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내 몸에게
안녕, 2020년 겨울의 내 몸아.
쉴 새 없이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지?
아마 오늘도 아침 일찍 알람 여러 개를 끄고 또 끄고 하다 도저히 안 되겠을 때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겨우 몸을 일으켰겠지.
아이들 먹을 주먹밥을 싸두고 정작 너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부랴부랴 차 키를 챙겨서 나갔을 거야.
시동을 걸고 떠나려다가 마스크를 두고 온 것이 기억나 서둘러 집에 올라갔다가 잠든 아이들과 남편의 얼굴을 한 번 더 봤겠지.
운전을 하면서 빨간 불이 들어올 때마다 멈춰서 화장을 하면 강의장 도착 전에는 풀메이크업이 끝나 있었을 거야.
원래 제대로 화장을 할 줄도 몰랐던 네가 차 안에서 풀메이크업이 가능하게 되었다니, 돈이란 뭔지.
코로나가 터지고, 남편이 일하는 곳이 집합금지업종이 되어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보니 없던 능력도 짜내어 살아가게 되었잖아.
감사하게도 큰 기업 연수원에서 강사로 활동을 하게 되었어. 그때는 바이러스가 극성이던 시절이라 연수생들은 집에서 접속을 하고 강사들은 연수원에서 모니터 여러 대와 노트북, 조명들에 둘러싸여 강의를 했어.
화면에 보이는 연수생 분들의 얼굴을 보고 강의를 하면 어김없이 에이전시 회사의 피드백이 날아들었지. 노트북에 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강의를 해야 연수생들이 자기를 보면서 말하는 것 같다고.
노트북 화면에 띄운 피피티도 거의 다 외우고 있어야 카메라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강의를 할 수 있었어.
메이크업도 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던 카메라 앞의 너. 화장을 싫어하던 네가 차 안에서도 풀메이크업이 가능하게 된 시간이었지.
아침 8시부터 강의가 시작되던 날에는 6시 반까지 가서 대기를 했잖아.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고.
세팅을 해두고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가 7시 55분쯤 대기실에 들어와 있는 연수생 분들에게 인사를 했어.
"5분 뒤 줌이 열립니다. 곧 뵐게요!"
줌, 구루미, 비캔버스, 구글밑.. 온갖 비대면 강의툴을 다 섭렵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
4시간 강의 후 잠시 점심 먹으며 숨을 돌리고 다시 오후에 4시간 강의를 했어. 이미 녹초가 되었지만 운전을 하고 바로 H사로 갔겠지?
다음 날 강의 때 쓸 PPT를 그 때야 넘겨받고 네 이야기로 커스터마이징 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잘 수 없었잖아.
그놈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버릴 때도 되었건만, 토씨 하나라도 틀릴까 고치고 또 고치고 하느라 새벽 3시가 되어야 겨우 몸을 누였어.
침대는 포근하고 룸 컨디션은 훌륭했지만 H사 연수원의 딱딱한 분위기가 좀 불편했을 거야.
숙소에서 강의장까지 가려면 엄청 긴 복도를 지나야 했지. 긴장한 상태로 강의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스산한 날씨가 좀 쓸쓸했을지 몰라.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나면 박사 과정 수업을 들었지. 그다음 날엔 수업을 마치자마자 대학교 강의를 했고. 학생과 외래교수 역할을 동시에 하느라 쉽지가 않았어. 2박 3일의 연수를 마치면 얼른 집으로 가서 몸 누일 새도 없이 엉망이 된 부엌을 치우고, 가족들이 먹을 밥을 했잖아. 남편에게 밥 하는 법을 그때 가르쳐줄 걸 그랬어.
그리곤 또 다음 날 알람 여러 개를 끄고, 또 끄고...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지.
안 좋은 피드백을 듣는 게 싫어서 너무 열심히 했던 걸까? 이제 좀 쉬고 싶었던 시기, 에이전시에서는 어느새 '에이스 강사'라며 다음 수업 때 꼭 내가 들어가야 한다고 연락이 왔어.
경제적인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하니 그 말이 싫지만은 않았지만 점점 지쳐갔어.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야.
사실 그때부터 2024년까지는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날이 없잖아. 암진단 후 지난 다이어리를 펼쳐보곤 너무 깜짝 놀랐어. 모든 칸에 일정이 세, 네 개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더라고.
생업 때문만은 아니었어. 학교 학생들이 죽고 싶다고 연락이 오면 달려가서 그 아이를 만나고, 가난하고 젊은 부부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뱃속에서 기형아 판정을 받았을 땐 후원금을 모집하느라 뛰어다니고, 결국 그 아기가 사산됐을 때 같이 장례를 치르고 했지. 보육원, 지역아동센터, 가족센터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갔었잖아.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5년 후에 유방암 진단을 받는단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닐 것 같아.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일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었으니.
돈도 내가 벌어야 가족이 살 수 있고,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죽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살겠다고 하고, 힘들어만 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빛이 조금 새어드는 걸 볼 수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래. 후회하지 말자 지금처럼.
그땐 했어야 한 일을 한 거고, 이젠 그렇게 살다가는 정말로 죽을 수 있으니 멈추게 된 거야.
50이 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몸과 마음을 정비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덕분에 요즘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살아도 괜찮게 되었잖아.
꼭 해야만 하는 일, 긴장해야 하는 일들을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어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만 하게 된 것도 참 감사해.
아침에 일어나서 옆에 누운 강아지를 오래오래 쓰다듬을 수 있고, 아이들에게 느긋하게 아침을 챙겨줄 수 있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첫째, 둘째가 차례로 침대로 와서 조잘조잘 떠들다 나가는 시간은 암이 아니었으면 혼자서는 다시 찾아 누리기 어려운 행복의 시간일 거야.
죽음을 가까이 두고 살게 되니 하루가 더 새롭게 보이지?
아침에 일어나 자연스레 숨을 쉬는 것, 먹고 마시는 것, 어딘가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있는 것, 내가 가족들 곁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 이 모든 게 매일 주어지는 선물임을 늘 기억할 수 있는 기적을 누리고 있잖아.
고생했어 내 몸아. 6차례의 독성항암과 표적항암 치료, 11시간의 긴 수술, 16차례 매일 갔던 방사선 치료를 잘 마친 걸 축하해. 표적항암 치료도 이제 3분의 1이나 왔네.
올해 12월까지 열심히 잘 치료받고, 푹 잘 쉬고, 운동도 열심히 하자. 그리고 내년을 맞이하자.
2026년부터도 치료가 끝났다고 신나게 다시 일하지 말기로 약속해.
지금처럼 하루의 기적을 누리며 할 수 있는 범위를 기억하며 움직이자.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사는 거야.
참, 좋다. 사랑해 내 몸아. 잘 버텨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