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by 우두커니

만철이 자라난 집은 늘 재봉틀 소리로 가득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는 먼저 발을 조심스레 들여놓았다. 어머니가 바늘을 움직이고 있으면, 문지방에 걸터앉아 가만히 그 발놀림을 보았다. 좁은 방 안에는 천 조각과 실 타래, 기름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해방이 왔다는 소식은 그 재봉틀 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동네 장정들이 골목으로 뛰쳐나가 “일본이 졌다”고 외치던 날, 만철은 어머니의 얼굴부터 보았다. 이제 헌병은 오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더니, 짧게 대답했다.


“그래, 이제 그 사람들은 안 올 거야.”


그러고는 다시 바늘을 밟았다. 만철은 그 말이 왜 기쁘게만 들리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학교 교실에서는 일본어 교과서가 치워지고, 새로 인쇄된 조선어 교과서가 나눠졌다. 선생은 칠판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놓고, 아이들에게 따라 쓰게 했다. 만철은 글자를 또박또박 베끼면서도, 예전 교과서에 있던 깔끔한 서체와 삽화들을 떠올렸다. 일본이 만든 기차, 배, 비행기. 반듯하고 정확해 보이던 그 선들.


집에 돌아오면 그는 버려진 일본어 교과서를 몰래 꺼내 읽었다. 철도 선로 그림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숫자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 만철은 그 그림들을 따라 연필로 그려보았다. 종이는 거칠고 연필심은 자주 부러졌지만, 선이 모일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언젠가 자신도 저런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어머니가 밤늦게까지 재봉틀을 밟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나 크면 공장 사장 될 거야.”


어느 날, 그는 식사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보리밥에 된장국을 떠먹던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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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태생, 1/3의 K대생, 전직 은행원, 47개국 방랑자, 현재는 세계놈팽이 타이틀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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