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물레가 있었는데 (실을 잣는 물레가 아니라 도자기 만드는 전기물레) 평생 똥손으로 여기고 살아오더가 그리고 별달리 하고싶은 거 없이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순수하게 잘하고 싶고 재밌다고 생각한 게 바로 도자기 물레였다. 그냥 손으로 빚는 게 아니라 물레를 이용해서 원심력으로 힘을 주고 중심을 잡고 흙을 손으로 만지고 내 손끝의 힘이나 방향에 의해 흙이 움직이고 조율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섬세하게 힘을 조절해나가는 것을 깨우치는 것도 30년이 넘는 평생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어릴때 그럼 찰흙놀이를 좋아했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는데, 찰흙이 손에 묻는 게 너무나 불쾌하고 싫었다. 그리고 그림이나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에 음악시간이나 악기다루는 건 좋아했다.
예체능에 별다른 의욕도 재능도 없이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성인이 되어서 느끼는 만드는 즐거움이란. 내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것도 큰 작용을 했다. 항상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느라고 몰랐는데 성인이 되고 누가 내게 이거해봐 저거해봐를 해주지 않는 상황속에서는 또 다시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30대중반에 처음 우연히 내 의지대로 도자기를 접하게 되고 물레를 하게되고 너무 재밌어서 공방을 마친 후에는 아예 물레를 사서 집에서 하고자 했다. 그래서 어찌저찌 물레를 구매했고, 중고로 사왔기 때문에 들여오는 것도 일이었다. 물레의 무게는 거의 40kg이상. 성인여성이 혼자 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당시 남자친구가 있어서 내 부탁이 정말 짜증이란 짜증을 다 내면서 가주고 들어주고 차로 옮겨주었다. 이왕 해주는 거 좀 같이 즐거워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뭘 해줬을 때의 기억은 결국 해주고도 온통 짜증난 이미지로만 남아버리잖아.
물레를 들여오니 반겨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족이랑 살 때였어서 딱히 둘 데가 없어서 배란다에 뒀는데 정말 하나같이 다들 짜증 짜증. 눈치보면서 물레를 옮긴 날이 생각 난다.
내 돈으로 샀고 피해를 주는 건 아니잖아. 내 평생 비싼 거 사본 건 물레가 처음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건데, 아무도 반기지 않았다. 유별나다고 생각했겠지.
다만 아쉬운 점은, 재밌긴 했는데 물레를 하느라 집중하게 되면 나는 숨을 참는 버릇이 있는데 공방에서도 하다가 몇 번 두통이 오거나 매우 지쳐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집에서 하려니 더더욱 답답하고 재밌긴 했는데 뒷처리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공방선생님은 이런 뒷처리 하나하나 다 하고 있었구나, 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방에서 손수 흙을 만들어서 쓰는 것에 익숙해져있었는데 그냥 도자기 관련 흙을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매해서 써보니 너무 손맛이 달랐다. 만들기는 여러개 만들었는데, 공방에서 내가 준비를 하고 기대하며 걸어가서 도착하여 공방선생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앞치마를 두르고 준비를 하고, 세팅이 된 환경에서 굴리는 물레와 집에서 만나는 물레는 차이가 컸다. 즉 나는 질려버렸다. 차라리 돈을 주고라도 공방에서 깔끔하게 만들고 나오는 게 나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기 접지를 잘 몰랐어서, 베란다의 특성상 바닥면에 전기가 통한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맨발로 전기물레를 해서는 안 되었는데, 모르고 맨발로 페달을 밟다가 (베달도 쇠) 전기가 올랐다. 지잉하면서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현기증이 느껴졌는데, 다행히 손을 잘 뗐다. 그에 겁이나서 더는 물레를 만지지 못했다. 그렇게 내 집에서의 물레는 채 한달도 돌리지 못한 채 겁을 먹고 끝을 맺었다.
그렇게 팔지도, 하지도 못한 채 미련만 남아 집 배란다에 덩그러니 남아있던 물레는 1년여를 방치되어있다가 용기를 내어 중고사이트에 올렸고, 그것도 한 몇개월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대폭 가격을 깎는 쿨한 구매자와 딜이 되었다. 여러모로 정말 물레에서는 좋은 기억이 별로 없네.
그렇게라도 팔아야했기때문에 결국 내가 산 원가에 올렸음에도 (물론 물레는 구매한 시기에서 가격이 계속 차감이 된다. 자동차처럼) 내가 2년여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30만원이 대폭 깎여서 팔리게 되었다. 구매자는 먼거리를 열심히 차로 달려왔고, 알고보니 도예를 전공하는 학생의 어머니였다. 그래서 딜을 잘 했던 거군...
