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최근에 간 결혼식은 작년 초봄인가 아무튼 나랑은 관련이 없고,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의 친구 결혼식에 가게 되었던 게 마지막이었다. 그 결혼식이 여태까지의 결혼식 중에 꽤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바로 축가.
생판 남의 결혼식인데도 매우 편안했던 건, 내 가족이나 친척 결혼식때도 익숙하던 시골분들, 어르신들이 와글와글한 대기실이었다는 점. 그래서 낯설지 않게 편안하게 자리했었다.
그리고 신랑과 신부가 좋은 사람 같아 보여서 초면인 그들이 아름다워보였다. 결혼을 결심하고 그걸 진행하고 서로 상의하고 다투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설레이는 생활을 생각했겠지. 결혼은 뭘 모를 떄 가라는 게 다 알고나면 너무 귀찮기도하고 번거로워서 할 수가 없다.
아무튼 그 결혼식에서는 축가가 있었다. 어느 결혼식이나 축가는 있지만, 유독 거기가 더 생각이 나는 이유는 축가를 신부의 아버지가 불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 가족의 내면은 몰라서, 진짜 신부를 축하하고 싶어서 나온 부드럽고 자상한 아버지인지 아니면 그냥 활약하고 싶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인지까지는 모른다. 다만 적어도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걸 알겠는 건, 선곡한 노래에서 '내 친구'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는데, 함께 살아가는 내 소중한 내 친구라는 내용의 노래였다. 그 선곡이라면 아니 그 노래를 아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품고 사는 것만으로도 그 아버지는 상냥하지 않았을까. 축가로 홀로 나와 잘 부르시는 것도 아니고, 잘 부르는 시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겸손히 마이스를 쥐고 덤덤히 부르는 그 노래가 바로 근처에 앉아있던 내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우선 내게 축가를 아버지 혼자 한다는 건 특이한 일 중의 하나였고, 분명 누구나 그 자리는 쑥스러운 자리인데 그 연세 지긋한 아버지가 용기를 내어 그 자리를 선 것이다. 자신의 딸을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자신의 딸의 시작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진짜 용기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 소박하게 부르는 모습에 뭉클했다. 노래 한글자 한글자에 진심을 담아 부르는 게 느껴졌다. 딸을 정말로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정말 보석처럼 아끼면서 키웠겠다. 설령 그게 눈에보이진 않더라도 맘으로 딸을 많이 소중하게 생각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딸. 사랑하는 딸. 내 딸. 내 사랑.
그 모든 게 들어있는 축가였다. 정말 멋있었다. 멋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 결혼식에는 축가를 부르던 신부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욕을 듣거나 맞거나 위협을 하거나 미아냥거리거나 깎아내리고 내 자아가 많이 깎이는 의심을 받는 그런 상황에 많이 노출이 되어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도 잠시 친절해진 그 모습을 믿었는데 그 속은 여전히 새카만 내가 아는 그 사람 그대로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 축가를 부르는 아버지가 무척 부러웠다. 저렇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구나. 남들 앞에서 정말 귀해지는 기분이 들겠다.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랑을, 기억하겠구나. 내가 기억하듯이.
다정함을 좋아한다. 내가 다른사람에게 다정함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만 뜻하지 않게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서 다정을 배우는 기회도 정말 좋아한다. 다정한 사람의 태도를 좋아한다. 기적이라도 만들 수 있는 다정한 태도.
제 3자인 나도 이렇게 감동인데, 분명 신부는 울고 있겠지? 하고 식장을 바라보니, 신부는 의외로 쿨한 표정으로 있었고 울지도 않았다. 그저 '아빠가 또 저러네' 정도로 보였고, 그렇다면 신부의 어머니는 울고 있겠지? 하고 본 부모님석의 어머니도 그냥 별 감흥없이 앉아 계셨다. '저 인간 또 저러네'정도의.
근데 그 아무렇지 않아하는 태도나 표정도 내게는 정말 신기하고 좋아보였다. 이렇게 노래하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게 익숙한 것일까? 그래서 이런 날에도 신부는 방긋방긋 웃고 울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아빠랑 친구같은 사이이려나. 그런 것도 너무 좋겠다. 너무 즐겁겠다. 나는 반말이라도 하면 어릴떄 맞았는데.
지난 글 '그 날'에 나와있듯이 나는 어릴적부터 아빠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나는 약자여서 그런 걸 그대로 받아버렸고 성장하고나서는 내가 나를 지키는 힘으로 부조리함을 다 싸워냈다. 그리고 독립을 하게 된 일이 벌어지고나서 다닌 상담에서는 선생님이 나의 친부는 누군가를 자기 밑에 두고 밟고 일어나거나 그 존재를 낮춤으로써 자신이 크다는 것을, 우위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했다. 그 희생양은 나였는데, 아마 내가 전생에 친부를 잔인하게 죽였나보지. 그러지 않고서는 자기 딸을 이렇게 할 순 없지. 그 사람은 누군가를 진정 사랑하거나 아끼는 법을 아마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부모가 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애정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 작은 동물도 키우면 안 된다. 그건 그 자체로 폭력이라 생각한다.
나도 다정한 아빠. 반말하면서 장난치고 티키타카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면서 대화하고 그런 게 하고 싶다. 나도 날 위해 축가를 불러주는 사랑하는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남 앞에서 자랑하려고 마이크를 뽑아드는 게 아니라 정말 딸인 나를 위해서 수줍지만 용기내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러주는 내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너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