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8 번째 이야기

by 우두커니

아빠가 떠난 이듬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내가 입학한 산매고등학교는 매화나무가 울창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션스쿨이었는데 봄이면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그곳에 입학하면서부터 나는 기숙사에서 지내게 되었다.


나는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정말 좋았다. 남고 냄새가 풍기는 2개의 2층 침대로 가득 찬 빼곡히 좁은 공간이었지만 나만의 침대,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어서였을까. 다만 공간이 주는 의미는 상대적인지라 나의 친구들은 주말 내 집에서 보내다가 기숙사로 돌아오는 일요일이면 꽤나 침울해했다. 나는 주말이 되어도 기숙사에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학교 정책상 무조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주말이면 내 친구들이 느끼는 침울함을 반대로 느꼈다.


주말 내 집에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오는 날이면, 나는 친구들보다 일찍 기숙사에 도착했다. 작은 삼촌이 피던 에쎄 담배 냄새 그리고 집 안 벽지를 덮은 곰팡이 냄새는 힘을 모아 짧은 주말 동안 벽에 걸려 있던 내 옷을 쾌쾌한 가난의 냄새로 뒤덮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것을 친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기숙사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섬유유연제를 들이부었다. 세제와 섬유유연제의 비율은 1:1,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빨래를 널면 그제야 내 옷가지에서는 그럴싸하게 평범한 냄새가 났다. 옷을 널면서는 ‘섬유유연제가 왜 유연제인거지, 섬유착향제가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의 평범은 그렇게 햇빛과 보라색 피죤으로 구색을 갖추어갔다.


그러다가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면 친구들이 하나 둘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말 내 집에서 쉬다가 기숙사로 돌아오게 되어 한껏 풀이 죽은 친구들, 그런 자식을 기대 반 걱정 반의 눈으로 배웅하는 부모들. 나는 창 밖을 흘깃 보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려 공부하는 척을 했다.


기숙사로 돌아온 내 친구 K가 한창 건조 중인 빨래건조대를 지나쳐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아직 저녁 점호 전인데 나가서 좀 놀다가 오자"


그렇게 나는 K와 친해졌다. K는 우리가 서로를 안 지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참 한결같은 놈이다. 한 번은 K가 주말에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주말에 우리 집에 놀러 올래?"

"진짜?"

"응. 부모님이 시골 가셔서 집이 비니깐 같이 영화 보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당시 K의 부모님은 인근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주말이면 집을 비우시는 경우가 많으셨는데 K도 주말이면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잦았다. K는 나 외에도 몇몇 친구들을 더 초대했고 우리는 당시 유행했던 ‘링’이라는 공포영화를 함께 보았다. TV 밖으로 귀신이 머리를 내미는 장면을 보며 함께 비명을 지르고 떡볶이를 먹었고 이후에는 홈런볼과 맛동산 그리고 새우깡에 손이 갔다. 이런 K랑은 나중에 같은 대학에 진학했고 같이 자취를 한 적도 있다. 어느 한 구석 모난 곳 없고 마치 과일로 치면 양식에도 어울리고 한식에도 어울리는 아보카도 같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때 만난 K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은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진 그 시기에 그렇게 내 친구동산을 맛나게 채워주었다.


미션스쿨답게 우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이 모여 성경 수업을 들어야 했다. 예배당에 모이면 그제야 흰머리가 잘 어울리던 교목이 마이크를 잡고 쩌렁쩌렁하게 예수의 말을 전파했다. 우리들은 사실 예수의 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 시간은 수험 생활에 찌든 우리들의 쉬는 시간이었다 아멘. 그 무렵 나는 우리 반 1등이었던 S와 이 시간에 공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수험 공부에 지쳐있던 S 역시 나와 이런 꽤나 쓸모없는 토론을 나누는 것에 열을 올렸다.


"야, 너는 신이라는 걸 믿어?"

"신?... 예수 말하는 거지?“

"아니 웃기잖아. 자기가 진짜 존재하면 이렇게 우리들을 모아놓고 자기를 믿으라고 강요 같은 걸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지"

"듣고 보니 그렇네"


S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면서 꽤 그럴싸한 답변들을 이어나가는 스스로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내가 이런 류에 꽤나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답이 정해진 미적분과 씨름하는 것보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갔다.


“어차피 죽는데 왜 사는 걸까”

“그러면 너는 어차피 화장실 가는데 왜 밥 먹는데“


물론, 정말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가끔은 꽤나 괜찮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이를테면,


“너, 적자생존의 뜻 알지?”

