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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Apr 19. 2024

지독한 기억

가정폭력 이해교육을 듣고

강의하는 교육기관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매 년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다양한 교육들을 이수하는 것.

오늘은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와 예방> 교육을 들었다.


한참 듣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배우들이 재연을 하는 영상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이에게 고함치는 아빠, 그 안의 언어들, 아이의 표정에서 잊은 줄 알았던 옛 기억이 치받쳐 올라왔다.

마음속 깊이 묻어 놓은 지독한 기억들이 마치 현재인 양 느껴졌다.

살을 파고들던 대나무 회초리의 감각, 쉭쉭 소리, 나를 바라보던 눈빛.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해결되었다 생각했는데.

이토록 무서운 것이었구나.

생각하면 살이 부르르 떨리는 그 기억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맞았던 그 기억들.


젊은 날의 아빠, 혈기 왕성한 아빠, 음악 밖에 모르던 아빠는 아마도 그게 사랑이라 믿었을 것이다.

철창 속에 있다 영문 모를 주사를 맞으러 가는 동주의 마음은 어땠을까.
30년도 넘은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도 이렇게 소스라치게 되는데 어제 맞은 주사를 오늘 또 맞으러 가는 그 길, 그 발걸음은 어땠을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떠났다는 부끄럽던 그 사나이는 마지막 눈을 감으며 마음속에 쉽게 쓰이는 시 한 줄 더 남겼을까.
모가지를 드리우던 그날 부디 잠시나마 행복했기를.
부끄럽지 않아 졌기를.

젊은 날의 아빠, 묻어두었던 기억이 갑자기 열린 날의 나,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가던 날의 동주, 마지막 순간의 동주.

가엾은 사람들.


사랑받고 싶었다.

따스한 눈빛으로 누군가 안아주었으면 했다.

잘했어, 괜찮아, 예뻐, 사랑스러워, 그 정도면 정말 훌륭해, 애썼다, 고마워.

너무나 듣고 싶었던 말.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말.


나는 다른 어른이 되어야겠다 다짐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들을 더 많이,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날.

결핍이 또 다른 결핍을 낳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 날.


내 안의 아픈 감각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되어 다행이다.

그래, 참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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