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7 번째 이야기

by 우두커니

퇴사를 하고 첫 번째 장기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그간

읽었던 수많은 책들 속에서 가장 마음이 갔던 한 문장을 내 몸, 그러니깐 내 오른팔에 평생 지니기로 마음먹었다. 왼팔에게는 미안하긴 하지만 내 오른쪽 어깨에 매달려있는 이놈은 나에게 조금은 더 특별하긴 하니깐.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할 스스로에게 괜한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던 나, 늦은 밤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둘 만의 혼인서약을 올리는 연인처럼 나는 그렇게 이 문장과 따끔한 서약식을 올렸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항상 내 곁에 있어주길 내심 바라면서 새긴 타투.


‘Para llegar al tesoro,

tendrás que seguir las señales‘


스페인어로 적은 이 문장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보물을 찾고 싶거들랑,

우주의 신호를 받으랑께’


전라남도 출신이니깐 괜히 사투리로 한번 적어봤다. 이 문구를 가져온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도 소개하고 동시에 이 문구가 나에게 진정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설명할 겸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독후감을 첨부할 예정이다. 놈팽이의 독후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니 대부분은 역시 놀라는 눈치였다. 물론, 그간 퇴사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던 나였기에 그들이 놀라는 것도 지극히 당연했다.


“그 좋은 직장을?”

“너도 뭐 요새 유행하는 YOLO 그거 하려고?”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사람은 역시 나의 작은 삼촌,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만 견뎌보지는…”


그런 그들 앞에서 나는 자신만만한 척 그럴싸한 기대감을 뿌리고 다녔다. 역시 뜬구름 잡는 소리 하는 것 하나에는 꽤나 소질이 있는 나, 그간 인생을 살면서 길러온 말재간을 이제야 써먹는구나. 나에 대한 괜한 상상을 하며 걱정할 사람들을 뒤에 두고 먼 길을 떠나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겠다 싶었다.


“가서 좋은 거 먹고 보고 느끼고 더 큰 사람 되어 올게“


더 살쪄서 온다는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모든 여행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지금의 나는 출발할 때보다 20kg 정도가 더 쩌버렸다. 가서 좋은 거

먹고 먹고 또 먹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보고 느낀 것도 조금은 있으니깐. 뭐가 되었든 결국 내뱉었던 말을 신조 있게 지켜버렸으니 그때 영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의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은 어떠한 목적 없이 그저 떠나는 여행, 몸이 향하는 방향으로 마냥 걸으면서 이런저런 주파수들에 하염없이 내 리듬을 맡겨보고자 결심한 것이 전부였다. 진짜 금반지 같은 보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뭐 길에 떨어진 도금반지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굳이 다른 명분을 조금 추가하자면 어릴 적 빈약했던 추억에 대한 보상심리도 있었다. 메모리 카드를 마저 채우러 가야지.


긴 여행을 떠난다 하니 친구 C가 내게 말했다.


“너도 여행 떠나는 김에 여행유튜버 아니면 여행작가 그런 거라도 좀 해봐”

“혹시 모르잖아. 네가 빠니보틀처럼 될지 누가 알아”


그래, 까짓 거 뭐 한번 해보지. 이 주파수랑 내가 맞을지 또 어떻게 알아. 그렇게 고프로 7도 하나 사서는 배낭에 챙겨 들고 떠나는 여행길. 아 물론, 늘 그랬듯이 역시 중고로 사긴 했지만.


그렇게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날, 나는 작은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갔다 올게“

“그래, 잘 다녀오고”


