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병원을 그리 싫어하는 편은 아니고, 적당히 표현하자면 뭔가 향수어린 고향같기도하고 졸업한 학교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죽을병이 걸렸던 건 아니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 20대 초반에 척추측만증수술(이전 글에도 적었지만)을 해서 몇주간 입원을 했었다. 그리고 수술 후유증으로 몸무게가 비정상적으로 38키로까지 빠지면서 기력저하로 인해서 자주 아프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갑상선 항진증까지 와서 건강에 정말 빨간불이 제대로 들어왔을때가 있었는데, 그 때에 집 앞의 병원으로 자주 입원을 했었고 응급실도 자주 갔었다. 그래서그런지 뭔가 병원냄새, 대기실, 병원의 깨끗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화장실, 데스크, 진료실, 수술실, 입원실 모두 나는 익숙한 편이다.
그리고 병원을 나 혼자 온 게 아니기때문에 항상 기억 속에는 수술이나 회복하는 과정,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함께 오랜 대기시간을 기다리는 엄마랑의 시간이 포함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받은 자궁용종수술시에도 간만에 엄마랑 산부인과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홀연히 지난 10여년의 시간이 실감이 나고 뭔가 포근함을 느꼈다. 그때처럼 엄마가 나를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다행이라고.
병원은 나쁜 병을 알리는 그리고 아픈 치료나 수술을 해야하는 무서운 곳이고 우울한 곳이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그 병을 만든 건 병원이 아니다. 병원은 그 병을 알려주고 살리려고 치료를 하는 나를 돕는 장소다. 병원 자체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병은 병원이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이미 발현이 된거니까, 무섭다고 친다면 내 몸이 무서운 게 맞지.
그래서 나는 병원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이고 편안하고 익숙한 향취를 느낀다. 허리수술을 하고 요양보호사 할머니랑 같이 복도를 걸으며 운동하던 낮도 밤도, 걷다가 지나치던 아주 고요한 터널같던 암병동으로 이어지던 복도도 기억이 난다. 그 곳만은 진공상태인듯 지나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근의 자궁용종수술은 내 인생에 너무 충격이고 가슴아픈 일이 있었던 때여서, 나는 뼛속까지 너무 시리고 시려운 감정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아무도 내 편이 없고 쓸쓸하고 쓸쓸하고 쓸쓸했다. 그때에 병원은 많은 위로가 되어준다. 사실 감정의 교류만큼 나는 피부의 닿는 느낌도 교류가 된다고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성적인 그런 거 말고. 그냥 인간과 인간의 온도가 전해지는 혹은 도움이 전해지는 그런 행위를 좋아한다. 이를테면, 병원가 환자의 관계같은 거.
맘이 힘들때 마침 수술을 결정했던 건 지금 내 인생에 뭐가 막 껴있어서, 액땜을 몸으로 하자, 라는 생각이었다. 그럼 좀 풀리려나 맘이 나아지려나 하는 생각. 그래서 이참에 해도 안해도 좋을 1센치도 안 되는 작은 용종이지만, 뭐 이것때문에 생리통도 심해진다고하고 또 걱정되던 출혈도 나아진다고하니 떼버리자는 생각으로 화끈하게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한 결정이었다.
병원자체가 주는 안락함, 나를 치료하고 낫게 해주기 위한 의사선생님의 설명, 이야기, 친절함 이런게 좋았다. 가족에게서 너무 갈기갈기 찢겨서 넝마같은 상태로 병원에오니 나를 도와주는 그 손길이 너무 좋았다. 비록 환자이고 돈으로 이어진 관계라하더라도 누군가 나를 위해 내 몸을 봐주고 걱정하는 말을 하고, 나아지길 위해 도움을 준다는 게 기적같고 따스했다.
그리고 수술 당일에는 여자간호사분들이 서둘러 수술채비도 해주시고 나를 타이르고 설명도 해주고 따뜻한 손길로 주사도 놔주고, 아플거라는 얘기도 해주고 (실제로 아프지도 않았다, 난 통증에 강하다) 그런 친절이 너무 위로가 되었다. 부드럽게 내 손목에 주사를 놔주고, 살펴주고 물어봐주고. 그 당연한 게 가족에게는 나의 부친에게는 영영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 날 그리 보살피지 않았으니까. 그 순간에 나의 존재는 없었으니까.
수술하러 가는 과정에서도 친절하게 그리고 수술 직전에 부산한 수술방에서 나는 마취주사를 맞기 전 필사적으로 마취가 잘 듣지 않으니 걱정된다고 했고, 꽤 까칠해보이던 나이있는 간호사분은 잠시 날 바라보더니 바쁜 와중에 헛소리하는 환자에게 친절히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모든 게 너무 따뜻했다. 너무 시리고 추웠던 그때의 내게 병원은 너무나 따뜻했다. 치료든 뭐든 내 안타까운 마음을 몸을 좀 더 어루만지고 도와주길 바랐다. 수술을 너무 잘 받고 수술전에 벗어서 주머니에 넣어두면 입혀드린다고 하던 내 속옷은 너무나도 잘 입혀져있었다. 그것도 너무 감사하고 좋았다.
직업으로 가식이든 어떻든 상관없이 나에게 병원은 고마움이다. 누군가는 진상환자이기도 하고 별로 아프지 않은데 가서 치료를 받거나 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힘들때 어쩌다 필요하여 수술을 하게 된 장소였다. 그런데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많이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병원을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나를 살려주는 곳. 돈으로 이어지지만 돈을 준다해도 나를 살리는 사람, 존재는 사실 가족도 마땅치 않다. 나를 살리려고 해주는 곳, 나를 염려하는 곳. 나는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병원이 좋다. 병원에는 나를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친절이 잠시라하더라도 그 잠시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