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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상순 Oct 03. 2023

프리다이빙 로그북

-14. 캔디볼과 만나다(2023/10/2)

연휴 동안 틈만 나면 영상을 봤다. P강사님이 보내 주신 (내 영상 말고) 강사님 셀프 덕다이빙&턴 영상. 덕다이빙 하고 나서 피닝 없이 스트록 만으로 쭈욱 내려가는, 캔디볼 앞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우아하게 캐치와 터닝을 마무리하는 보기만 해도 성스러운 그 영상. P강사님의 영상 사이사이 내 영상도 봤다. 안 본 눈 사고 싶은 영상이지만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아야 수정도 가능하기에.


머리로는 알 것 같지만 시뮬레이션 자체가 쉽지 않다. 수면 밖에서 머리를 처 박은 상태로 손동작을 연습해야 하는데 도대체가 꼬인다. 몸도 꼬이고 마음도 꼬인다. 이럴 땐 내가 가려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몸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그 반대로 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동작을 무의식적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상을 볼 때는 알 것 같은 점이 물에 들어가면 자동 말소된다.


월요일은 태극권 수련이 있는 날이라, 풀장에 갈 엄두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만 정확하게 알아채면 몸에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속이 탄다. 캐치볼을 부여잡을 왼손. 손바닥 하나가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월요일 모임에 참석 의사를 밝히고 풀장으로 향했다. 긴 연휴 덕분인지 다이빙을 즐기러 온 다이버들이 많았다. "누님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L강사가 소리쳤고, 나 외에 누님이라 호명된 또 다른 다이버와 부이를 잡았다. 강사후보생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까지 도합 셋이. 


프리이멀전을 할 때나 덕다이빙을 할 때나 몸을 쭉 펴는 버릇 때문에 몸이 뒤로 까인다.(전문 용어다) P강사님 말씀대로 입수 후엔 허리를 살짝 굽히듯 '가'에 힘을 뺀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경직된 상태가 해소된다. 프리이멀전으로 입수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몸을 쭉 펴려고 애쓰지 말고 일단 줄 가까이 몸을 붙이는 게 관건이다. 그러려면 다리를 살짝 접어주어야 한다. 다리까지 완전히 물에 잠겼을 때 다리를 펴줘도 늦지 않다.


많은 다이버들이 함께 입수한 만큼 귀동냥한 다이빙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버디의 조언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용량 초과다. 모두가 나 잘 되라고 주신 팁이지만 정보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내 것인 것은 아니다. 중심을 잡아야 한다. 조언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야 한다. 일단은 버디 및 강사의 조언대로 해보고, 잘 되지 않으면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한다. "선생님, 이번엔 제 루틴대로 해볼게요."


많은 다이버들이 직각으로 팔을 수면에 꽂은 상태에서 입수하는 걸 좋아하는데, 나는 팔을 쭉 뻗어 몸을 일자로 만든 다음, 앞으로 나란히 후 입수하는 게 편하다. 동작이 하나 추가되는 셈이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아닌가 싶어 바꿔보려 했지만 이 과정을 차근차근 밟는 게 멘탈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입수와 동시에 몸을 트는 것보다는 입수 후 줄을 찾는 편이 자세 유지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캔디볼. 두 분의 강사와 한 분의 버디에게 턴 동작에 관한 깨알 같은 조언을 들었는데도 캔디볼이 잡히지 않는다. 마음은 급해지고 급해지니 긴장된다. 오늘도 소득 없이 돌아가면 의기소침해질 게 뻔하다. 전환이 필요하다.


그때 P강사님 등장! 함께 입수해서 손 방향을 바로 잡아 주셨다. 수심 찍지 말고 중간에서 줄 잡고 턴 하고 되돌아오는 동작을 반복한다. 성공! 이 감각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P강사님은 "출수 후 바로 입수"를 외치신다. 이럴수록 준비호흡 충분히 하고 입수. 프리다이빙은 스스로 템포를 조절할 수 있는 스포츠임을 기억하자. 줄을 바른 방향으로 잡았으니 이젠 캔디볼 잡기. 가볍게 성공. 캔디볼을 잡았으면 릴랙스를 유지한다. 몸에 힘을 뺀다. 내 힘으로 돌려고 하지 말고, 내 몸이 돌아가길 기다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턴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CWT에서 턴 하는 순간은 호흡을 가다듬고 완급을 조절하는 쉼표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기 위해 대기하는 분장실과도 같은 시간, 그 공간을 쉼터로 만드는 건 순전히 나에게 달렸다. 조바심 때문에 또 한 번 잊을 뻔했다. 프리다이빙이 내게 줄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모험이라면 고요함에 대한 모험일 것이고, 프리다이빙의 선물이 흥분이라면 정적이 주는 흥분일 것인데. 


캔디볼을 잡았다. 

캔디볼은 움켜쥐는 것도, 그러잡는 것도 아니었다. 

스르르 나에게 다가오면 가만히 손 내밀어 가 닿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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