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16 번째 이야기

by 우두커니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지 여의도, 그리고 마침내 그곳으로 발령을 받게 된 25살의 전진우 대리. 2년이 조금 넘는 은행 지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던 날, 지점 식구들은 케이크에 촛불을 붙여주시고는 나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씀들을 건네주셨다. 그 모든 격려를 관통했던 하나의 문장은,


“거기는 여기랑 분위기가 좀 많이 다를걸? 그래도 가서 잘하고!“


얼떨떨한 마음을 다잡고 처음 5호선을 타고 여의도 본사로 출근했던 날이 떠오른다. 아 이 시간대에 5호선을 타면 굉장히 붐비는구나. 출근길의 5호선은 북새통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킁킁거리며 사람들의 정수리 냄새를 피하느라 꽤나 신경을 써야 했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가서는 직원들과 서먹하게 인사를 나눴다. 역시 그곳은 아침부터 꽤나 분주했다.


“안녕하세요”

“누구?…”

“저 오늘부터 이곳으로 발령받은 전진우 대리입니다”

“아아 맞다. 오늘이 인사이동 날이었구나. 미안해요“


어색하게 오고 가는 인사 속에서 우물쭈물 자리에 앉아있던 나에게 서무 과장님이 오셔서는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진우 씨도 이제 본사 근무 시작했으니깐 명함을 하나 새로 파야지”

“네!“

“너무 그렇게 군기 들어있을 필요는 없어. 편하게 해. 일단 여기에 영어이름이랑 전화번호 적고. 그리고 대리니깐 영어로는 Assistant Manager겠네“

“감사합니다!”

“명함 이게 그래도 꽤나 중요한 거라고. 사회에 나를 알리는 거잖아“


명함. 종이 속에 들어있는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포함한 몇몇 정보들, 그리고 반짝이는 회사이름으로 치장한 획일화된 크기의 그것을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교환하는 순간,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엑셀 수식을 돌린다. 아, 이 사람이랑은 좀 친해져야겠다. 에이, 이 사람은 좀 쉬엄쉬엄 대해도 되겠군.


“명함을 받아서는 잘 보관해둬야 해. 나중에 누가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서무 과장님은 명함의 중요성, 아 그러니깐 관계의 중요성을 꽤나 강조하시던 분이었다. ‘저는 아닌데요’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이후에도 내가 사회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무 과장님처럼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듬은 정교한 엑셀 툴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고 그런 사회의 관성을 거스르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업무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사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이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재빠르게 계산되는 갑과 을의 높낮이, 그 높이 안에서 오고 가는 힘겨루기들. 나의 사회생활, 회사생활을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지만 어쨌든 그런 관계의 관성 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갔었다. 개중에 모래 속에서 진주알 찾듯이 불쑥 튀어나왔던 몇몇 진솔한 관계들만이 그나마 나를 숨통 틔게 만들어 주었고 그 관계들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여의도의 사람들은, 아 물론 세상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 금융의 중심에 있어서인지 몰라도 대부분의 대화 주제가 돈으로 귀결되었다. 기승전돈, 아니다 돈돈돈돈.


“우리도 스몰톡 좀 해봅시다. 그게 요새 유행이라며?”

“이번에 박 과장님도 아이들 영어유치원 보내신다면서요? 우리 아이도 어쩔 수 없이 영어유치원 보내는데 한 달 학비가 200만 원이나 해요”

“네, 다들 보내는데 우리 애만 안 보낼 수도 없고“

“아이고, 이 과장. 강남에 집도 있으면서 한 달에 200만 원이면 이 과장한테 별로 큰돈도 아니잖아“

“에이, 아니에요 부장님. 팔기 전에는 돈 들어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이 과장 그 강남집은 부모님이 물려주셨다고 했나?“

“네, 감사하게도…”


점심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하며 오고 가는 대화들, 그 안에서 나는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책에서 봤어. 마음 수련 많이 했잖아. 비교는 나쁜 거야. 비교하지 말자, 내 의식을 다독였지만 결국 비교는 내 무의식이 하는 거였고 내 무의식은 삐뚤어진 아이처럼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애였다. 어른이 된 후로 평범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모든 순간들, 이런 류의 대화 속에서 모두 물거품 되어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어디서 한번 본 것 같은 기시감들의 연속들. 나의 내면은 그렇게 트램펄린을 탄 것처럼 다시 단칸방으로 떨어졌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내가 아무리 오리처럼 신나게 발을 저어도, 이렇게 허우적대도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숨 막혔다. 내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시기할 자격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번뇌의 굴레 안에서 결국 끈적이는 그것을 애증 하는 양가적인 내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그쯤 만나고 있던 여자친구 Y와 관계 속에서도 경계감에 허우덕대고 있던 나는 그렇게 백조들 사이에서 어딘가에 걸터앉은 오리 신세였다. 관계의 가벼움, 비교의 굴레, 심연의 허무가 그렇게 스멀스멀 발목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턱 밑까지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곧 등장인물 간 갈등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그대로 TV를 꺼버리곤 했다. 그대로 계속 보다간 내 안의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터져버릴까 괜히 두려웠다.


이런 나를 보고는 당시 회사에서 친했던 몇몇 동료들이 낌새를 채고 물었다.


“야 너 요새 괜찮아? 표정이 많이 안좋은데“

“아니야, 괜찮아 누나. 별일 없어“


허무의 기세가 강해질수록 나는 그에 비례해서 시니컬 해져만 갔다. 그 무렵,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이 내 마음에 대문짝만 하게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본래 회의주의자는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다’


과거형의 그 문장을 본 순간, 나는 마침내 나에게 딱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 이 정도 인생관이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나랑 꽤나 어울리겠어. 나는 그 문장에 흠뻑 취해버리기로 작정했었다.


