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소개한 둘째외삼촌. 외삼촌네 부부와 외동딸하나가 있다. 내게 이 가족은 의미가 있는데, 어릴적 얘기를 하자면 어릴때 나는 꽤 날 아껴주었던 친할머니와의 사이가 달라지면서 어느 순간 할머니와 싸우는 이상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의 싸움이라쳐도 그게 뭐 대단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할머니는 내 치기를 유달리 과민하게 강하게 받아들인 모양으로, 조금은 다른 모양새로 변해버렸다.
사실 할머니는 내 친할머니가 아니라 아빠의 계모, 새엄마다. 그래서 내게도 친할머니라고 하기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아무튼 피가 섞이지 않아서 그런지 할머니는 유독 커가는 나를 미워했고 단순히 연장자가 아이를 혼내키는 것 이상으로 할머니는 나를 '해치고 싶어'했다.
그게 아마 내가 처음 경험한 가정폭력이 아닐까 싶다. 직접적으로 떄린 건 아닌데,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알았는지 평소 안방 내 책상에 초코렛이나 간식을 보관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할머니와의 싸우는 일이 생기면 방문을 잠그고 틀어박혀 엄마나 다른 어른이 오기전까지 모아두었던 '비상식량'을 먹으면서 버텼다.
왜 싸우게 되는 건지, 그런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기억이 나는 건, 쿵쾅거리면서 문을 열려고 난리를 치는 할머니와 그 안에 나는 책상에 앉아 비상식량인 초코렛을 까먹는다. 마음은 쿵쾅쿵쾅 떨릴 정도로 나 역시 화가 많이 나고 긴장이 높았던 것 같다. 후에 그런 내 모습을 본 가족은 내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공포보다는 분노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내게 공포의 대상은 아니고 이상하게 서로에게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주 어릴적 할머니는 내 주된 양육자였고 날 많이 예뻐해주었고 사과나 과일도 항상 숟가락으로 퍼서 주었다. 그리고 항상 업어서 다니고 동네 할머니들도 인사하면서 예뻐해주었다. 그러다가 몇 살 더 먹었을 뿐일텐데. 고집이 좀 더 늘었다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날 죽일듯이 대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할머니는 직접 아이를 낳아키운 적이 없는 여성이었지만 그게 날 폭력적으로 대한 것에 정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지만, 조카가 무척 예쁘다. 아이들을 함부로 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아무튼 극에 치달았을 무렵, 부모는 결국 나와 할머니는 떨어뜨리기로 결정했다. 그 마지막 날에는 내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그리고 최근에 들은 바로는 그 당시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 눈에는 방문을 칼로 찍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게 내가 모르고 지내온 진실이었다. 문을 쿵쾅거리는 건 단지 문을 치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칼은 단지 문을 열려는 용도였을까, 아니면 나를 찌르기 위한 용도였을까.
그런 상황속에서 나는 나 홀로 피난을 가득 집을 나서야했고, 그 당시에 나를 도와준 건 둘째외삼촌네였다.
어디 갈데가 없었고, 상황을 잘 아는 둘째외삼촌이 선뜻 집에 오라고 했다. 같은 동네의 가까운 다른 사촌도 있었지만, 둘째외삼촌이 가장 먼저 나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를 입은 내가 그 집을 떠나오며 피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왜 내가 나가야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다친 건 난데.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에도 이어져서 작년 '그 존재'와 마치 그 날의 할머니와 싸우던 것처럼 나를 향해 겨눈 칼끝처럼 예리한 그 불쾌한 공격적인 감정에 베여 홀로 도망치듯 나왔다. 친할머니와 친아버지는 이리도 나를 해치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게 너무 슬프다. 슬픈 일이지.
왜 항상 다친 사람이 그 곳을 벗어나야하는 걸까.
누구도 나랑 같이 나와주지 않는다.
그건 어릴때도 지금도 생소하고 외로운 사실이다.
내가 엄마라면, 내 아이를 택하겠어.
우리 엄만, 정말 차가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난 엄마같은 사람은 안 되어야지.
내 아이에게 내 사람에게 이런 상처는 주지 말아야지.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집에서 나와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둘째외삼촌네로 간다. 수원에 사는 둘째외삼촌. 집은 이전 글에도 소개했듯이 평수도 넓고 쾌적해서 나 하나 들어가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워낙에 부부 그리고 외동딸 하나여서 큰 집이 허해보일 정도였다. 가정이라면 뭐낙 아늑하고 따뜻함이 있어야하는데 약간 초가을같은 바람이 서린 느낌이 종종 들었다.