늘 그랬듯이 뭘 잘 다녀오라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잘함의 결과물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는 역시 대충 알 수 있었다. 이번 시나리오에서는 꽤나 그럴싸한 주인공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여행의 첫 시작이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나는 꽤나 허망한 인생의 모순을 목도했다. 그것은 홀리한 찬송가의 음절, 때 묻은 박스 그리고 희뿌연 증기가 뒤섞인 오물 같은 것이었고 오감은 마침내 하나가 되어 그 장면 속의 나를 휘감았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 속에서 지하철 증기가 올라오는 바닥 주변에 박스를 깔고 힘겹게 잠을 청하고 있는 흑인 노숙자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바로 옆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활동을 펼치는 백인 목회자들. 그들이 진정 위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옆으로는 족히 20마리는 되어 보였던 강아지들을 한 번에 데리고 산책시키는 팻 시터 히스패닉 여성이 지나쳐갔는데 강아지들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증기가 꽤나 거슬렸던지 무심하게 짖어댔다. 역시 어딘가에 대고 짖어대고 싶은 충동이 들던 나를 꾹 짓누르며, 그리고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틀어막으며 나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결국은 모순 앞에서 부리나케 도망치기만 했던 내 자신은 그날도 늘 그랬듯이 그렇게 한참 작아졌다.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와서는 LA로 향했다.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한인 타운이 있는 그곳에서 나는 많은 한인들을 지나쳤다. 한국과 미국의 경계 위를 거니는 사람들, 나는 그중 한 명이었던 한인민박 사장님과 함께 하루는 LA 시티투어를 했다. 차를 타고 버버리힐스를 지나치는 와중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진우 씨, LA에서 제일 비싼 동네가 어딘지 알아?“

“여기 버버리힐스 아니에요?”

“그건 옛날 말이지”

“그럼요?”

“요즘은 저기 벨 에어라고, 더 언덕 위에 있는 곳이 제일 비싸. 부자들이 버버리힐스 이제 시끄럽다고 다 그쪽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사장님이 그 말을 하기 전, 나는 창 밖을 내다보며 일전에 기사에서 봤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웬만한 버버리힐스 주택 안에는 대부분 강아지들을 위한 방에 있고 그 방의 크기가 대한민국 아파트 국민평수인 34평을 넘는다고 했다. 거기에도 한참 못 미쳤던 내 방 크기를 생각하고 있던 차에 저 말을 듣자 하니 또 다른 생각으로 번졌다.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은 벨 에어에 있는 강아지 방이랑 자기네들 방 크기를 비교하려나’


아무렴 어때. 강아지를 키우지도 않고 집도 없는 내가 미국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우습긴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차라리 미국 강아지로 태어나고 싶다’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는 점. 그랬다면 이렇게 내 맘대로 돌아다니고 저런 쓸모없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을 테니, 딱 거기까지의 사고 수준인 나라서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니깐 참 다행이었다.


1달이 조금 넘는 미국여행을 마치고는 멕시코를 지나 남미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마침내 페루의 쿠스코에 도착한 날, 내 첫 번째 장기여행을 중단시켜 버렸던 그놈이 진정한 위세를 드러내버리고 말았다. 그간 여행 중에 접한 뉴스들 속에서 스멀스멀 낌새를 채긴 했지만 이 정도로 강한 놈일 줄은 그땐 몰랐지. 하필 그날부터 시작된 페루 정부의 코로나 격리 지침으로 인해, 나는 이후에 총 3달을 숙소 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해발고도 3,400m에서의 반 수감생활, 가끔 숨이 조금 가빠지고 어지러워지는 고산병 증세가 올라오긴 했지만 그래도 10명이 조금 넘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역시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고산지대에서 낮아진 기압은 10명이 도란도란 나눠먹는 고기 앞에서는 다행히 제 힘을 쓰지 못했다.


내 안의 관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이 머물며 관찰할 수 있었던 장면들, 그리고 앞 장에서 이미 기술한 몇몇 나라에서의 감상들. 애초에 내가 인식할 수 없는 신호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유의미한 것들이 아니겠지, 매 순간 내가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신호들에만 집중하며 그저 흘러 흘러 냇물처럼 돌아다녔다. 어떻게 흐르더라도 결국 바다로 향하겠지라는 작은 소망만 가슴속에 품었다.