마음이 가는 사람들과만 대화하고, 스몰톡 시간이 되면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서 듣기를 반복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누적되던 차에 하루는 사무실에 떠도는 나에 대한 괜한 소문을 알게 되었다.


“혹시 전 대리님도 집이 강남이세요?”

“네? 아닌데요. 누가 그런…”

“아, 그런 소문을 듣긴 했는데. 근데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런 오해를 하신 거예요?”

“아니, 직원들끼리 스몰톡할 때 잘 참여도 안 하시고 항상 무뚝뚝하게 계셔서.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생각했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메슥거림이 올라왔다. 숨이 가빠지고, 갑자기 좀 어지러운데. 어라, 이거 예전에 책에서 봤던 고산병 증세인데. 내가 지금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와있는 것도 아닌데 고산병 증세라니. 내 체질이, 내 안의 관성이, 이런 내 자신이, 참 우스웠다. 계속 밑에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으려나.


강남키즈로 오해받은 나, 참 지랄 맞은 오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진짜 지랄 맞은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그때의 나는 카페에 가서 메뉴를 주문할 때 괜히 속으로 되지도 않는 트집을 잡았다. ‘아니, 왜 커피는 뜨거운 거 아니면 차가운 거만 되는 거야’ , ‘미지근한 선택지는 왜 없냐고’. 어차피 미지근한 메뉴가 있다한들 100번 중에 99번은 아이스커피를 시키고 1번 미지근한 커피를 시켜 먹을까 말까 할 내가 이런 지랄 맞은 생각을 한다는 게 정말 메슥거리긴 했다.


금요일이 되어 퇴근을 하고 여의도의 사무실을 나왔다. 8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많은 빌딩들이 집에 갈 마음을 접은 듯이 빛을 비추고 있어 여의대로는 눈부시게 환했다. 어두운 밤하늘 사이를 수놓은 빌딩과 가로등의 콜라보, 그것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다음 날 주말 아침이 되어 나는 새벽같이 밖으로 나왔다. 새벽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면 답답한 무엇인가를 조금은 날려버릴 수 있겠지 하는 작은 기대를 품으며 그렇게 걷고 걸었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 여기저기서 모여 뛰거나 운동하는 사람들. 이른 시간대였지만 공원은 일찍부터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괜히 한편에 있던 철봉에 가서 매달려봤다. 턱걸이가 몸에 그렇게 좋다던데. 그렇게 철봉을 잡는 순간 손이 아려왔다. 그것은 마치 배부른 나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간 밤에 머금은 한기를 손 끝에 쏟아내었다. 아린 감각, 그래도 결국은 살아 있었던 내 손 끝의 신경세포들. 종일 그곳에 박혀있어야만 해 추위에 온몸으로 맞서던 쇳덩이를 잠시 잡았다고 아파하는 미약한 생명체.


걸어도 걸어도, 매달려도 매달려도 역시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구나. 나한테는 분명 ‘문제‘랄 것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 주, 나는 병원에 가보기로 작정했다. 그래도 의사 앞에서 고해성사하듯 다 털어놓으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성장환경, 사회생활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지랄 맞은 감정들. 흰색 사제복을 입은 신부 같았던 그에게 다 털어놓고 나니 그래도 내 기분은 한결 나아지는 듯 보였다.


“어렸을 때 느꼈던 그런 찝찝했던 기분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나 봐요”

“그럼 어떤 것 같으신데요?“

“이제는 목까지 차오른 느낌이에요”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세요?”

“아주 조금요?…”


그는 나에게 사회적, 의학적으로는 초기 우울증 같아 보인다는 소견을 내렸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꼭 그래 보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아닌 것 같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의사가 이래도 되는거야라는 지랄 맞은 생각이 다시 올라오던 차에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렇게 애매한 답변을 해준 그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덕분에 나는 조금은 덜 우울한 마음으로 그곳을 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네 술집의 손님들이 신나게 떠들다가는 이내 자리를 비웠고 그곳은 다시 다른 손님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창 바쁜 시간. 다들 그럴싸한 이유를 하나씩 챙겨 들곤 앞서 떠나간 사람들의 빈자리를 채워간다. 그게 동네 술집이 되었건 분식집이 되었건 사무실의 내 의자가 되었건. 내 자리도 금방 그렇게 쉽게 채워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퇴사라는 건 정말이지 가벼운 일처럼 보였다. 그렇게 난 사무실의 내 의자를 비울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사직서를 제출하기 일주일 전, 나는 나와서 다시 걸었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만큼 나에게 포근한 곳은 없었다. 산책로 옆의 냇가에는 청둥오리가 윤슬 위에 둥둥 떠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향에서 청둥오리를 봐왔던 터라 초록색의 깃털이 있는 것을 보니 수놈임이 틀림없었다. 신나게 발을 젓고 있었던 그놈을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냇가 물이 원래 이렇게 왼쪽으로 흘렀었나. 오른쪽이었던 것 같은데. 아 맞다 왼쪽으로 가야 서해바다지“


한창 중얼거리던 차에 청둥오리 그놈은 내 말을 더는

못 들어주겠던지 힘차게 날갯짓을 해서는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나는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던 비슷한 시기에 나는 여자친구 Y와도 이별했다. 퇴사를 해서 이별을 한 것도, 이별의 충격으로 퇴사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연은 정말이지 우연처럼 겹쳤다.


나는 날갯짓을 하며 멀어지던 그 오리처럼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을 얻고자 결심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이런저런 신호에 조금은 충실해져 보기로 몸을 기울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신호에 대한 실마리는 지금 내 오른쪽 팔에 암호처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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