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은 복을 받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복질 복대로 산다”라는 말과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잊을 만하면 들어서인지, 결국 복을 받는 사람은 착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살아보니 내가 착하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나는 그저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한 나의 권리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개인주의 자기 때문이다. 때문에 냉소적인 면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래서 수정하기로 했다. 그냥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한, 내 식대로 살면 내 식대로 살아지는 것으로.
진리 혹은 본질이라고 믿는 모든 것에는 늘 예외가 따른다. “착한 사람은 복 받는다” 혹은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라는 본질적이며 고루한 혹은 권선징악적인 면이 있는 이야기를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와도 유사할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는 늘 예외를 가지고 있고, 너무나 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론 제기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을까?라는 질문에 “착하게 산 저 사람은 아프기도 하고, 병이 들어 일찍 하늘나라로 갔다”라는 답을 들으면 혹자는 “나쁜 짓 한 사람이 더 잘 살더라” 하는 이야기를 장단 맞출 것이다. 이는 “공공기록은 중요하다”라는 원칙적인 이야기에도 이러한 예가 유사하게 적용된다. “생산되는 기록물 중에 000 신청서나 서무 일반” 같은 중요하지 않는 기록물만 있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기록물은 10%도 안된다.라는 말이나 "기록물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감사에 덜 지적된다 "라는 말로 장단이 맞춰질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세상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기록을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누는 것 또한 어렵다. 나쁜 사람을 만나면 무찌르겠다는 7살 난 내 아이에게 “나쁜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또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이었다. 중요한 기록 중요하지 않는 기록을 7살 난 내 아이처럼 무 자르듯 나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이의 답이 아이스러운 것처럼 이 두 가지 가치는 단번에 말하기 곤란하다.
때문에 나는 신적인 능력을 발휘해 우리 기관의 모든 기록을 단번에 나누고 분류해서 보존하거나 폐기하지 못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기록을 요리보고, 저리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하곤 한다. 오히려 초창기 내가 했던 기록에 대한 확신범적인 소행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울 수 있다.
기록은 왜 중요할까?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더 쉬워 보이는 나쁜 쪽으로 가기 쉬운 내 마음과 같은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고민은 요즘 들어 “기록은 중요하다는 것”이라는 나의 본질적인 생각에 예외적인 상황이 많아서 그럴 수 있다.
자 그럼 이 글을 쓰게 된 배경과 본질의 중요성, 이런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말했다. 듣는 사람 피곤하게 할 정도다. 그럼 이제 본론에 들어가 보자.
“기록은 왜 중요한가?”
기록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해 준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질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논란거리를 잠재우게 하고 서로 간의 분쟁을 막아준다. 또한 “사실” 이나 “진실” 앞에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하여 토론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주장과 억측에 의한 시대를 종식시키게 하고 사실과 진실에 기반을 둔 건설적인 미래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건설적인 토론으로 맺은 결말은 각자의 마음에 억울함이 없게 하고 그 결말로, 더 나은 것을 창조하게 한다.
문익점 선생님을 예로 들어보자. 나는 지금까지 문익점 선생님이 목화씨를 중국에서 관헌의 눈을 피해 몰래 들어와 재배에 성공, 우리나라에 의류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위인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일부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부분이 있다. 목화씨를 들여온 사람은 문익점 선생님이 맞다. 그러나 이 당시 중국에서는 목화씨 반출을 엄격히 금지하지 않았다. 토양이 달라 우리나라에서는 잘 재배되지 않아 가져 가 봤자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설도 있지만 조선왕조실록(태조실록 7년 6월 13일)에 따르면 “길가에 목면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라고 되어있다. 또한 그 씨 10개 중 반을 장인인 정천익에게 주어 나눠 심었는데 정천익의 씨 하나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 하나의 씨를 통해 목화를 전파했으며 베 짜는 기술은 중국사람 “홍원”이 가르쳐주었고 이것을 실행한 사람은 장인(정천익)의 여종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통해 알 수 있는 그동안의 나의 오해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의 오해는 무엇일까? 물론 이 이야기를 나만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이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다만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에서 나온 문익점 선생님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나 외 많은 어린이들이 그 시절 문익점과 목화씨 이야기를 나와 같은 책을 봤다면 오해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문익점의 목화씨로 인한 의류 혁명(?)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잊고 사는 것이다.
자, 기록이 이러하다면 앞으로 문익점과 목화씨의 토론은 달라야 한다. 문익점 선생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에 기반한 토론이 시작되어야 더 건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관리를 더하는 것은 이러한 진실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다. 기록이 생산된 후 온전하게 보존되고 전승되도록 하는 것, 그것을 기록관리라 하며 이러한 노력으로 또 다른 창조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공공의 영역에서 의무적으로 기록을 관리하는 연구사들을 배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얽힌 공공기록에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알아야 할 기록이 부재하거나 진실이 훼손되는 등의 관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 복질 복대로(복을 지으면 복을 받는다) 산다는 말을 여전히 믿는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나름의 해석으로 지내오고 있지만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기록관리도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일에 짓눌린 사람들의 반론 제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은 사실을 증명하는 유일무이 한 대체수단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기록관리의 중요성 및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공력에 들어가는 수많은 자원과 노력들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기억할 때 좋은 혹은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 전에 우선 사람이 귀하다는 것을 내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과 중요한 혹은 중요하지 않은 기록을 구별하기 전에 기록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