에게 진심으로 화이팅을 위한 말도 하고, 거짓없이 감사함을 말하고 살갑지 못한 딸로 인해 받았을 어떤 괴로움이 있었을거라 생각해서 더 열심히 내 마음을 표현하고 또 표현했다.


근데 자주 보이는 내 고양이에게 하는 어릴적 내게 하던 태도, 말투. 간간히 드러나는 예전의 말투, 본성. 그건 그냥 감춘 거였을까. 예전과 같은 그 모습이 드리울때 내 마음 속에 깊숙이 감춘 그 검은 그림자도 선뜻선뜻 날을 세우고 두근거렸다.


그러다가 같이 산지 3년즈음, 서로 더 이상 포장하고 싸매던 것도 다 떨어지고, 낡아지고, 사라진 즈음. 우리는 역시나 예전처럼 서로가 아주 불쾌하고 불편해졌다. 가족들 다 자는 시간에 거실에 크게 켜놓은 전쟁영화는 새벽내내 큰 폭발소리와 총소리를 냈고, 나는 저 이기적인 심성이 너무나 싫고 경악스러웠다. 심지어 같은 방에서 자는 엄마가 바로 옆에 있는데 핸드폰으로 크게 영화를 틀어놓고 보는 걸 보며 미쳤다고 생각했고, 사람은 변할 수 없다는 걸 통감했다.


배려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배려가 없는 혹은 필요없다 생각하는 사람은 배려를 할 수가 없다. 애초에 관심사에서도 밖이니까. 나는 그런 사람을 결코 존경할수도 좋아할수도 없다.


엄마는 왜 이 사람을 택했을까. 남편으로는 잘 하는데, 가정적이진 않잖아. 엄마도 여기까진 몰랐겠지?


나는 엄마의 선택으로 태어나기도하고 상처입기도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이랑 가족이 되어 지냈다.


혹은 전생에 날 죽인사람이라 이렇게 서슬퍼렇게 눈이 홉떠지는지도 모르지.


더 이상 서로의 거짓애정도 말도 남아있지 않았을때 결국 일은 터지고, 그 날은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항상 '이 새끼'가 나오는 상황에서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내가 몇년에 걸쳐 그 말좀 하지 말라 했는데 여전히 그러고 있음에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존재는 조용히 내게 다가와 서서 내 뒷목 언저리를 손으로 끌어당기며 '야, 니 방으로 들어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라고 했다.


나는 얼른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왔고, 바로 또 뒷목이 낚아채였고 다시 나왔다. 그걸 6번정도 반복하자, 이 상황이 제대로 미쳤음을 인지했다. 지금 이건 제정신이 아니야. 이건 정상이 아니야.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고, 여러가지를 보았고, 상상했고, 여러 감정이 스쳤고, 내 마음은 땅에 떨어졌고, 내 모든 존엄이 조각이 나서 무너진 상상을 했다. 현실이 너무 강렬해서 눈이 멀 것 같았고 이게 초 단위로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대로 맞으면? 주먹으로 맞을까? 얼굴? 많이 아프겠지? 얼굴은 맞은 적이 없는데. 맞고 나서는, 내가 반격해도 될까? 칼, 칼이 어딨지? 근데 죽이면 나는 내 고양이를 지킬 수 없잖아. 그냥 맞기만 해? 근데 내가 왜 이런 걸 생각해야돼?


순간적으로 저런 생각이 들었고, 나는 칼을 찾는 대신 똑바로 그 존재의 눈을 쳐다보며 맘으로 외쳤다. 씨발. 그만해.


눈으로 이 사태를 상대가 짐작하도록 쳐다보며 옆에 있던 내 핸드폰을 쥐었다. 경찰. 경찰한테 전화하자. 도와줘. 누구라도 이 상황을 제발 도와줘. 날 여기서 제발 꺼내줘...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주춤하며 다시 거실로 돌아갔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다가 엄마가 귀가해서 나는 뛰쳐나가 엄마에게 아빠가 결국 내게 손을 들었다고. 원가족의 끝을 알리듯이 말했고, 엄마 역시 예상했던 일이 벌어짐을 깨달았는지 손에 들고온 장바구니를 내팽게치듯이 던지면서 아빠에게 달려들어 고함을 쳤다.


