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해봅니다. ver 20's
‘생각’이라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의 생각과 사상, 가치관들이 모조리 다 뽑힌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누가 그렇게 내 생각을 앗아갔는지 원망하고 싶지만 소용없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생각을 포기하라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20살 때 남들과는 다른 스무 살을 영위하고 있다는 조급한 마음부터가 ‘생각 없음’ 모드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눈앞의 풍경에 정신이 아늑했습니다. 종교색이 강한 학교와 통학이 불가능한 거리, 생경한 첫 경험들은 제 정신적인 운신의 폭을 좁혀놨습니다. 결국 저는 '이 곳을 탈출해야 겠다'는 미명 아래 저의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묵인했습니다. 대신 생각의 역할과 임무는 TV나 인터넷에 맡겨놨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저는 그들이 해주는 얘기에 중독돼버렸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습관이 되버리니 이제와 다시 ‘생각 기능’ 버튼을 찾아 힘껏 눌러도 반응이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이라는 놈도 제 얄팍한 수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작 좀 해볼걸.’ 후회하면 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는 오늘도 연전연패 중입니다. 힘들지만 조금 힘들지 라도 먹통인 생각 버튼을 연타해 일으켜야 합니다. 서른을 목전에 둔 사람으로서 생각의 부재가 주는 공백이 저 자신을 모조리 잊어버릴 것 같아 그렇습니다. 줄기를 잃어버린 식물에게 탐스러운 열매가 생기는 것이,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요.
제 안의 ‘생각의 심지’를 곧게 새우는 일이 하루 이틀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맥없이 흘러온 세월만큼 어쩌면 그것에 곱절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중간중간 불어오는 모진 풍파에 과거처럼 다시 꺾어져 마음 깊은 곳에 방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생각'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을 겁니다. 또 '생각'이 마음속 한구석에 차지해 있다면 계속해서 제 스스로를 가책하겠습니다.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