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배운 건 눈치

입맛 맞추기

by 정그믐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한 뒤 입시 기간이 되면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오곤 했다. 같은 학과로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후배가 있으니 조언을 달라는 연락이었다. 연락받을 때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기대를 심어주려고 한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는 현실적인 조언보다 충분한 양의 격려가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사실을 말하자면, 글을 쓰겠다고 굳이 관련 학과에 진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0대 초반, 학교생활에서 내가 배운 건 글쓰기 실력이 아닌 눈치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조언을 해준 후배들은 다 다른 학과로 진학했기에 드디어 밝힌다)


나는 대학교 1학년 수업부터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길 원했다. 잘 팔리고, 인기가 많은 글을 분석하는 과제가 있길 바랐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독립출판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1학년 커리큘럼에는 창작 수업 없이 이론 수업만이 있었고, 과동아리를 통해 자가출판의 개념으로 문집을 만들 수는 있었다. 2학년이 되어 드디어 창작 수업을 듣고 글을 쓰게 되었지만, 학점과 그로 인한 다음 학기 장학금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교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고, 수정했다. 또한 교수님들의 취향은 다들 달라서 같은 소설에도 상반된 평가 때문에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조금만 더 다듬어서 문학상에 내도 되겠다.”

“이건 신파적인 거라 잘 썼다고 볼 수 없다.”


과장을 조금 덧붙이자면, 항상 수업 때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는 학과 특성상 4학년이 되면 교수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뉘앙스인지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뉘앙스가 긍정인지 부정인지에 따라 내 글을 바꾸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바꾼 글은 해당 학기가 끝나면 더는 쓸모가 없다. 내 문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수님 문체인 것도 아닌, 그런 복잡미묘한 글로 남게 되는 것이다. 줏대를 세워 교수님의 피드백에 아랑곳 하지 않는 글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건 교수와 학생 사이의 위계와 어떻게든 교수님께 안 찍히는 게 다음 수강 신청을 할 때 편하다는 생존본능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커리큘럼이었다. “너희 설마 취직하려고 문창과 온 건 아니지?”라는 말 대신, 그래도 글을 쓰면서 살아갈 방법을, 꿀팁들을 알려주길 바랐다. 신춘문예나 문학상에 준비하는 자세라던가, 출판사에 투고할 사람들을 위한 출판기획서 작성법을 알려준다던가, 출판의 종류에 관해 설명해주는 시간이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런 항목들은 스스로 찾아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학교에, 전공에 너무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일까? 솔직히 대학에서 함께 글을 쓸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 외의 장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졸업 후 작가를 꿈꾸니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겠다는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적성에 맞아서 가는 건 상관없지만, ‘작가가 되기 위해서’ 가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봐.”


내가 지금껏 글을 쓰고, 가사를 쓰고 저작권 등록도 하고, 출판계약도 하는 건 그저 자신의 의지로 이룬 일이었다. 물론 4년 동안 절필하지 않게 나를 붙들고 이끌어준 데에 전공수업이 부분적으로 일조한 건 있을지라도, 결실을 본 건 내가 찾은 정보와 내가 마음대로 쓴 글 덕분이었다. 한없이 이상적이면서 부조리했다. 굳이 또 다른 장점을 꼽자면 약삭빠름이 늘었다. 나는 4년 동안의 배움을 그렇게 평가한다.


흔히 대학을 ‘작은 사회’라고 표현한다. 이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학교 커뮤니티에서는 뉴스에서나 볼 법한 비리 제보가 터지고, 학교 건물에는 부조리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말에 간언하기보다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교수님과 수업은 한정돼 있고,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도 무사히 학교에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학교의 주인이 어떻게 학생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으며, 학생들은 누가 자신과 가치관이 같은지(혹은 다른지) 구분하느라 내내 눈치를 본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사회를 겪으며 눈치 보는 능력과 이기심과 약삭빠름이 자라난다. 아마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면 눈치 보기는 더 빨라질 거다. 이 글의 제목은 미래에 대한 예언과도 같다. 20대의 우리는 학업이 아닌 눈치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분야를 막론하고 잘못된 현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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