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결국은 스스로마저 소비하게 만든다.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알 수 없게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얼굴을 기웃거리고 있다.
퍼스널 브랜딩. 그러니까 스스로를 브랜드화하여 판매하는.
그러니까 '네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따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현실이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스스로 조차 하나의 자본의 객체로 만듦으로써 남에게 소비당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리얼리티나 SNS 등으로 남을 소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자신조차 '팔리지' 않으면 아니 정확히는 '팔리게' 만들려는 그 시도는 글쎄. 사실 난 잘 모르겠다.
일단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이 정말 나의 자아와 부합하는 일인가부터가 의문이다.
나를 소비하는 객체로 만든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남들에게 소비당하기 쉬운 자아만 보여줘야 한다는 말과 같다. 퍼스널 브랜딩. 말로 하자면 남에게 소비당하는 게 목적인 것인데 내가 얼마나 소비하기 좋은 콘텐츠인지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 안에서 나의 진정한 자아가 성립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이 남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나 자신이라는 우주조차 알기 쉽지 않지 않은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로 다르고 - 하다못해 한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도 다르다. 하지만 퍼스널 브랜딩은 나의 이미지를 '현재'의 내가 선택한 몇 개의 키워드에 묶어둔다.
사실상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고 -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선택과 집중을 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사람에게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이 가능성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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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딩이란 단어는 생소할지 몰라도 사실상 자기 PR 시대라는 단어가 약간의 진화를 겪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은 90년대 이후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다른 단어로 포장하면서 까지 그 단어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전에 비해서 내가 소비당하는 것이 격렬하게 돈과 명성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비대해진 자아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 반백년도 되지 않았는데 (셀피, 윌 스토, 글항아리 :2021) 그 단어는 세계 여기저기서 이미 절대적인 가치로 존중받고 있다. 비대해진 자아와 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가 만나서 만들어낸 단어. 퍼스널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나 - 남들과는 다른 나를 기술의 발전으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고 그걸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되니 너도 나도 뛰어드는. 말 그대로 거대한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괴물 그 자체 아닌가.
그 와중에 소외당하는 개인을 생각해 본다.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것은 끝없는 성찰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깊게 깨닫음을 얻거나 아니면 엄청난 인풋을 통해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는 스스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생각한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가 쉽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전자는 수많은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지만 후자는 돈만 있으면 웬만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정된 자원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좋은 것일까? 어디 산골짜리라도 들어가서 스스로 자급자족을 하는 것을 콘텐츠로 만들거나 수행자의 해탈 브이로그라도 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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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퍼스널 브랜딩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상자 속에 구겨 넣듯이 몇 개의 단어에 나를 욱여넣고 꾸미는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성찰하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은 사람에게는 퍼스널 브랜딩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데 굳이 그것을 몇 개의 단어로 정의할 필요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 없는 퍼스널 브랜딩을 비판할 뿐이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자아를 전시해서 남는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