길었던 여행기간 중에는 어른이 된 이후로 놓지 않았던 독서도 시원하게 놓아버렸다. 책을 통해서 했던 간접경험들이 그때까지의 나를 기른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책장을 벗어나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런 피, 땀, 눈물이 나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란 다소 오만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 숨 쉬며 요동치는 그것들 앞에서 책장 속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활자들이 내 눈에는 쉬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고프로로 영상을 찍어보기도, 여행지에 대한 내 감상을 글로 적어보기도 했지만 앙꼬 없는 붕어빵의 느낌이라 자책한 적이 많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란 놈이 원래 그런 놈 아니었던가. 미지근한 커피가 없다고 지랄 맞은 생각을 하며 경계감을 떠돌던 내가 이제는 ‘이건 너무 좋다고’ , ‘저기는 꼭 가보고 이건 꼭 해봐야 한다고’ 떠들면서 추천하는 꼴이 너무 우스워보였다. 역시 나는 마음이 기울지 않는 방향으로는 몸도 기울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버리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던 대로 여행이나 제대로 하자, 그런 것들은 진작에 놓아버린 지 오래였다.


여행을 다니며 수 없이 걷고 명상하는 시간 동안 틀어져버린 내 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스트레칭도 해봤고 요가도 해봤지만 결국 물감이 이미 퍼져버린 물감통의 물을 다시 정수된 물처럼 바꿀 수는 없는 법, 나는 내 몸과 적정선에서 합의를 보기로 타협했다. 내 몸도 늦지않고 잘 왔다 반겨주며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래, 우리 이제 어쨌든 앞으로는 많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자.


마음이 되었건, 육체가 되었건 무엇인가 꼬인 것을 그래도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날 생생하게 만들었다. 결국 풀리든, 풀리지 않든 어쨌든 그 안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첫 번째 장기여행 계획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불가항력적으로 끝나버린 이후 나는 제주도, 하노이, 멕시코시티, 부에노스아이레스 그리고 발리에서 꽤나 오랜 시간 머물렀다. 시작할 때의 마음처럼 어떠한 목적 없이 그저 주변의 주파수에 몸을 맡겼던 여행 같았던, 꿈같았던 시간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못다 이룬 꿈을 안고 떠났던 두 번째 장기여행을 마무리 짓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총 여행기간이 1년 정도였다면, 나는 아마 자랑스럽게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이 이렇게나 꽤나 길어지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를 ‘여행자’로 부르기도 버겁다. 굳이 좋게 말하면 ‘방랑자’, 조금 비꼬면서 말하면 ‘놈팽이’정도가 딱 적당한 내 타이틀이다.


멕시코시티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기르던 2마리의 퍼그들, 내내 비 내리던 콜롬비아 보고타, 쿠스코 격리기간 동안 막걸리 만들어보기,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와이너리 투어, 칠레의 파타고니아 트래킹,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 LA 할리우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샌디에이고에서 만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흑형과의 손인사, 호주 골드코스트의 서핑, 눈 내리던 홋카이도, 방콕의 송크란, 다낭의 비치발리볼, 길리의 바다거북, 칭다오의 생맥주, 아그라의 타지마할, 러시아의 마린스키 극장, 터키의 파묵칼레, 헬싱키의 청어, 이집트의 다합, 로마의 판테온,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그리고 벨기에의 겐트


47개국의 나라를 떠도는 동안 나는 그 경계감에 흠뻑 취해 있었다. 여행자, 그곳에 있지만 그곳에 속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 나를 동정하는 이도, 응원하는 이도 없어서 내가 굳이 뭐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나는 앞으로 내가 한국에 머무를 때도 이 문장이 여전히 유효하길 바랄 뿐이다. 생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계감의 줄타기를 해온 나에게 어쩌면 이것은 가장 익숙한 감정상태일지도 모르니깐.


긴 여행의 기간 동안 이제는 말을 더듬는 습관도 많이 줄어들었다. 오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면, 그제야 내 친구들은 말한다. “아 맞다, 너 그랬었지” , 외국에서 꽤 오랜 시간 지내며 한국말을 쓸 일이 줄어들어 생긴 결과인 걸까. 경계감 위의 나를 인정하며 생긴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 역시 나는 어딘가에 걸쳐있을 때 오히려 온전해지나 보다.


