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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Apr 10. 2021

어느 날 갑자기,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

또 다른 경계에 서서  |  당뇨병 투병 일기 #에필로그

어느 날, 갑자기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

외할머니부터 엄마, 그리고 이모들 중 당뇨가 아닌 분이 단 한 분도 없었기에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 일이란 것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당뇨는 100% 유전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이후부터.


그런데 이렇게 빨리,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라니!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당뇨인이 될 것이라는 건 사실 이미 오래전 예견된 일이었고, 이미 어떤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책을 읽다 보기 싫은 부분이 나오면 표시를 해놓고 책을 덮어버리듯이, 하지만 거기에 표시를 해두고 덮었다는 것을 기억은 알고 있듯이, 어렴풋이 다가오는 그 병을 무시하고 싶어서 애써 지워버렸었다.


첫 전조 증상은 첫째 임신 때였다.

모든 임신 검사에서 다 재검이 뜨던 시절.

분명히 임신인 것을 확인하고 내 눈으로 확인까지 했었는데, 출산하러 옮긴 병원에서는 아기집에 아기가 없다고 했다. 지금 이 상태면 70% 이상 유산이라고, 당신은 지금 감기에 걸린 거예요. 정도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던 산부인과 의사. 바로 수술 날짜를 잡던지 피검사를 해놓고 다음 주에 다시 수치를 보고 잡던지 하라고 했었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주말을 보내고 수술을 잘한다는 큰 병원에 옮겨가 수술 날짜를 잡기 전 마지막으로 초음파 검사를 했었다. 

감사하게도 아기의 건강한 심장소리를 들은 후에는 도저히 다른 병원에 갈 수 없어 계속 그 큰 병원에 머물렀는데, 그 병원의 더 불친절한 의사는 검진을 갈 때마다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학생주임 선생님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엄마, 얼굴이 너무 이상해서 왔네? 
엄마, 그렇게 살이 찌면 임신 중독 오는 거 몰라요?


일반 검진 때도 치켜뜨던 그 눈은 당뇨 재검이 뜨자 더 무섭게 변했다.

임신성 당뇨가 되면 출산 후에도 당뇨 환자가 된다고, 식단 관리를 하고 다시 오라던 그 말이 어찌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김 빠지고 식은, 환타의 스무 배쯤 단 시약을 마시고 1시간에 한 번씩 피를 뽑던 날.. 제발 당뇨만은 아니길 기도했다.

외가댁 모두가 고생하고 있는 그 병에 걸리고 싶지 않았다.

간당간당하지만 당뇨까지는 아니라고, 앞으로 조심하라고.. 그 무서운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그분의 말을 유의 깊게 들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냥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또다시 책장을 덮어 놓고 살았다.


둘째를 임신하고도 또 당뇨 재검이 떴다.

그때는 정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일주일 열심히 식단 관리를 하고, 한 시간 이상 씩 걷고 나니 다시 한번 간당간당한 수치로 임신성 당뇨를 비껴갔다.

그런데, 그건 그저 비껴간 것이었을 뿐.. 관리를 했기 때문일 뿐..

그때부터 나는 이미 당뇨환자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 같다.


당뇨병을 막을 마지막 기회는 발수술을 하러 입원했을 때였던 듯하다.

수술 전 기본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는데, 문제가 조금 있는 것 같다며 당뇨 검사를 해보겠냐 했다.

어차피 곧 내과 검진이 있으니 그때 하겠다고 하고 퇴원하고는 또 몇 년을 흘려보냈다.


내가 당뇨인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날은 정말 황당한 상황 속에 찾아왔다.

나에겐 심한 화상으로 인해 계속 재건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랑하는 동생이자 딸 같은 동생이 있다.

이식 피부로 인해 정맥마취가 어려워 잠시 잠을 재운 후 국소 마취로 수술을 해야 하는 내 동생.

정신이 든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하기에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도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처럼 파란 수술 가운을 입고 동생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코로나가 찾아오기 한참 전이기에 가능했던.. 생각해보면 그 날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더 심각한 상황이었을 감사했던 날.


언니 괜찮아요??


놀란 동생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간호사 선생님이 당황한 눈초리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동생의 손을 잡아주며 마음 아파하던 중 갑자기 아득해지며 온 세상이 하얀 상태에서 빙글빙글 돌길래, 안돼! 지금은 안돼. 여기서는 쓰러지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정신을 붙들었는데, 결국엔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본인이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동생의 목소리가 속상했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 한 번, 한국에 돌아와서 세 번.

이 날 이후 또 한 번.

아득히 쓰러진 날들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 날 그 수술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수술받는 동생을 보다 너무 놀라서 쓰러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 이전에도 손을 잡아준 적이 있었기에 그 이유는 아닐 것이었다.

이전에 몇 번 쓰러졌을 때는 혼자 있을 때였기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혼자 추슬렀으나 이렇게 만천하에 쓰러지는 증상이 공개가 되어버렸으니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수술받는 동생 옆 간이침대에 누워 같이 쉬다 나온 민망한 그 날 이후,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 날을 잡았다.


한 가지 좋은 소식과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무엇부터 들으실래요?



아버지가 관상동맥우회술을 받으신 전력이 있기에 혈관 질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며 선생님 앞에 앉았다.

좋은 소식과 안 좋은 소식이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시는 건지.

불치병에 걸린 것일까?


좋은 소식은 혈관과 뇌, 심장은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고,

안 좋은 소식은..여기 빨간 숫자 보이시죠? 본인 공복혈당 수치예요. 수치가 지금 너무 높습니다.



이렇게 그 날로 당뇨병 환자가 되었다.

다행히도, 불치병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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