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타는듯한 행복
나는 술을 좋아한다. 여자가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 약간 제정신이 아니거나 방탕하거나 경박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생각대로 정말 그런 사람이지만) 어쨌든 나는 숨김없이 말한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특히 위스키를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같은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온다! 같은 술이라도 햇수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맛이 나온다! 그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재미로 나는 계속 주정뱅이를 자처하게 되었다.
가장 많이 마셨던 술은 와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와인은 병으로 전부 마셔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결국은 위스키를 제일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 와인은 병을 따는 순간 미생물이 번식해 맛이 변하기 시작한다. (보통 와인이 열린다고 표현한다 - 열리는게 지나면 상하기 시작하고.) 그에 비해서 위스키는 40도가 넘는 술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미생물이 번식 할 수 없는 환경인 탓에 한병을 두고 언제든지 홀짝홀짝 마실수 있다는 점으로 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잭 스패로우가 항해때마다 챙겨 다녔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때는 코퍼독을 살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높은 세율로 위스키의 금액이 올라 위기였던 시절 밀수꾼들이 증류소가 많은 스코틀랜드로 모여들자 위스키 증류소의 근무자들이 조금씩 빼돌려 술을 담던 '코퍼독 디퍼'라는 기구의 줄임말로서 이 기구는 구리로 만든 작은 튜브인데 밀주의 시대가 아닌 현대의 쓰임은 증류소에서 일하는 근무자들의 시음을 위해서지만 지금은 아마존에서 밖에서도 홀짝이고 싶어하는 나같은 주정뱅이들을 위해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만두고 말았다. 그 선을 넘으면 주정뱅이가 아니라 알콜 중독자로 부르는게 맞지 않을까? 라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위스키 이 친구는 스코틀랜드 안에서도 각기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다른 맛으로 사람들을 홀리더니 결국은 바다를 건너 대만, 일본 등지에서도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했다. 물론 종주국 답게 스카치 위스키의 종류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아시아에서도 카발란, 야마자키, 타케츠루 등 다양한 맛과 매력의 위스키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특히 20세기 초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일본에서는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술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지금은 상상을 뛰어넘는 가격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곤 한다.
내가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할때는 중년의 남성이 즐긴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요새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것 같다. 관세청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위스키 수입액은 약 2억 6천만 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약 두배나 증가했다. 통계청은 그 원인을 젊은 사람들이 위스키에 소다를 섞어 마시는 '하이볼'의 유행에 기인했다 분석 하였으니 이제는 아저씨의 술이 아닌 모두의 술.바야흐로 시대는 위스키 전성시대가 아닌가 싶다.
밀주의 시대에도 누군가는 만들어 마셨고 높은 세율에도 굴하지 않고 밀수꾼들을 불러 모았으며 한참 전쟁중인 조국에서도 만들기를 멈추지 않은 위스키는 물에 타서 미즈와리로 마시기도 하고 소다에 타서 하이볼로 마시기도 하고 그냥 잔에 담아 니트로 마시기도 하고 큰 얼음이 담긴 잔에 부어 온더락으로 마시기도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위스키, 이 친구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것이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화끈하고 달달한 풍미. 코끝을 스치는 약간의 스파이시함과 그 뒤로 따라오는 진한 단맛. 내가 맨 처음 마신 위스키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기도 한 글렌 파클라스 105. 그 뒤로도 아주 많은 위스키를 마셔봤지만 누군가 무슨 위스키를 제일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맨 처음 마신 위스키를 말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글렌 파클라스 105는 CS 종류의 위스키였는데 위스키는 도수를 조절하기 위해서 물을 섞어 만드는데 CS라고 불리는 친구는 물을 타지 않고 원액 그대로 시장에 내보낸다. 그러기에 보통의 위스키보다 도수가 높으며 풍미는 아주 진하다. 위스키의 세계에 빠지게 만든 술이 CS라니! 나의 주정뱅이의 미래를 예견한 신의 계시가 아니었나 지금와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훌륭한 주정뱅이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환경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운이 좋게도, 나에게는 동네의 작은 좋은 위스키를 파는 술집이 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었다. 회사에서 화나는 일이 있으면 평소와는 다른 스모키한 향이 나는 라가불린을 마시고 기분이 좋은 날에는 꿀맛이 나는 맥켈란 18년을 마셨다.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내가 속한 환경이 변하는 그 순간에도 꾸준함으로 위스키 한잔은 그 자리에서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술 한잔에 거창하게 이야기를 붙인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위스키는 세상을 보는 눈도 넓혀주었다. 내가 위스키를 맨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 내가 자주 가던 가게 사장님은 야마자키를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로 꼽았다. '왜 일본 위스키를 마시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일본 위스키는 일본에서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 미즈와리로 먹는 아저씨들의 술이었다. 어떻게보면 마시기 편하지만 반대로 그 만큼 개성도 두드러지지 않는, 가게 사장님의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자주 마시는 위스키는 한병에 5만원 정도 하는 저렴한 일본 위스키이다. 내가 위스키에 대해 더 많이 알게되면 알게될수록 위스키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술이라고 해도 햇수에 따라서 내가 잘 아는 그 맛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반대로 내가 싫어하는 위스키라고 해도 햇수에 따라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 내가 좋아하는 맛을 선사해주는 경험도 주며 편견과 고집에 가득한 나에게 어떤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 한번쯤은 아 그럴수도 있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게 도와주었다.
물론 아직 위스키 만큼 다양한 면모를 가진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싶냐고 물으면... 글쎄.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나는 주정뱅이로서 또 누군가에게 위스키 한잔을 권유하며 말 없이 일단 마시라는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 정도의 사람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위스키와 함께 위로를 건넬 것이다. 아. 일단 위스키 한 잔 하자. 누군가 나에게 주정뱅이라고 해도 좋다. 이 한잔을 위해 나는 오늘도 열심히 힘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