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직업 말고 '가'자 직업

나는 가짜 프리랜서

by 정그믐

돌아보면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마음먹은 20살 때, 운이 좋게도 처음 작사한 곡을 발매할 수 있었다. 저작권 등록을 하는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애를 먹었지만 나름대로 작사가로 데뷔를 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떴었다. 그리고 22살 때, 처음으로 내가 쓴 시가 작품집이 되어 서점에서 판매되는 경험도 해봤다. 이것도 수입으로 따지면 아르바이트하는 게 훨씬 나은 정도였지만, 내 창작물로 돈을 번다는 건 언제 경험해도 늘 짜릿한 일이다. 그렇게 4년 동안 발매와 판매의 경험을 번갈아 하며 현재는 몇 곡의 작사가, 몇 작품의 작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배고프다. 창작 활동이 배를 채울 수 있을 만한 수입원이 될 때까지 여전히 멀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한참 모자라고.


학창 시절 선생님은 꼭 학기마다 내 장래 희망과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 희망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그때마다 ‘작가’, ‘소설가’, ‘작사가’를 썼고, 부모님은 먼저 쓴 내 장래 희망을 확인하시곤 매번 ‘교사’라고 쓰셨다. 고등학교에 들어서 내가 문과를 선택하자, 은근히 법대를 가 ‘변호사’가 되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친언니는 이과를 갔고 나는 문과를 갔기에, 언니는 의대, 나는 법대로 진학해 각각 의사와 변호사를 하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계셨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나는 그럴 만한 공부 머리가 없다.


어릴 때부터 내 흥미는 ‘사’자가 붙은 직업군보다 ‘가’자가 붙은 직업군에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한글을 늦게 떼 그림을 그리는 걸 더 좋아했고, 그래서 ‘화가’가 꿈이었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어 백일장에서 입상을 몇 번 하고, 내성적인 성격임을 알게 되자 책 읽기와 글쓰기에 빠져 ‘작가’가 꿈이 되었다. 운문보다는 산문을 쓰는 게 좋아 구체적으로 ‘소설가’가 되겠다 마음먹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대중가요에 빠져 ‘작사가’를 꿈꿨다. 그리고 새삼 놀랍게도, 이 작가와 작사가의 꿈을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또 한 번의 10년 뒤엔 내가 이 꿈을 본업으로 삼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는 주의이다. 여기서 ‘적성’은 ‘하고 싶은 일’과 같은 뜻으로 본다.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서 기어코 벗어나기 위해 반항한 날이 많다.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껴 관둔 날은 더 많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요새 자꾸만 ‘취뽀 유튜버’들의 영상을 추천해준다. ‘3번의 인턴 끝에 합격’, ‘2년의 공부 끝에 합격’과 같은 영상 제목을 보며 조급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겠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내 적성은 돈 못 버는 프리랜서와 가장 가까운 것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드디어 퇴사!’와 같은 에세이 문구를 보며 의아했다. 힘들게 들어간 회사를 왜 제 발로 걸어 나올까 싶었다. 심지어 학교와 달리 돈을 내는 곳이 아닌 받는 곳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일과 적성은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물론 일을 그만두는 것에는 대인관계도 충분히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볼 때, 일과 관련해 만나는 사람이 날 괴롭게 하더라도 내가 일을 사랑하면, 결국엔 꾹 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내 적성에는 ‘가’자 직업이 맞아.”


내 인생이 정말 100세 인생이라면, 그중 한동안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잠시간 ‘하고 싶은 일’을 보류하고 ‘해야 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이면, 좋아하는 분야의 일자리보다 아무 곳이든 자리가 나는 데에 비집고 앉으려는 지극히 현실적인 어른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내가 ‘보류’라고 표현하는 것은 절대 ‘포기’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다. 돈은 못 벌지만, 때아닌 전염병 때문에 활동에 제약도 많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일은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자 직업보다는 ‘가’자 직업과 어울린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내 직업은 ‘가’자, 그러니까 ‘가짜 프리랜서’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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