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그 풍미에 대하여

by 지한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이 말만큼 나의 시가 생활을 말하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나의 (훌륭한) 위스키 스승은 시가에 럼을 찍어 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한번 한모금 해볼래? 라고 했던 시작은 지금의 헤비 스모커 나를 탄생 시켰다. (그리고 내 스승은 시가가 독하다고 그만 두었다.) 맨 처음 핀 시가 맛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위에 부담이 없단 이유로 아니면 양질의 니코틴이 내 몸을 중독 시켰던 이제는 시가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맨 처음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담배잎을 말아 피는 사람을 발견하고 난 다음 100년동안 스페인에서 독점적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된 시가는 유럽 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었고 1817년 스페인이 쿠바에 자율 생산을 허락하자마자 시가의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특히 영국의 상류층 남성들이 시가의 가장 큰 소비자였는데 그들은 시가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사교의 장으로 삼기도 하고 비지니스의 장으로 삼기도 하였다.


쿠바의 시가는 시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도 양질의 시가를 만드는 곳으로 대우받고 있지만 시가 공장의 국영화와 쿠바 혁명 등 여러 사회적 변혁기를 겪으면서 불안정한 사회 환경과 박해를 피해 쿠바의 시가 전문가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하여 시가를 만들게 되었다. 현대에는 쿠바 뿐 아니라 도미니카 니카라과 등 남미와 미국 심지어 동남아시아까지 시가용 담배잎은 여러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시가는 담배잎이 자란곳이 아니라 시가가 만들어진 곳을 기준으로 원산지를 정한다.


상류층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시가는 남성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19세기의 유럽의 쿠바 여행책자에는 유럽 사람들의 편견이 어땠는지 잘 대변하고 있다. 아리따운 여성이 시가를 물고 거리를 거닌다. 특히 식민지 팽창과 더불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크리오요라는 원주민 혼혈이 등장했는데 아리따운 크리오요가 입에는 시가를 물고 손으로는 담배를 만다. 낯 선 세계에서 온 낯 선 - 그러나 순종적인 - 여자. 그리고 그 처자가 말아 만든 시가. 그 이미지는 오랫동안 남성의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고 시가의 생산자들은 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세일즈해왔다. 괜히 비제의 오페라에 나오는 카르멘이 세비야의 담배 여공으로서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가진게 아닌것이다.


맨 처음 나에게 시가 피는 법을 알려주었던 모 대표님은 시가를 쥐는 법을 설명해주며 시가 밴드를 꼭 가려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시가 밴드를 가려 상대에게 내가 어떤 시가를 피고 있는지 알리지 않음으로서 비지니스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상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시가 밴드에는 피고 있는 시가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담고 있는데 시가 맛으로 원산지를 가려내는 것은 19세기 영국의 상류층 남성에게는 중요한 미덕이었다. 시가는 남성을 상징하는 그 자체인 물건인것이다.


그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듯 지노 다비도프는 시가를 필때 지켜야할 매너에 대해서 정리해두었다. 일할 때 피지 말 것. 니코틴 중독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시가와 시가 사이에는 15분의 텀을 둘 것. 반 이상 태우지 말것. 시가를 비벼끄지 말것... 등등 상당히 많은 항목의 조건들을 이야기했다. 물론 나는 일할때 가장 많이 피고 반 이상 태우기도 하며 가끔 삶이 힘들때는 줄시가를 태우기도 한다. 매너는 신사를 만들지만 시가를 대하는 편한 마음은 시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19세기 사람들은 크리오요보다 더 낯설고 (그래서 어쩌면 더 미개한 것으로 취급받았던) 동양의 여성의 손에서 피워질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시가가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니코틴의 중독성 역시 피할 수 없었겠지만 피우면 피울수록 다양한 맛을 내는 그 특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볶은 커피콩과 가죽 냄새가 나는 가벼운 담배잎부터 다크 초콜렛 풀로스팅한 커피 향을 내는 무거운 담배까지 다양한 맛과 아로마는 시가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시가 생산 업체들은 시가의 맛과 다양한 향을 위해 다양한 산지의 담배잎을 다양하게 블랜딩하곤 한다. 처음 태울때 나중에 태울때 거의 다 태웠을때 - 얼마나 태웠냐에 따라서 시가는 각기 다른 맛을 낸다. 그런면에서 시가는 와인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마 그런면이 나를 헤비 스모커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물건에는 사족을 못 쓰는 면이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시가를 태우는 여성은 나는 자주 보지 못했다. 아마 시가의 접근성이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한 장소에서 오래 태워야 하는 점이 여성 흡연 인구가 늘고 있는 요즘에도 그 불편함으로 외면받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건강을 해치는 것이기에 썩 권유할만한 취미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맛과 블랜디드 그리고 양질의 퀄리티로 오랜 시간 사랑받았던 그 낭만을 느끼는 것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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