아무튼 나는 그날 남자친구가 필요했다.(지금은 헤어져서 전남친이지만) 무거우니까 들어주고 좀 도와주길 바랐다. 너무 이기적이라고 해도 사실 필요한 상황이 있지않은가. 도와줬으면 곁에있어줬으면 하는 순간이 있다. 그 때가 그랬다. 하지만 들여올때도 그렇게 싫어하던 너가 올 리가 없지. 오히려 그렇게 깎는 판매가가 이상하다며 욕을 하고 전혀 다른 말만 했다. 나는 단념하고 그냥 물레를 팔러 일찍 엄마네로 갔다.(물레 산 건 가족이랑 살 때, 팔때는 독립을 한 후라서 엄마네로 가야했다.)
열심히 사용한 흔적을 닦고 지우고 준비를 하고 막상 만난 구매자 아주머니는 여리여리한 인상의 착한 성격이었다. 중고사이트 채팅에서는 너무 까탈스러워서 스트레스였는데, 막상 만나니 스몰토크도 재밌고 편했다. 딸은 아무 뽀얗게 이제 막 싹을 틔운 예쁜 잎사귀같았다. 딱 보기에도 '아, 정말 고이 키웠구나'라는 느낌의 딸.
그렇게 무거운 물레를 여자들끼리 낑낑대며 1층으로 옮기고, 옮기고 나서도 차량에 싣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결국 단지의 경비할아버지 두분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마무리했다.
딸은 숫기가 없어보였지만, 내가 쥐고 있던 물레의 도구를 조용히 쥐어 가져갈 정도로 당찼다. 내가 안 줄까봐 예의주시하고 있었나보다(ㅋㅋ)
딸은 도예학생이고, 맘 같아서는 공방을 차려주고 싶다고 했다. 연습할 공방을. 그래서 딸을 위해 물레보다 더 비싸고 까다롭고 크기가 매우 큰 토련기(흙을 재활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물레용 흙을 만들 수 있는 기계)까지 생각하는 중이라고. 애 아빠가 공방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엄청 열을 올린다고.
그런 말을 하는 아주머니와, 그 옆에 세상물정 모르는 아직 이마에는 여드름이 듬성듬성 나 있는 뽀얀 딸은 특별한 표정은 없이 그저 잠잠한 호수처럼 자리했다.
별 다른 인사의 말도 보태는 말도 없이. 든든한 우직한 엄마 옆에서 평온히 서 있는 아이.
세상물정 모른다는 말은 정말 좋은 말이다. 모를 정도로 나를 대신해서 말하고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다.
나의 어릴적도, 10대도 그랬다. 세상물정을 모를 정도로 화목한 가족은 아니었지만, 모를 정도로 나름대로 보호를 받았고 다른 고민 없이 오로지 내 고민만으로 살아왔다. 그 아이를 보니 내 어릴적이 생각났다.
뭔가 내 맘을 많이 스치는 게 많았다.
돌아와 티비를 보며 엄마를 향해 나는 '아이가 되게 그 집의 보물같다. 그치?'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리고 진짜 내 집에 돌아와서 나는 따뜻한 몰에 샤워를 하며 엉엉 울었다.
부러워서.
누구는 눈치보며 내가 산 물레를 내가 낑낑거리며 집 구석 베란다에 간신히 놓고 좋아라하는데, 다른 아이는 가족이 주변사람들이 아이의 필요를 위해 움직이고 준비한다. 그것은 그 아이가 편하게 아무 염려없이 내가 마련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하고싶은 걸 했으면 하는, 미래를 향해 하고싶은 것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랑의 애정의 마음.
그런 모든 것들이 느껴졌고, 그 아이 자체에서 그런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엄마가 그리고 직접 보진 않았지만 아이의 아빠는 이 아이를 무척 아끼는구나. 양지에서 햇살을 듬뿍 받으며 맑게 피어난 흰 꽃을 보는 기분. 그 해맑음은 내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
좋겠다.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너무 좋겠다. 부러워.
이 나이 되어서 물레를 사고 가라는 시집은 안가고 집에서 물레나 돌리는 딸이 싫은 건 당연했겠지만, 그냥 내게는 상처로 남아있다. 왜 잘 낳아놓고 시집을 안 가면 짐이라고 여기고 나가라는 말을 할까. 사람이 사람을 귀찮아하는 게 많은 상처가 되는 걸 알고 있을까.
사람이 부럽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상처를 받고 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냥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너무나 부러웠다. 많이 울었던 혼자였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