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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찝찝하고 불쾌한 것

만 가지 얼굴, 편두통에 대하여


편두통은 할 말이 많은 질환이다. 역사가 오래되고 전 세계 인구의 15%가 겪는 보편성을 갖는 질환이면서도, 그 특이한 성격으로 편두통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괴로움을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하고 고립된 성격을 갖는 질환이다. 편두통은 단순히 '편측으로 머리가 아프다는 증상'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고 여러 불쾌한 증상이 혼합된 질병이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신경과 질환들에 속집합으로 귀속되거나 유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신경과 클리닉에서 편두통으로 진단받으려면,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등도 이상의 심한' 점이 가장 우선이다. 빛과 소리, 냄새에 예민하고 메스껍기까지 하니, 편두통 환자들은 '예민하다'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편두통은 일종의 원형 질환으로, 종종 심한 불편을 초래하지만 일시적이고 자기 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편두통은 사망이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양성(benign)이며, 어떠한 조직 손상, 외상, 감염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편두통은 뚜렷한 기저질환이 없으면서도 질병의 본질적인 특징을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중에서


편두통은 뇌의 후두엽(시각 피질), 시상하부, 뇌간(교뇌) 등과 친하다. 편두통 발작 기간 동안 functional MRI를 촬영해보면 이 부위들이 활성화되었다가 가라앉는 걸 알 수 있다. 친한 부위가 여럿 되니, 증상이 두통 외에도 메스꺼움, 식욕 변화, 기분 변화 등 자율신경계 증상을 포함하여 만 가지 증상이 동반되는 것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뒷목까지 뻣뻣해지니 단순히 피로에 따른 근육통인 줄 알고 엄한 목 마사지만 하도록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편두통 환자의 10%에서는 시각 조짐(visual aura)이 나타나는데, 그 양상이 다양한 패턴을 가진 섬광처럼 나타나기에 고대부터 호기심과 서술의 대상이 되었다. 반짝이거나 지그재그 양상으로 나타나거나, 암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 가지 색을 지니기도 하고 무지개 색을 띠기도 한다. 그 양상을 표현하는 개인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양이 많다. 편두통의 시각 조짐과 마찬가지로 뇌전증(예전엔 간질이라 불린)의 조짐도 대응되는 증상인데 그 둘은 패턴이 다르다. 편두통에서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두통이 연이어서 나타나는 반면, 뇌전증에서는 조짐 자체가 경련 증상일 수 있고 공포감, 자율신경증상, 감각 증상, 시각 증상 등이 다양하게 겹쳐 나타난다. 어찌 되었든 휘황찬란하고 복잡 미묘한 시각 조짐을 동반한 편두통의 경우 후유증이 크고 증상이 더 심하다. 흥분된 뇌의 후두엽이 만들어낸 영상으로 이루어진 혹독한 편두통 세계를 경험한 이들은 이 그림을 절대 잊을 수 없다. 


편두통 환자들의 뇌 MRI 결과는 정상이다. 어지럼증, 구토를 동반하며 두통 전후에 전신이 노곤한 느낌, 혼란스러운 시각 조짐을 동반한 그 불쾌한 질환을 MRI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 편두통 환자들은 항상 묻는다.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뇌가 정상일 수 있어요? 왜 암처럼 근본적으로 떼어낼 수 없나요? 




편두통은 '양성'질환이지만, 편두통 발작이 몇 번이나 찾아오냐에 따라 이 질환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한 달에 보름 이상 만성 편두통을 앓는 분들은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거나 중대한 입시를 그르치거나 멀쩡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최근에는 보톡스 치료나 CGRP 항체 주사 치료가 희망이 되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녀석이다. 그에 반해 한 달에 몇 번 찾아오는 '삽화성' 편두통을 앓는 분들은 편두통을 일종의 '휴식'으로 받아들인다. 무리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이후에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상 리듬을 되찾기 위한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다. 편두통을 앓는 수일간(보통 이틀에서 사흘)은 술에 취한 것처럼 붕뜨고 노곤하고 얼얼한 느낌이다. 그런데 발작이 끝나고 나면 구름이 걷힌 푸른 하늘처럼 가뿐해지고 맑아진다. 발작의 시기와 끝난 시기가 선을 긋듯 분명하게 구별되는 이 느낌을 통해 '회복감'을 얻고 일상을 다시 시작한다. 편두통을 통해 휴식을 취했고 지금은 개운하고 기분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편두통 환자들은 대개 두통을 유발할 만한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진료실에서 두통 일기를 남길 것을 권고하는 이유는 반복되는 패턴과 촉발 요인을 수면 위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다. 수십 년 전에도 이런 방법을 권고하였고, 오랜 기간 많은 환자들에게 유효했다. 

