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금명이
'뭐 볼까' 하다가... 광고에 떡하니 나온 넷플릭스 시리즈에 눈길이 갔다. 예전에 촬영한다고 얘기를 듣고 나서 ’ 오 재밌겠다 ‘ 하고 기억 속에 남겨두었던 그 작품、 “폭삭 속았수다”。 볼 거 뭐 있을까 이리저리 기웃대던、 시청각 유목민이었던 내 눈길을 사로잡고 기억을 일깨웠던 그 작품이 선택을 받아 그렇게 12부, 그러니까 3막까지 폭삭 빠져 그날 내 새벽을 지켜줬다。
드라마를 몰아치게 봐서 그런 걸까、쉴 틈 없이 이어지는 애순과 관식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그들의 사랑얘기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런데 두 아름다운 남녀의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애절한 이야기들을 제치고 나의 두 눈에 하염없이 눈물방울을 맺히게 한 건 바로 동명이와의 이별이다. 동명이와 가족들이 겪은 허무한 이별은 내 인생에 와닿은 적 없지만、무지로 맺힌 공감은 떠나갈 줄을 모르고 눈물방울로 이어져 버렸다。
우리 집도 동명이가 있었다. 아니, 바른말로 하자면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동명이가 있었다. 이름도 모를, 그러니까 이제와 그 아이의 태명, 이름을 부르기도 어색할 동명이、 다시 말해 내 누이가 세상에 잠시 잉태했었다. 우리 누나,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엄마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 아이가、 또 다른 동명이가 여기서는 나지도 못하고 우리 엄마 뱃속에 있다가 떠나갔다. 수십 년 지나 이제와 물어봐도 엄마는 어두운 밤 가로등, 달빛에 기대 엄마 얼굴 반짝이는 눈망울 다 가리고 있어도 ”생각이 안 난다, 그 애가 누군지 모르겠다 “하고 얼버무려 그치고 만다. 우리 집 동명이는 그렇게 무덤도, 기억도 안 난다.
우리 엄마 가슴에 묻혀 드라마처럼 작고 큰 무덤만치도 없는 우리 집 동명이。 내 누이가 요즘은 그렇게 보고 싶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로 풍랑 속에 휩싸여 이리저리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내게、우리 누나가 살아있다면 지금 한껏 기대보고 싶다. 요즘 내 고민들을 한 움큼 집어다가 우리 집 동명이, 내 누나한테 던져놓고 마냥 어리광을 피우고 싶다. 나도 그렇게 장남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하소연하고 싶다. 그러면 여느 집 누나들처럼 시큰둥하며 또는 정색하면서、 갖은 핀잔과 욕설을 내뱉고 꾸짖을지 몰라도 그래도 그 동명이한테 아니, 우리 집 어쩌면 금명이 한테 마냥 그렇게 나 좀 봐달라고 떼쓰고 싶다.
우리 누나、 어쩌면 저기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내 누나. 요즘 내 인생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눈물 속 바다되어 이리저리 흔들려 참 말하고 싶은 게, 묻고 싶은 게 많다. 만약 여기 있었다면 나보다 몇 년이나、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났을 터이니 기대고 싶은 게 참이나 많다. 살아도 살아내도 참 마음 같지 않은 요즘, 없지만 있는 것 같은 너한테 기대고 싶다. 상처받아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최근, 참 우리 집 금명이 같은 동명아 네가 그립다. 근데 없으니, 드라마처럼 훌쩍 떠나간 것도 아니고 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떠나갔으니 말을 참아 삼킨다.
다시 ”폭삭 속았수다“로 돌아가자면 우선 말하고 싶은 건 너무 재밌게 봐서 행복했다는 것이다。 관식이의 순애보 같은 사랑도 금명이와 영범이의 엇갈린 이야기도 참이나 기억에 남아 친한 사람들과 술자리를 가진다면 밤새 꺼내놓고 싶다。 누구나에게 심금을 울릴만한 것들이 가득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다。 이미 너무 유명해서 볼 사람은 다 봤겠지만、안 본 분들이 있다면 꼭 보시라。 나는 동명이에 눈물을 핑 쏟았지만、당신들은 영범에게、관식에게 혹은 금명、은명이에게 마음 한편 내줄 수 있으니 꼭 한번 이 시리즈를 경험하셨으면들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그리워도 할 수 있으니 꼭 한번들 시간을 내 봤으면 한다。 인생에 눈물버튼 하나쯤 있는 게 그리 나쁘진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