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by 우두커니

독도에서 돌아온 이후, 대방동의 공기는 묘하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민수는 라멘집을 찾는 횟수를 줄이지 않았고, 히엔은 이제 그가 오면 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곤 했다. 때로는 한가한 시간에 마주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민수는 그녀에게 한국의 날씨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들 이야기를 했고, 히엔은 가끔 베트남의 과일이나 오토바이가 가득한 거리의 소음에 대해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느 바위섬 앞 파도 소리 속에서 찰나에 공유했던 어떤 서늘한 진실이 암묵적인 비밀처럼 깔려 있었지만 그것은 대수롭지않게 묻혀갔다.


“히엔 씨, 이거 먹어봐요.”


어느 날 저녁, 민수는 식당 문을 열며 귤이 담긴 검은 봉투를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손님한테 이런 거 받아도 돼요?”


히엔이 봉투를 들여다보며 작게 웃었다.


“단골 특권이죠. 날씨가 추워지니까 이런 게 당기더라고요.”


히엔은 까만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껍질을 까는 그녀의 손끝에서 옅은 주황색 향이 피어올랐다. 그 귤을 받아먹던 히엔의 눈가에 처음으로 옅은 온기가 감도는 것을 보며,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이 혐오하고 부정하려 했던 것들 사이에서, 이 작고 메마른 이방인의 삶이 어쩌면 자신이 유일하게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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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 태생, 1/3의 K대생, 전직 은행원, 47개국 방랑자, 현재는 세계놈팽이 타이틀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서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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