하지만 이런 유발 요인을 조절하여 편두통에서 자유로운 양지로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편두통과 우울증이 동반된 경우도 많고, 이런 반복된 삽화에 자기도 모르게 순응하고 결국 스스로를 학대하는 환자들을 종종 보았다. 꼭 포기해야 하는 습관들에 대해 환자와 같이 공감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그 습관을 포기하고 관성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정적일 때 완고한 경우가 있다. 편두통을 완전히 극복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그 뒤에 숨어 발작과 치료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 의사가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편두통은 내부를 보호하면서도 외부로의 확장을 막는 도시의 성벽처럼, 자기의 특성을 지키고 특별한 이점과 안정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활동과 확대를 막는 이중적인 역할을 한다. 
올리버 색스, <편두통 : 뚜렷한 절망과 은밀한 위로> 중에서


전통적인 편두통 치료는 생활 습관 교정과 약물 치료이다. 안전하게 효과가 있는 약물에 대한 투약 지침이 조금씩 수정되고 있으나 크게 변함은 없다. 역사적으로는 편두통을 줄이기 위한 유발 요인 교정을 더 강조해왔다. 활동 방식, 불규칙한 식습관, 부족한 수면, 과로, 과한 스트레스, 시끄럽고 환기가 안 되는 좁은 공간, 장시간의 노동 등은 수 세기 전부터 경계했던 편두통 유발 요인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 외에도 유발 상황은 다양하다. 빛에 민감할 수도 있고, 과식에 민감할 수도 있다. 월경, 특정 음식, 술, 수면, 운동, 감정, 날씨 등도 해당된다.

하지만 유발 요인이라는 것이 그 선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레드 와인, 치즈 같은 음식은 유발 관계가 명확하지만, 편두통이 당 섭취 욕구를 자극해서 초콜릿을 찾는 건지 혹은 초콜릿이 편두통을 유발하는 건지 모호하다. 날씨가 너무 좋아도 안 좋아도 안되고, 수면 시간이 너무 부족해도 넘쳐나도 안된다. 소량의 카페인은 금단 두통에 도움이 되지만 과량은 탈수를 유발하여 편두통에 좋지 않다. 적당한 운동은 편두통을 예방할 수 있지만 과도한 운동 역시 원인이 된다. 가족들과 맛있게 과식을 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편두통 환자들은 결핍과 과하게 넘치는 것 사이에서 중용을 지켜야 하는, 절제의 미덕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먹어라'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라'. 

하지만 언제나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면 삶의 재미가 없다. 편두통 발작이 시작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상승과 하강의 기운을 몇 차례 겪고 나면, 항상 절제하며 중용을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 편두통 사이클의 고지에 있더라도 곧 여기서 회복되리라는 믿음이 항시 있기에 변칙도 가능한 것이다. 편두통 환자들은 자기가 무심결에 하는 행동의 방향과 결과를 숙지하고 있다. 




규모가 제법 되는 신경과 클리닉이나 대학병원에는 '난치성'이라고 주장하는 만성 편두통 환자들이 많이 내원한다. 웬만한 약들을 다 써봐도, 보톡스 치료까지 수차례 해봤지만 소용이 없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해봤다'가 아니다. 우선 난치성으로 진단하기 전에 '약물 과용 두통'부터 치료를 해야 한다. 이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난치성'이 아니다. 그리고 웬만한 약들을 권장 용량까지 써보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아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용량에서 미리 포기하는 분들도 많다. 또한 운동과 식사 면에서 유발 요인을 조절하지 못한 경우에, 끈질긴 의사들은 생활 습관 교정에 사활을 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드세요.' '하기 싫고 기운이 빠져도 매일 가볍게 걸어보세요.', 의사가 포기하면 남는 건 약물 중독과 의료비 지출뿐이다. 


https://brunch.co.kr/@gn20sep/37


편두통이 고약한 녀석인 까닭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여러 질환에서 동반되기 때문이다.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외에도 고혈압, 저혈압, 뇌졸중, 뇌전증, 비만, 아토피, 알레르기 비염, 수면 무호흡, 섬유근육통, 하지 불안 증후군 등과 함께 한다. 편두통이 잘 달래지지 않는다면, 돌아서 다른 동반 질환을 적극적으로 역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재작년부터는 CGRP 항체 주사라는 믿을만한 구석도 생겼다. 편두통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질병인 시대도 끝날 것만 같다. 음, 그럼 나를 어디에 써먹지?


편두통 환자들은 진료실에서 패턴화 된 증상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내가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의 단편도 떼어내서 들려주고 사적인 감정과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주고받는다. 삭막한 진료 환경에서조차 인간적인 병이다. 그러면서 편두통이 예민한 사람들에게나 있다는 딱지를 떼어내고, 대단히 히스테릭한 발작도 대단히 나쁜 질병도 아니니 자기 비난이나 동정은 필요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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