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내게 선물한 것들
암진단 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중 가장 많이 변한 건 아침에 일어날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다.
예전엔 알람을 끄고 또 끄면서 '일어나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네. 5분만 더..'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알람을 여러 개 맞춰두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아침.
그리고 바삐 가족의 아침을 준비하며 그날 하루에 있을 일정을 머릿속으로 훑었다.
운전해서 가야 할 동선도 체크했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6번 국도가 집 앞 골목처럼 느껴지는 일상이었다.
요즘에는 일어나면 '살아있구나!'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 어젯밤 숨이 멎었을 수도 있는 삶.
새로이 맞이하는 아침에 감사한다. 내게 하루가 또 주어졌다면 오늘도 책임이 맡겨진 삶이 선물로 온 것임을 기억한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아침을 챙겨 먹고, 아이의 등교를 챙기고, 성경을 읽는다. 죽음을 곁에 두며 살다 보니 성경의 구절들에 조금 더 가까이 닿는 느낌이다.
당대 의인으로 인정받은 욥에게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고난이 닥친 것이 왜 그에게 복이었는지를, 왜 그 상황들이 그가 믿었던 신의 배신이 아닌 사랑이었는지를 피부로 느껴간다.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의 등을 보며 하는 생각은 '참 예쁘다, 사랑스럽다, 우리 아들'이다.
살아있어 줘서,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우리 아이들.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말로도 자주 지금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려 한다. 서로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결코 나눌 수 없을 시간이기에.
얼마 전 둘째의 에세이 노트(학교 숙제)를 보던 중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좋다. 엄마는 나를 보며 늘 웃어주신다. 사랑한다고도 자주 말씀해 주신다. 그래서 좋다.'라는 글을 읽었다. 아이도 나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했다.
남편을 보면서도 '듬직하고 멋진 우리 남편'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아프기 전에는 불만도 많이 가졌었다. 조금만 더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는 마음들.
하지만 함께 이 시기를 지나며 고생하는 남편의 등을 보면 짠하고 고맙다. 듬직하게 곁을 지켜주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듬는 남편이 멋지다.
참으로 싫어했던 나의 몸과, 마음에 들지 않던 얼굴도 이제는 좋다.
살아있어서 마주할 수 있는 나.
나를 보며 부족한 부분만 생각했던 지난날을 떠나보내고 이제는 '이 정도면 너무 멋져, 잘하고 있어, 훌륭해!'라고 속으로 말해준다.
그러고 보면 내게 찾아온 아픔은 정말로 큰 선물이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기 마련이고, 제일 힘든 것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감사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꾹꾹 눌러가며 살고 싶다. 이 귀한 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