처음 외삼촌의 차를 타고 가자, 저녁무렵 집근처의 닭갈비집 같은 곳에 갔다. 닭갈비였는지 오리고기였는지,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는 나는 그냥 오물오물거리며 먹었고, 편안한 느낌의 둘째외삼촌과 그 옆의 외숙모는 환영하는 얼굴로 밝게 나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얘기했다. 나는 눈치가 없어보이지만 의외로 감이 좋아서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느끼는지는 대강 안다. 둘째 외삼촌네는 나를 다행히도 좋아해주셨다. 나를 진정 도와주고 싶어하셨던 것 같다. 그게 지금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오갈데가 없고 가족에게도 끌어내려진 나인데, 이렇게 도와주다니. 평생에 감사한 분들이다.
막 애써 나를 재밌게해주려거나 그런 건 없었고, 내가 편한지,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챙겨주시고 각자 편한 일상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외삼촌도 외삼촌 나름대로 할 거 하시고, 외숙모도 티비도 보고 밤에는 사촌동생에게 동화책도 보여주면서 나도 같이 보도록 해주시고. 초등학교 6학년이어서 대부분의 동화책은 떼었는데, '장화홍련'이라는 동화책은 난생 처음보아서 꺼내들었더니 외숙모는 '그거 무서운 건데 괜찮아? 밤에 잠 잘 수 있겠어?'라고 말했던 게 기억 난다.
그 밖에도 수원집에서 내가 다니던 학교(방학이 아닌 평일이었다 심지어)로 아침마다 가야했는데, 다행히 둘째외삼촌의 직장도 안산이었다. 그래서 출근하시는 겸 나를 학교로 태워주시는데, 차에서 자주 나오던 노래는 아직도 기억한다. 여자 중년 가수의 노래로, 구슬프게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노래. 세월이 가도 영원히 그리워한다는 내용.
그렇게 며칠을 보냈는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그 이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우리는 항상 조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집이었다)를 원래 집에 두고, 가족 전체가 내 학교 근처의 빌라로 (임시거쳐) 옮겨왔다고 해서 나도 수원집에서 나와 제 가족이 있는 빌라로 들어갔다.
그게 부모는 최선이었다고, 자식보다 부모를 섬겨야한다고 배워온 부모는 그게 최선이었다며 성인이 된 나에게 말을 했는데, 그 말은 왠지 본인들도 무안한 느낌이었다. 단지 계속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만 되풀이 할 뿐.
나중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원래 두 분도 같이 있으면 치고박고 많이 싸우는 상태였다) 또 불화가 깊어져 결국 그 집에는 할아버지 혼자 지내게 되고 할머니는 고모댁으로 가셨고, 돌아가실 때까지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게 최선이었겠지.
참 가족은..,
남보다 못하다.
다시 할머니를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최근에 아직도 건재하신 할머니와 속깊은 얘기도 나누고 할머니 어릴적도 물어보고 하는 또래들을 보면 신기하다. 나는 오래전 돌아가신 분들인데, 친구처럼 할머니랑 지내는 걸 보면 부럽다. 분명 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소중한 유년시절이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을텐데, 나는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구나. 그럴 나이도 아니었고. 뭔가 아쉽다.
내게 도움이 되어준 고마운 둘째외삼촌네 가족. 잘 되었으면 했는데, 현재는 사실상 너무 안 좋은 상황에 간신히 이혼만 안 하고 계시지 가족이 뿔뿔히 다 흩어진 상태다. 그래서 만에하나 내가 이제 독립도 했고, 외동인 그 사촌동생이 어디 갈데가 없다면 내 집에 오라고 하고 싶었는데, 너무 상황이 안 좋은 모양인지 모두들 말렸다. 아쉽다. 은혜를 갚아야하는데.
기회가 있겠지, 생각하며 다시 잘 되시길. 온 마음으로 항상 바란다.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신 분들에게 세상의 안온함이 가득하길...
여담이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최근에 내 꿈에 나타났다. 무려 20여년만에. 가족에게 다치고 혼자 나와살면서 아직도 가끔은 울던 내게 나타난 할머니는, 아프시기 전 모습이었고 나는 할머니가 힘차게 양치를 하는 모습에 '할머니 건강하네?'하고 기쁘게 말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나를 보면서 또 '왜 이렇게 예뻐졌어?'하고 물었다. 진짜 20년만에 할머니를 다시 만난 기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인데도 예뻐해주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할머니는 그 당시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알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힘들어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나는 꿈속에서 펑펑 울어버렸고, 실제로도 엉엉 울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다정할 수 있었으면서 살아생전에는 왜 그렇게 날 미워했어요. 우리 잘 지낼 수 있었는데. 나 할머니 좋아했단 말이에요.
꿈에서라도 날 보고 싶어서 오신 걸까, 생각하면 나에게 칼을 들었건 말건 이제는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그 칼은... 잠긴 문을 따기 위한 도구였을거라고. 할머니도, 나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다시 꿈에서 만나게 되면 한 번 꼭 안아드리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