그렇게 몇 년을 돌아다니면서 의사 앞에서 고백했었던 ‘조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애초에 바뀐 거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었다고나 할까. 지금의 내가 느끼는 상태는 “나 이제 그만 살아도, 죽어도 되겠는데”에 더 가깝다. 혹시 오해할까 봐 다시 한번 못 박아 말해두지만 죽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이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미숙하게 처음으로 공개했던 날. 돌아왔던 대답은,


“미친놈”

“그래서 그거나 그거나 결국 죽는 건 매한가지 아니야”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들을 굳이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선명하지 않았던 그 문제에 대해서 자꾸 신경이 가긴 했다. 일전에 읽었던 글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기에.


‘천재와 또라이, 일단 그 둘의 공통점은 어느 한 부분에 대해 범(凡)인들보다 더 멀리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반면, 그 둘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또라이는 계속 거기에만 머무르지만 천재는 다시 범(凡)인들 곁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라이도 아니니깐, 그리고 약간은 천재인 척 행동하고도 싶으니깐. 나는 지금도 계속 죽음에 대한 관념을 조금씩은 더 선명하게 제련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 속에서 내가 그간 읽었던 책들, 방랑하며 느낀 감상들 그리고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들은 목청을 높이며 계속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목청을 전반적으로 분석하여 현재까지 연구한 죽음 리포트 과제를 굳이 영상화하여 제출하자면, 진부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물이지 않을까.


전쟁터에서 적군에 잡힌 포로, 그는 사실 살고 싶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죽지 않으면 마주쳐야만 하는 가늠도 안 되는 고통이 마냥 두렵기에 다 내려놓으며 외친다.


“그냥 죽여줘”


그런 그의 머리통에 권총을 대고 적군이 방아쇠를 당기기 바로 직전, 급하게 날아드는 소식. 두 나라가 마침내 휴전 협상을 체결했다는 뉴스. 그렇게 겨우 풀려나 목숨을 건지게 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가 끓여주는 수프를 맛보고는 나지막이 한 마디를 꺼내는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의로든 혹은 타의로든 일단 그것만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이제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포켓몬스터로 이 상황을 굳이 한번 더 비유하자면, 이것은 ‘죽고싶다몬’에서 ‘죽어도좋다몬’으로 진화한 것과 같은 것이다. 포켓몬스터에서 진화는 자신보다 센 포켓몬에게 덤비다가 갑자기 영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진행된다. 짜잔, 나 이제 더 강해졌다옹. 물리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퀀텀점프라고 정의하는데, 이렇게 다시 한번 적고 보니 포켓몬스터는 정말 지독하게 철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예술이다.


모쪼록, 혹여라도 지금 내 글을 보고 있는 사람 중에 자신만의 심연에 갇혀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진화하는 포켓몬 같은 날이 오지는 않을지 조심스레 기대해 보시길.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 정말로 진화해서 지우의 포켓볼에 담길 날이 올지.


길었던 방랑의 기간 동안 나는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유년시절, 청소년기 그리고 20대 이후의 모습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모든 복습을 끝내고 이 자리에 서있는 나는 여전히 한참은 모자란 애새끼이긴 하지만 그래도 20년 전에 담가놓은 된장의 장독대 뚜껑 정도는 열어서 장 맛을 볼 용기 정도는 가질 수 있었기에 그래도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하다. 아주 조금.


46개의 나라를 여행하고 다시 마주하는 내 나라는 역시 조금은 예상했듯이 약간은 새롭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여전히 유효한 1개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직 방방곡곡 안 가본 곳도 많으니깐.


‘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T.S. 엘리엇-


정반합, 작용과 반작용의 결과물들. 짐을 잃어버리기도 길 가다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똥 싸는 사람을 보기도 그리고 우연히 평생 갈 동행을 만나기도 했던 꽤나 길었던 여행의 기간 동안 나는 온몸으로 우주의 신호를 받으려 몸부림치며 부단히도 방랑했다. 그리고 경계의 관성에 허우적댔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조금은 삐딱하게 본다. 갓 자른 머리보다는 자른 후 2주 쯤 되었을 때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마음 한편에는 항상 미지근한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안고 갈 수밖에.


나의 베프 C가 묻는다.

“그래서 여행 다니면서 어디가 제일 좋았는데”


미지근한 나는 답한다.

“아 그냥 다 좋았다니깐, 이제 그만 좀 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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