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잔업 없는 INFJ 직장인의 주말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번 주는 주말까지 질질 끌고 온 업무 없이 한가로운 주말을 맞이하게 됐다. 그럼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될 텐데, 막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사실 잔업이 없는 건 내가 할당량을 적게 받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정말 이 소심한 성격은 어디 안 가나 보다. 근데 어떻게 마케터를 하고 있지???
아무튼 어제는 하루 종일 먹고 자고 하는 바람에 예정에 있던 내가 대학생 때부터 활동하던 비영리단체 정기회의도 일정을 착각하여 참여하지 못했다. (정말 죄송했다... 원래 그런 일정은 절대 안 까먹는 편인데 요새 이상하다) 벌써 햇수로 3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그 비영리단체에서 나는 이미 이사회 임원으로 넘어가 있다. 회사에서는 입사 한 달 반차 신입사원이면서 다른 집단에서는 이사회 임원이라니, 어제 잠들기 전 생각하니 참 아이러니했다. 사회적 지위가 집단마다 달라서 적응이 안된달까...? 지금 회사에서 3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차피 스타트업이니 더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대체 지금 내 나이에 이 고민들이 아무리 당연한 거라도 언제쯤 답을 찾을 수 있을는지
요새 내 머릿속 생각을 둘러보면 INFJ의 정신연령은 80세라고 우스갯소리로 나오던 유머글이 점점 사실이 되는 기분이다. 오늘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라는 드라마를 다시 정주행 했는데 거기서 '부생'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부생, 덧없는 인생이라는 뜻이다.
덧없고, 덧없고, 덧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미 몇 번 본 장면이라 별로 와 닿는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볼 때는 저 말이 왜 그렇게 귀에 맴도는지. 나는 이미 나이 차이를 신경 쓰지 않고, 많이 가져봤자 끝까지 가져갈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나를 야,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하고, 최소한의 저축과 통장 쪼개기는 하지만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일 하는 데엔 흥미를 계속 느껴야 할 텐데...! 자꾸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져 큰 일이다. 정말 큰 1이야.
최근 '내게 맞는 회사 유형' 테스트를 해봤는데 내 업무 유형은 '소심한 마케터'로 나왔다. 읽고 소름이 돋았던 게, 일단 내가 소심한데 현재 직업이 마케터인 걸 어떻게 알았으며, 테스트 결과에서는 내가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꽤 정확히 언급해놨다. 이쯤 되면 나만 내 성격 잘 감추고 다니고 있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입사 동기는 내가 정상인이라면 하지 않을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아마 불필요한 걱정이 많으니 좀 덜어내라는 뜻에서 한 말일 거다. (그만큼 친하다.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ㅋㅋㅋ) '마케터=실적 싸움'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팽배하다 보니, 내 적성이 이 직업과 맞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잔업 거리를 남겨와 집에서 하는 경향도 있다. 뭔가 남들보다 잘하겠다, 인정받겠다, 회사에서 안 잘리겠다는 포부보다 그냥 내가 이 회사에 머무는 동안은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다. 그러나 회사 분들은 내가 회사에서 잘릴까 봐(ㅋㅋㅋ...) 아등바등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물론 아예 비중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나는 내 얼굴을 떠올렸을 때 그저 '아, 그 낯가리고 무난 무난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다.
ps. 이때까지 회사에서 했던 내 아무 말을 생각하면 이미 '무난'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