“적자생존? 우리 그거 생물시간에 배웠잖아. 강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거 아니야?”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거야. 그러니깐 강한 거랑 적합한 거랑은 꽤나 다른 거라고“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말은 세상에서 멸종한 수많은 것들이 꼭 강하지 않아서만은 아니라고, 단지 적합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렇다면 적합한 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생물시간에 배운 이론은 있지만 단지 그 방식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기에. 강한 것보다 더 정의하기 어려웠다.


“적합한 게 더 생각하기 어렵다. 적합하다는 건 뭘까?“

“수업시간에 배웠잖아. 키 큰 나무들이 있는 환경에서는 목이 긴 기린이 적합하고 반대로 키가 작은 나무들이 있는 환경에서는 목이 짧은 기린이 적합하잖아“

“그거야 배워서 알기는 하는데 왜인지 그거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문제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


키 큰 나무들로 이뤄진 숲 속에서 목이 짧은 기린이 굶어 죽을 것을 생각하니 많이 불쌍했다. 잎사귀 하나 못 따먹고 키 큰애들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죽겠지. 교과서에서 이 내용을 봤다면, 목이 짧은 기린은 그냥 그저 그런 기린 중에 한 마리였을 것이다. 근데 왜인지 성경시간에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이 기린은 나에게 조금은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해 여름, 할머니가 쓰러졌다. 고모와 함께 절에 갔던 할머니는 부처에게 기도하고 공양함에 시주를 했는데 절에서 나오는 내리막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할머니가 절에서 뭐라고 빌었기에 부처는 절에서 나오는 불자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을까. 먼저 간 첫 째 아들의 극락왕생, 겨우 살고 있는 나머지 3명의 자식 그리고 손주들의 건강과 안녕. 어쩌면 할머니가 부처에게 과한 부탁을 했나 보다.


할머니는 그 뒤로 1년이 조금 안되게 병상에 누워 있다가 아빠 곁으로 갔다. 할머니가 떠나던 날, 나는 다시 상주가 되었다. 이미 한번 써봤던 상모를 익숙하게 쓰고 헐렁했던 어른 사이즈의 양복은 이제는 얼추 크기가 맞았다. 전에 써봤던 상모를 다시 쓰고 검은 양복을 입는 건 익숙해졌는데, 가족이 죽는 걸 다시 겪는 건 익숙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구는 매도 맞다 보면 맷집이 늘어서 괜찮아진다던데. 나는 매를 맞을 때마다 아파했던 아이고 두 번째 이별도 매처럼 아팠다.


할머니가 화장되기 전, 나는 할머니 손에 팥양갱을 쥐어 주었다. 할머니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간식, 어릴 적 100원짜리 동전 5개를 한 손에 꼭 쥐고 동네 슈퍼에 가서 할머니에게 줄 양갱을 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손주가 사준 500원짜리 양갱을 먹던 할머니는 이제는 1,000원이 돼버린 양갱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 그때와 지금이, 시작과 끝의 형태를 갖춰 손에 잡히는 듯했다. 그러다가 문득 할머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강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래 할머니. 그냥 이번 세상이랑은 조금은 안 맞았던 걸 수도 있어.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줘.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내가 더 큰 팥양갱 사줄게”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등굣길에 매화꽃이 한창이었다. 매화꽃이 지고 시간이 좀 더 지나 6월이 되면 매실이 열리겠구나 생각하던 차에 친구들이 하나 둘 옆으로 왔다.


“괜찮지?”

“이따 같이 매점 가자. 이 형님이 ‘와’ 사줄게“


괜찮은지 위로해 주는 친구들, 어쩌면 애써 나를 위로해 주는 그 친구들이 더 안 괜찮아 보였지만 그런 친구들의 쑥스러운 위로 속에서 내 마음은 한결 더 여물어갔다.


다시 한 주의 성경시간이 돌아온 날, 그날도 나는 S랑 늘 그렇듯 시시콜콜한 철학자 흉내를 냈다. 그러다가 성경시간의 막바지에 교목의 기도에 따라 모두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눈을 감고 딴짓을 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하나님께 정말 ‘기도’라는 걸 해보리라 작정했다. 나는 그에게 고백했다.


“제가 그동안 성경 시간에 기도 안 한 것은 죄이고 할머니가 살아생전 부처를 믿은 건 흠이 되겠지만 그래도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할머니를 꼭 천국에 데려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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