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건 11주년을 코앞에 둔 10월달이었으니까, 6개월이 되어간다. 오히려 이별 직후에 너무 통쾌하고 개운해서 정말 행복했다. 막 독립했을 때처럼. 그리고 오히려 반대로 최근들어 점점 내가 잊고 있던 아주 행복하고 즐겁고 서로뿐이었던 사귀기 1~3년 즈음이 떠오른다. 상대가 24살, 내 나이 26살의 연애부터 대체적으로 20대의 연애가 파릇파릇하고 진정성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고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냥 참 예쁘고 즐거웠다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고 서로에게 숨통같은 시기였다. 마지막에는 서로의 숨통을 조이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10년 이상 일기를 적어와서 예전 일기장을 보면 생소하다. 그 당시에도 연애로 고민도 많고 많이 싸우기도하고 답답해하기도 했었다. 다만 애정이 있으니까 더 믿어보기록하고 지속했던 연애임을 이제는 안다. 애정이 없으면 그리고 더 이상 내가 바라던 단 하나의 붙잡을 것마저 사라지면 연애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한다. 전보다 덜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상황이 전보다 더 나아졌다하더라도 애정이 없으면 약간의 다툼을 빌미로 헤어지는 게 연애니까.
사실 전의 일기장을 보면 내가 이별을 생각한 건 오래되었다. 거의 5년 이후부터일까. 그런데도 지속한 건 이별을 뛰어넘을 정도로 싫거나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니까. 사실 이별의 계기가 없었다. 항상 크게 싸우더라도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거나 혹은 항상 싸우고나서는 취소하지 못할 여행이 잡혀있어서 또 여행으로 힐링하면서 연애에 대한 다짐을 번복하기도 했다.
꽤 최근인 9년정도에는 일기장에 '이별을 선물받고 싶다'는 글을 적었던 모양이다. 어떤 유명한 노래 제목도 그렇지. 떠날 수 없는 연인에 대한 내용. 사랑하는 건 아냐. 애정이나 친밀함이야. 익숙함이고. 그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재밌는 건 더 이상 '내 사람'같지가 않아. 우리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근데 해온 시간이 너무 길어. 이걸 짊어지기도 내려놓기도 뭔가 어정쩡해. 지속이 된다면 지속하되, 계기가 있다면 이별을 기꺼이 선물받고싶은 기분. 서로에게 이별이 어쩌면 선물일 수 있겠다는 기분.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의 이별이 아니라 뭐랄까. 이 연애에 의미가 없다는 무궁무진하게 공허하고 의아한 느낌.
연애만 하는 것도 좋았다. 주말마다 만나서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다만 같은 장소에서 우리는 침묵했다. 나는 책을 봤으며 상대는 핸드폰을 봤다. 대화의 부재. 더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도 없고 알려하지도 않고. 누가 먼저 변했는지도 추궁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그렇게 변해버려서 깨닫는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린터라 이제와서 뭘 서로 다시 얘길 꺼내고 바로잡고 이게 절대 불가능하다.
그냥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던 연애에 대해 나는 항상 '내가 전생에 남친을 죽였거나 남친이 날 죽였나봐. 그래서 이렇게 오래 이어지는 거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만난 것 같다.
사람의 인연은 참 오묘해서 정말 헤어질 때가 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느사이 헤어졌다, 가 이루어진다. 헤어짐은 11년시간에 비해 정말 짧았다.
머물사람은 머물고 갈 사람은 때가 되면 간단다. 아름다운 이별은 사실 너무 어렵다. 아름답게 이별하려면 이별 자체가 없어야 되지. 서로 안 볼 요량으로 말을 건네는데, 그게 아름답다면 그건 아직 서로 사랑하는 감정이 있는 거야. 그럼 헤어질 필요가 없고 헤어지잔 소리 자체도 나오지 않겠지. 서로 혹은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소진해서 진저리치며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게 이별이었다. 나는 도망가는 쪽이었고. 너무 힘들었다. 유독 헤어질 즈음이 되니 더욱 숨이 막혔다. 너도 이상하게 그 시기 즈음에 안 하던 짓도 하고 정말 이상해. 11년동안 한 번을 안한 짓을 헤어질즈음이 되니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정해버렸다. 아, 헤어질때가 되서 저렇게 난리부르스를 치는구나 하고. 납득이 되고 체념이 되고 이해가 되었다.
헤어질때가 되면 잘 만나던 연인도, 착실하던 연인도 갑자기 허튼 짓을 하거나 실망을 안긴다. 웃긴건, 헤어질 시기가 아닌 경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용서를 빈다. 그러면 화해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가 너, 되게 당당했어. 검은 물을 토해내듯 너는 매번 날카로운 말뿐이었고 지난 과거를 들먹이며 자꾸 뭔가 날 정신없게 만들었어. 너만 고생한 연애는 아니잖아. 서로 싸울 힘도 없는 와중에 왜 날 괴롭히는 거야. 난 버틸 힘도 없어.
헤어진 이맘때는 지날수록 아, 적절한 타이밍에 헤어진 게 맞네,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최고로 행복했던 기억, 장소, 우리가 생각나는 것과 동시에 헤어질 직전에 너의 고함소리, 차 안에서 운전하면서 내뱉는 욕설, 내가 끼어드는 차를 보고 너에게 알려줄때마다 알고있다며 짜증을 빽 지르던 낯선 태도, 손을 놓고 한참 앞을 걷던 걸음, 함께 밥 먹는 자리에서 내 얼굴 가까이까지 들이밀며 보던 핸드폰. 이 정도면 나 널 놓길 정말 잘한 것 같다고. 두 가지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리며 그때의 우리를 기억하고 헤어질때의 우리를 아프게 생각한다.
아직 내 기억 속 20대의 너는 참 여리고 안타까웠어. 동정심보다는 좀 더 내사람을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좋은 걸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컸어. 또 그게 너에게는 부침이 되고 부담이 되고 귀찮았기도 하고 싫기도 했겠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들어. 나도 잘 한 거 없는 연애야. 잘하려고 노력한 연애일 뿐이지. 너도 그랬을 거야. 연애에 정답이 어딨겠어. 좋으면 만나고 싫어지면 헤어지면 되는 거지.
요즘 오래 결혼생활을 한 연예인들도 심심찮게 이혼소식이 들려오더라. 그런데 너랑 나의 연애 정도야 뭐 큰일이라고. 남들도 다 겪는 일인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도 여전히 어룽어룽 거리는 예쁜 기억들이 말도 안 된다는 감상으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너는 그때 참 말도 안 되게 내게 딱 맞춰진 내 사람 같았어. 그래서 지금은 인터넷에서 너무 잘 맞는 연인에 대한 팁이나 조언, 그런 내용을 보면 그냥 쓰게 웃고 말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렇게 즐겁던 너와 나도 결국 헤어졌는데.
참 인연이라는 건 기묘하다. 무서울 정도로 기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