이후에는 기억이 다 짬뽕. 앉아있는 내 의자뒤로 와서 욕을 해대며 의자를 흔들던 모습. 이후에도 술병으로 내 얼굴을 올려버리겠다는 말. 또 뭐랬더라...


자꾸 내게 욕을 하니 엄마는 결국 아빠 위에 올라타서 그만좀 하라며 욕을 했다. 이런 가족 지긋지긋하다고 혼자 살고 싶다고.


원가족이 깨진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짐같은 존재였으니까.


가족의 애정이란 뭘까. 나는 이혼가정에 산 게 아닌데, 가족을 잘 모르겠다.

가족의 애틋함, 사랑, 아낌, 그런 거.


동생은 무척 사랑해. 엄마도 괜찮아. 근데 그냥 가족 자체에 대한 헛헛함은 있다. 채워지지 않아.


그날도 예전에도 자주 하던 말은 '너 나가라'


가족에게 꼴보기싫다. 나가라. 맞고 싶냐. 술병으로 올려버리겠다.


그런 가족이라면 나는 없어도 돼.


그 일이 있은 후 바로 다음날 나는 독립할 집을 알아보게 되었고, 엄마가 동행해주었다. 대출이 나오는 한달가량을 그 존재랑 같은 공간에서 지냈는데 정말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매초 마다 마음에서 피가 막 뿜어져나오는 기분이었다. 지혈되지 않은 내 마음은 지속적으로 울고 흘리고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간신히 다잡고 있었다.


내 고양이랑 살거야.


나는 어떠한 사과도, 말도 듣지 못한 채 그렇게 마치 원가족에게 버림받듯이 도망치듯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하려하던 독립은 아니었는데. 재밌는 건 그 이후에 아무도 그 일을 꺼내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그 존재에게 잘못을 따지지도, 나에게 사과하라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잔뜩 타작당한 채 길가에 버려진 쪼가리같았다.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 화내줄 사람, 위로해줄 사람, 그런게 없었어.


나중에 들어보니 나 없을 때 엄마는 아빠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었고, 동생도 대수롭지 않게 그 일을 꺼내는 아빠에게 울면서 호소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빠는 동생에게 그 날 일이 기억이 안난다고 거짓말을 했다. 난 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아무렇지 않은 듯 엄마와 내게 '쟤 요즘 운동해서 내가 잡았는데 되게 빨리 빠져나오더라'라고 하던 말을. 그 말을 듣고 칼을 찾지 않은 내게. 달려들지 않은 내게 지금도 무한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온전히 살려면, 범죄는 저지르면 안 되니까.


독립을 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맥아리가 없어진 사람처럼 잠만 잤다. 이사 자체도 빡셌고, 신경쓸게 너무 많았다. 기진맥진한거지.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놔서 그나마 다 감당했지, 지금 다시 하라면 어후.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내가 그 집에서 살았다면 나는 차곡차곡 망가져갔을 것 같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 잘했어.


한가지 슬픈 일은, 내 고양이. 나랑 아빠가 그렇게 대치하고 있을때 같이 있던 내 고양이는 어디서 어떻게 꽁꽁 숨어서 떨고 있었을까? 아니면 안중에 없는 상태인 내 곁에서 나를 보고 있었을까? 어딘가 구석에서 절박해보이는 날 보고 있었을까. 그게 너무 슬프다. 이런 꼴 안 보이기 위해 혼자, 열심히 중심을 잡으며 잘 지내고 있다. 나를 해치려는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내 고양이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것이다.


이게 내 슬픈 독립의 계기였다.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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