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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씁쓸한 맛이 날 때

by 김병장병장

산책로가 많지 않다. 아파트와 빌라로 둘러싸인 곳에서 지내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기시감이 드는 멋들어진 산책 코스가 주변에 없다. 그래서 밤바람을 맞으려면 고작 집 주변에서 조금 더 먼 곳으로 걸어 나가는 정도에서 그친다. 또 다른 아파트 단지나 빌라 밀집지역 정도? 다행스러운 건,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 그곳의 캠퍼스 혹은 운동장 걷는 걸로 산책 코스의 단순함에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밤에 산책을 하러 집 밖을 나설 때마다 아쉬움이 번진다. '아, 근사한 산책할만한 곳이 없나?'


지금 본가에서 산 지 5년이 넘은 지금 위와 같은 질문에 대답은 마땅치가 않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땐 기분 좋은 바람과 살갗에 닿는 서늘한 공기에 이끌려 매번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괜히 쳐다보지도 않던 오르막길을 올라보고, 생경한 빌라촌과 아파트 단지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돌아온 건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고 나서 원하던 게 없어 실망하던 미취학 아동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실망이었다. 헉소리 나는 비탈길 끝에, 고요하다 못해 마치 아포칼립스의 세상이 펼쳐진 듯한 빌라촌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혼잣말로 탐험을 마무리했다.


그러다가 하나가 아쉬운 내 산책코스 한 군데서 사달이 났다. 이로 말할 수 없는 실망감과 두려움 그리고 허무함 등이 씩씩하게 산책로를 걷던 내게 덤벼들었다. 세 번의 약속 중 세 번 모두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 그 사람의 은연중 진실을 확인하고 돌아서던 날, 내 산책리스트 한 곳은 막을 내렸다. 설명하기도 구차하고,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이제는 빛을 바랄 정도의 마치 이미 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그 유치하고도 구질구질한 일이 결국 일을 치렀다. 포기하면 편한 일이었는데, 어리석고 어리숙해 놓을 줄을 모르는 내가 애먼 산책로마저 작살을 낸 일이었다.


그 후로 내 산책 리스트에서 그 길은 사라졌다. 문득 의식하기도 전에 발이 먼저 움직여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길 위에 발을 놓는 순간, 마치 군대 판초우의를 보면 물비리 낸가 떠오르듯 그 비참헀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결국 가까운 횡단보도를 찾아 허겁지겁 길을 건넌다. 사달난 산책 코스에서 할 건 도망치는 것 말고는 없다. 무려 8차선 대로를 건너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신호가 바뀌는 소리와 함께 현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날의 비참했던 기억이 초록불로 바뀌어 이 길에서 저 길 위로 가로지르며 건너는 동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어 조금이나마 희석된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그 비극적인 일은 이제 한 달이 좀 지났다. 애써 외면하고는 있지만, 무의식 속에서나, 우연히, 아니면 피치 못하게 그 길 위를 다시 걸을 때가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무의식이 의식으로, 우연이 필연처럼 바뀌는 순간이 있고, 그럴 때면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길 위에서 이상하게도 씁쓸한 맛이 난다. “하아…” 일부러라도 크게 내뱉는 한숨은 마치 누가 들으라는 듯 터져 나오지만, 그래봤자 잠깐일 뿐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여전히 쓰고, 불쾌하고, 잠깐이나마 우울했던 그 시절의 그림자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한다.


처음엔 그냥 혼잣말처럼 “산책로 하나 조져났네.” 하고 웃어넘겼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쩌면 나 자신한테 던진 자조 섞인 농담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안쓰럽다고 인정해 버리면 그 순간 무너질까 봐, 애써 방패처럼 올려둔 농담 말이다. 처음 겪는 일이라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안 된다. 다만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빌려 짐작해 보면, 언젠가 ‘망각’이라는 친구가 슬며시 와서 나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그 망각과 새로운 설렘이 다시 그 길을 덮어 칠 때까지는, 아마 당분간 그 길 위에서 여전히 씁쓸한 맛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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