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을 올릴 것인가, 기본을 다질 것인가
마지막 로그북을 쓰고 보름이 지났다. 풀장에 가지 않아서 로그북을 적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름 사이, 네 번 다이빙 연습을 했다. 딥스에 다녀온 후, 이퀄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실제로 레벨업을 하고 5미터 풀장에 간 첫날, 귀에 불편함을 느꼈고, 출수 직전에 두통이 찾아왔다. 딥스에서 코피가 터졌을 때, 부비동 압착이 온 것이 분명했다. 며칠을 미루다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다이빙을 너무 하고 싶어서 병원에 갔는데, 다이빙을 하지 말라고 할까 봐 진료를 미뤘다. 바보짓인 줄 알지만 그랬다.
다행히 고막에는 이상이 없었다. 다이빙을 계속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의사는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갖가지 자료를 찾아가며 이퀄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며칠 후 풀장에 갔을 때 K강사를 만났다. K강사는 이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릴랙스가 깨졌던 걸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K뿐만 아니라 많은 강사들이 도장 깨기 식의 레벨업보다는 레벨 2 라이선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며칠 동안 이퀄에 집중하다 보니 페이스는 원래대로 회복됐다. 레벨업을 하자마자 레벨 3 수강신청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졌다. 석 달 동안 무자비하게 연습에 집중하다 보니 즐기려고 하는 펀다이빙이 내겐 제일 어려웠다. 잘해야 즐거워지는 성격이니 잘하는 것을 목표로 연습했는데 어느 정도 레벨업이 되었는데도 즐기는 게 어려웠다.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다이빙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다이빙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오늘 버디가 되어 주었던 Y는 말했다. 자신은 수심 타려고 연습하는 거 아니라고, 바다에서 놀려고 풀장에서 연습한다고. 나는 레벨 업이 목적이 아니라는 그의 말엔 동의했지만, 나의 목표 역시 바다에서 노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했다. 나 역시 바다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바다는 고요의 바다다. 고요와 더불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바다다. 해양 생물을 만나고 협곡을 노니는 펀다이빙을 즐기고도 싶지만 조금 더 깊숙이, 조금 더 아득한 곳으로 몸을 맡기고 싶다.
대표 강사는 내게 말했다. 이제 5미터 수심에서 할 일은 별로 없을 거라고. 수심을 더 타라고. 맞는 말이다. 그런데 딥스의 협소한 공간에서 다른 다이버들의 핀에 부딪혀가며 수심을 타는 일은 불편하다. 역시 바다다. 바다가 내 몸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면 내 쪽에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몰차노브 트레이닝을 한 달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이 있다. 사이드 피닝 혹은 배형 피닝을 할 때 확실히 덜 무섭다. 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조금 더 안심된다. 나는 여전히 빡센 트레이닝을 원한다. 11월 몰차 트레이닝을 중도에서 포기한 이유는 간단했다. 6시에 시작하는 트레이닝을 9시에 마치고 1시간 반 고속도로를 달려오면 열 시 반이 되어야 지리산 자락에 도착한다. 겨울 산은 춥고 어둡다. 체력이 달릴뿐더러 안전하지도 않은 여정이다.
결단이 필요하다. 몇 가지 선택지가 눈앞에 있다.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개를 기웃거리며 타협해도 된다. 다만, 명백한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