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번째 이야기
2021년 1월, 그때의 나는 이미 다니던 직장을 퇴사한 후였고 퇴사 후 떠났던 여행 중 전 세계적인 팬데믹의 여파로 급하게 귀국하여 겨울의 제주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바이러스란 놈 때문에 내 여행 계획이 망가지다니. 예상치 못했던 사유로 꿈꾸던 첫 번째 장기여행을 접었어야만 했던 나는 꽤나 씩씩대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들을 내 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이를테면 게스트하우스 스탭활동, 카페알바, 수염 기르기 그리고 94년식 수동 기어의 빨간색 중고 Jeep차를 사는 것들 말이다.
나는 700만 원이라는 작지 않았던 돈을 들여 나보다 2살이 어렸던 그 차를 덜컥 사버렸다. 제주도의 눈 내리는 중산간지역을 빨간색 Jeep차를 타고 달릴 생각을 하니 누군가에게는 고물일 수 있는 그 차의 연식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차를 산 뒤에는 이름도 붙여줬는데, 제발 고장 나지 않기를 바라며 왠지 강해 보이는 느낌의 ‘호동이’라고 명명했다. 호동아 오늘도 아프지 마, 호동아 오늘도 잘 달려보자, 호동아 기름 좀 적당히 먹어라, 호동아 형 이제 돈 없다.
그리고 그런 나의 첫 차를 산 뒤로 얼마 있다가 나는 A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제주도에 혼자 놀러 왔던 A는 제주도 여행자들이 소통하는 네이버 카페에 이런 글을 올렸었는데,
’저녁에 서귀포 시내에서 같이 고기 드실 분 계실까요?‘
마침 그날 일정이 없었고 고기도 좋아했던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하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고, 우리는 그날 저녁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나 말고도 다른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밥 먹기가 조금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요“
A가 머쓱한 듯 말을 꺼내며, 오늘 동행을 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맞아요, 특히 고기 같은 거 먹을 때가 더 그렇죠”
나의 짤막한 답 뒤로 이어지는 침묵, 첫 만남의 어색한 공기 속에서 고기가 다 구워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그 1분 남짓의 시간은 꽤나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서로 젓가락을 부딪히며 찬을 집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고기를 다 먹을 때쯤이 되어서 우리는 서로 나름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1000g이 조금 넘는 돼지고기를 먹었고 개중에 가장 많은 고기를 먹었던 나는 양심상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우겼다. 고맙게도 다른 둘은 그런 나를 만류했다.
“에이, 괜찮아요. 어차피 처음 오실 때부터 많이 드실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있었어요“
“맞아요, 괜찮아요. 아니면 돈 대신에 저희 드라이브 좀 시켜주실래요? 빨간색 Jeep 타보고 싶어요”
그렇게 내 차를 타보고 싶다던 A의 뜻대로 우리 셋은 차를 타고 근처에 있던 새섬으로 향했다. 서귀포의 새섬은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야경 명소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인데 특히 그곳에 있는 섬과 섬을 잇는 다리인 새연교를 지날 때 머리가 바다를 향하고 있는 물고기 모양의 교각이 A의 관심을 끌었나 보다.
“이거 좀 신기하게 생겼네요”
“이거 물고기가 바다로 다시 빠지는 그런 모양 아닐까요?”
“아 다시 보니깐 그게 맞네요!”
그렇게 그녀와 자연스럽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나랑 성이 같았고 93년생이라고 했다. 이후 우리 셋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1시간가량을 더 산책을 했고 모든 일정이 끝난 후에 나는 각자의 숙소 앞에 그들을 내려주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고마웠어요!”
그간 여행을 하면서 스쳤던 다른 많은 인연들처럼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이후에 다시 만나자는 그런 형식적인 말을 그때는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나 흘렀을까. 그날에 대한 기억이 차츰 흐려져갈 때쯤 한창 카페에서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나에게 A가 불쑥 연락을 보내왔다.
“저 이번에 제주도 한번 더 갈 것 같은데 쉬는 날에 시간 되시면 같이 밥 한 끼 해요”
‘그때 같이 고기 먹고 야경 보러 갔던 그분이시구나‘
흐려지던 기억 속에서 A를 다시 떠올린 나는 “그러면 오는 날에 맞춰서 휴무를 내고 공항까지 데리러 갈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한 달 전에 봤던 그녀의 어렴풋한 이미지가, 그리고 그때의 약간은 풋풋했던 분위기가 선뜻 이런 답장을 그녀에게 보내버리고 말았다.
약속한 날이 되어 제주공항에 도착한 나, A는 짐을 찾은 후 도착게이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그녀, 저번에는 밤이라서 눈치채지 못했었던 걸까. 낮에 다시 본 그녀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 기억이 이토록 선명하지 못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녀가 인사를 건네왔다.
“픽업까지 해주시고 너무 감사해요. 제가 밥 살게요”
“아니에요. 저도 차 타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요”
그렇게 우리는 제주공항에서 함덕, 종달리를 거쳐 그녀의 숙소가 있던 성산으로 향했다. 총 3시간이 넘는 드라이브, 가는 도중에는 성게미역국을 먹었고 차에서는 같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가수 중 데이식스를 가장 좋아했고 그중에서 ’예뻤어’라는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했다. 운전하며 흘깃흘깃 눈길이 갔던 그녀의 옆모습, 새하얀 피부의 그녀는 정말이지 노래 속의 가사처럼 예뻐 보였다. ‘왜 저번에 고기 먹을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지? 고기에 집중하느라 그랬나‘ 운전 중에 계속 맴돌던 그 생각은 그녀의 숙소 앞에 도착해서야 그제야 멈췄다.
