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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

by 김병장병장

타로에 빠졌다. 새벽녘마다 와인 한잔을 '홀짝홀짝' 혹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면서 유튜브로 타로점을 그렇게 본다. 대게 주제는 나와 관련된 타인의 생각을 점쳐보는 것. 혹은 내 미래를 예측하는 걸로 쏠려있다. 혹할만한 게 대답들로 나온다. 아주 흥미로운 것. 화면 속 이름 모를 사람들은 생전 일면식도 없는 나와 상대의 관계에 대해 또는 현재 내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토록 바라면서 상상했던 모습들을 퍼즐 맞추듯이 맞추면서 읊어나간다. 나의 생각들로 점철된 편협된 시각일 수 있지만, 좁은 속으로 그간 확신했던 것들을 대입하며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속으로 '어어??'를 외치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신점을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접신돼서 쾌도난마를 실행하는 무속인들처럼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봤던 신전 속 무녀들이 신들에 빙의돼서 주인공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처럼 타로마스터들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간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나도 버둥거리며 답을 찾아본다.


원래 타로 같은 것에 관심은 없었다. 나같이 의심 많은 사람이 누군가가 카드를 섞고, 그 카드를 몇 장씩 뽑아 뒤집어서 나온 그림을 보고 해석하는 걸 믿을 리가 만무했다. 나란 인간이 사람에게 정이 많아 한번 신뢰하면 믿고 의지해 모든 걸 내어주는 멍청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니, 대면하고 있는 것도 아닌 유튜브 영상 속 누군지 모를 사람의 타로점괘를 집중해 들으며 의지할 사람은 아니었다. 취업이 되지 않아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때도 영적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았다. 세상만사 모든 일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들로 해석 가능하다고 믿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처럼 말이다. 물론 감성의 영역 혹은 그 너머의 어떤 게 있을 거라고 막연히 떠올려 본 적은 있다. 허나 그런 것들이 내 옆을 따라 걸으며 함께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다. 나와는 안 어울리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걸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고선 어리석게 봤다. '너무 터무니없는 것 아닌가?', '왜 저런 걸 믿고, 안심하고 나아가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까?' 돌이켜 보면 나는 알게 모르게 이들을 순진하다고 여기고 무시했던 것 같다.


근데 빠져보니 알겠다. 여기에 집중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과연 이들이라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에서 힘을 주고 있는 대부분이 이성과 합리 그리고 냉정함같은 것들인 줄 모를까. 우연은 말 그대로 우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차디찬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타로나 점괘 그리고 막연한 무언가를 믿는 사람들도 아마 대부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한번 희망을 찾아보는 것.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이미 지나갔다고 얘기하고, 본인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바람을 타로마스터의 입으로 들여다보는 것 말이다. 모두들 사연은 다를 것이다. 허나 끝은 다 똑같다. 희망, 바람 그리고 기대를 그려보는 것. 이제와 보니 내가 무시한 것이 이런 지극한 마음을 가볍게 여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간절한 무언가를 한없이 가볍게, 가엾게 여긴 것 같다. 이런 말은 우습지만, 당해보니 알겠다. 비슷한 곳에 서보니 알겠다. 그래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한다고 누군가는 얘기했다. 이런저런 일들 때문일까. 배우는 게 참 많은 요즘이다.


열두 시 넘은 시간, 어김없이 유튜브 알고리즘은 타로 영상을 가져다준다. 2번... 3번... 1번... 오늘은 맘에 드는 해석이 나오질 않는다. 이쯤 되면 타로 점괘가 무슨 의미인가 싶다. 새벽이 길 것 같다. 그래도 나를 마냥 우습게 보지 마시라. 그만큼 고민할 게 많은 것이라 생각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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