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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풍선

by 김병장병장

나는 가끔 내가 물풍선 같을 때가 있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들면 품고 있는 물을 쏟아내는 물풍선처럼 나도 어떤 이의 말 한마디에 혹은 어떤 반응들 하나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또 물풍선의 물이 너무 가득 차면 풍선의 입을 쪼매고 묶는 것조차 힘들어 안에 담겨 있는 물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처럼 나도 눈가에 눈물이 한없이 고여 고개를 뒤로 젖히고 손가락으로 눈꼬리를 아무리 매만져도 결국 중력에 이끌려 눈물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질 때가 있다.


이뿐 만일까. 물풍선이 가시에 찔려 터지면서 물을 뿜을 때 풍선 표면이 순간 잔뜩 움츠리고 찌푸리는 것처럼 나도 사정없이 얼굴 구겨가며 미운 모습을 보여주며 오열할 때가 있다. 미운 모습 숨기려 숨기려 애써봐도 터지기 직전 물풍선처럼 한번 시작된 쿡하고 찔려오는 느낌에 그러니까 그 서러움과 서운함 그리고 아쉬움과 약간의 분노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쩜 이리 물풍선 같을 때가 있다.


누구나 얼굴에 물풍선 하나씩 지니고 살고 있는 걸까. 나만 이런 건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보이는 저 커플도, 억척같이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 엄마도 그리고 이젠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이 안나는 골방 속 눈이 잘 안보이시던 우리 할아버지도 이렇게 살았던 걸까.





p.s .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많다는 것. 내가 보고 느끼는 것에 표면적이 늘어나 예기치 않게 어쩌면 원치 않게 감수성이 풍부해진다는 것. 그래서 물풍선 같은 내가 나만이 아니라는 걸 느낀다는 것. 그래서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물풍선 같을 때가 있나 보다'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 쏜살같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느끼는 것 중 몇 안 되는 안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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