성산에 있던 그녀의 호텔 앞에 도착한 우리, 마침 그날은 호텔 주최로 ‘시네마데이’가 열리는 날이었다. 저녁 9시에 호텔 앞의 공터에서 단체로 무료 영화관람 이벤트가 있다는 설명을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오늘 저녁에 ‘봄날은 간다’를 틀어준다는데 혹시 보고 가실래요?”
“봄날은 간다?…. 예전에 제목은 들어봤던 것 같은데“
“맞아요. 오래된 영화인데 이영애랑 유지태 나오는”
그때까진 몰랐다. 이 영화가 그 유명한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의 기원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나에게 라면 플러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결정적인 이유도, 일정도 없었던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조금은 어색하게 떨어져 앉아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그런 우리 앞에는 막 편의점에서 사 왔던 하이네켄 캔맥주 2캔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녀는 꽤나 눈물을 보였다. ‘이 분은 참 감수성이 풍부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엔딩 장면에 딱 한 번만 울었다.
“괜찮으면 우리 내일도 만날래요?”
나는 영화를 다 보고 그녀와 헤어지기 전 조금은 아쉬워 입가에 맴돌던 그 말을 뱉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도 조금은 수줍어하며 좋다고 했다. 그렇게 간만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붕 뜬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신라면을 끓여 먹고 잠에 들었다. 역시 자기 전에 먹는 라면은 진리야.
그 다음 날, 우리는 약속대로 다시 만났다. 오늘은 성산에서 출발해 남원, 위미, 서귀포를 거쳐 산방산이 있는 사계리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녀는 이전 제주도 여행에서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차를 타고 다니니 그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와서 좋다고 했다. 나는 그 풍경 속에 나도 있을까 하여 용기 내어 물었다.
“저는요?”
“좋아요”
“뭐가요?”
“그냥… 좋아 보이는데요?”
“수염도 막 지저분하게 기르고 그러는데도 괜찮아요?”
“자유로워 보여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녀는 자유로워보이는 나한테 끌림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부모님 혹은 주변의 눈치 때문에 용기 내어 도전해보지 못했던 어린 날의 자신이 아쉽다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조금은 부럽고 그래서 좋다고 했다. 역시, 세상에는 특이한 취향의 여자들이 분명 있다니깐. 나처럼 생긴 남자들,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나는 그런 그녀에게 “우리 그럼 한번 만나봐요”라고 했고 그녀는 ”좋아요“라고 답했다. 겨울날, 제주 사계리로 향하던 94년식 빨간색 Jeep 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후 우리는 남은 기간동안 매일 만나며 함께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고 3일 후 A는 출근을 위해 다시 육지로 돌아갔다. 그날부터 시작된 육지와 제주도를 넘나드는 장거리 연애. 몇 번은 그녀가 제주도로, 몇 번은 내가 그녀가 살던 서울의 강동구로, 그렇게 3달 여의 시간이 흘렀을까. 홀로 제주도에서 지내던 나에게는 심경의 변화랄게 생겼다.
제주 생활이 조금은 질리기도 했고, 장거리 연애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제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 가장 첫 번째로 결정한 것은 아쉽지만 나의 첫 차를 다시 중고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제주에서 중고 Jeep를 정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생각보다 빨리 호동이를 떠나보내 아쉬워하고 있던 나에게 A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옆에 있잖아”
내가 다시 서울에 올라온 뒤, 우리는 역시 바랐던 것처럼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백수였던 나는 그녀의 회사 앞까지 가서 퇴근하는 그녀를 기다렸다. 평범한 데이트들을 이어나가던 우리, 그녀는 단 둘이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백수일 때도 여자친구가 있었던 나, 꽤 대단했었네.
“오빠, 사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빠가 오빠랑 같은 학교 그리고 같은 은행 선배다?”
“진짜?!”
“응, 근데 지금은 퇴직하셨어”
“근데 왜 미리 말 안 했어“
“아니, 뭐 혹시 부담될 수도 있으니깐…”
알고 보니 학교 그리고 회사 선배님의 딸이었던 A, 자유로워 보여서 내가 좋다던 그녀는 우리가 함께 만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동시에 자유로운 나의 몇몇 모습 때문에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래도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그런 A를 점점 더 서운하게 만들고 있었나 보다. 쌓이고 쌓인 감정들, 지붕 위에서 한 번에 쏟아지는 겨울날의 눈더미처럼, 그렇게 그다음 겨울이 올 때쯤 우리는 서로 등을 돌렸다.
‘우리 한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였네‘ - 에픽하이의 ‘연애소설’ 중에서
그래도 예뻤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내 사랑이야기들에 대해서 적다 보니 꽤나 길게 이어져서 나도 글을 적는 와중에 흠칫 놀랐다. ‘지나고 나면 다 좋은 추억이 된다’라는 그 진부한 표현이 내 연애 이야기를 적을 때 가장 와닿는 문장이었다. 나한테 이렇게나 좋은 추억들이 많았다니, 내 과거를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된 느낌이라 속에서 막 울긋불긋 부끄러우면서도 불편한 기운이 올라오기도 하고. 다 적고 보니, 내가 너무 외모만 보는 속물 같긴 한데, 사실 착한 마음을 더 크게 보긴 하는데, 또 생각해 보니 영 틀린 말은 아니어서 그냥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한다.
특정인물에 대해서는 좀 더 애틋한 표현들이 집중된 경향도 메타적으로 인지했지만, 내 마음이 기우는 방향이 그쪽이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요즘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사계절의 경계가 많이 애매해졌다고 하는데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사계절을 나름 애틋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나는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
이별의 사유는 적지 않는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1인칭 관점에서 적는 연애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럼 여기까지 나의 연애소설 End