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간을 잘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은 입사한 지 둘째 날이다. (사실 아직 계약서를 안 써서 입사라고 말하기도 이상하다. 계약서 질문을 할 타이밍을 못 잡겠다.) 내 입사동기는 이번에도 나까지 3명이고, 저번 회사를 다닐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기 중 나만 여자다. 거기다 우리 팀 상사분들도 다 남자다. 성비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막상 그런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뭔가 더 적응하기 어렵달까...?
동기들은 너무 좋다. 나이는 다 다르지만 '입사동기'라는 이름 하에 대화를 나누기가 좀 더 편하다. 점심시간밖에 따로 얘기할 시간이 없긴 하지만, 회사의 첫인상이나 이전 직장에 대해서도 간간이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회사 비전이나 복지, 수습기간이 끝나도 남아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화도 나누게 됐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다들 능력치가 넘치는데 내가 그걸 못 따라가는 거 같달까... 오늘 업무일지처럼 작성한 글을 보고 더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하나를 배우면 둘 이상 아는 사람들의 모임에 하나를 배우면 하나도 따라가기 버거운 내가 억지로 끼여있는 느낌이었다. 입사 2일 차에 그런 걸 느껴버리다니!
잡플래닛에 지금 회사 리뷰를 보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다'라고 나와있다. 이 말이 어느 정도 맞겠구나 싶은 게, 다들 불필요한 질문은 안 하시고 각자 일만 하신다. 일적으로 대화하는 게 다고, 사적인 질문은 거의 하지 않으신다. 출근한 지 이틀밖에 안됐지만 지금 드는 생각으론 '나만 잘하면 되겠다'만 있다. 상사분들은 누군가 물어보면 하던 일 멈추시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시고, 이미 여러 번 '모르는 건 다 바로바로 물어보시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내향성 98%에 낯가림쟁이인 나는 일단 회사 분위기와 사람에 적응하느라 업무내용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쯤 이런 성격을 타파하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평생의 고민이 될 것 같다.
지금은 회사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공부 중이다. 막 엄청 양이 많다기보단 이걸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기획안을 짤지 상상하다 보면 갑자기 숨이 턱턱 막힌다. 난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정말 모르겠어서 질문도 못할 정도인데, 성과가 바로바로 측정되는 마케터라는 직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심지어 무대 울렁증이 심해서 남들 앞에서 발표도 잘 못하는 나인데. 이틀 사이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냉정하게 말하자면 벌써부터 걱정만 잔뜩이라 효율을 못 내고 있다. 왕복 세 시간 걸리는 출근 시간도 여기에 더해 벌써부터 체력적으로 날 힘들게 만들고 있다.
이전 회사에서 내가 퇴사 의사를 밝히자 상사는 수습 기간이 끝났을 때 나를 회사에 남길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내게 '수습기간'이란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기간'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정규직의 '수습기간'은, 나는 회사와, 회사는 나와 맞춰가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된 걸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상적인 의미는 실현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틀 만에 전형적인 신입사원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도 나를 혼내거나, 내게 꼰대 짓을 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어쨌거나 내일도 출근이다. 얼른 적응하고 싶다. 회사 분위기에도, 그곳의 사람들에게도, 업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